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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Jul 03. 2019

그 변호인은 왜 위대해졌는가.

<세상을 바꾼 변호인>과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 길어 올린이야기

그 변호인은 왜 위대해졌는가?    

<세상을 바꾼 변호인>과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이성은 법의 정신이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 역사상 유명한 재판인 찰스 모리스 사건과 그 재판을 승소로 이끈 변호인 루스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여성 변호사인 루스베이더가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모리스 사건’의 항소를 맡으면서 변화하고, 재판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루스는 세법 변호사인 남편을 통해 ‘모리스 사건’을 접한다. 이 사건은 모리스가 미혼 남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에 대한 간병 보수세금 신청을 국세청이 거절한 것에서 시작한다. 미국 조세법이 가족 보육자 자격을 여성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루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지를 발휘하여 이 사건의 항소를 맡는다.     


이 재판을 변호하며 자료를 조사하던 루스는 놀라고 만다. 미국의 많은 법들이 여성을 차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남성도 역차별을 받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만 해도 미혼남성이 어머니를 돌보아서는 안 되고, 돌보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있다. 루스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회 곳곳에 깔려 있다고 말한다. 사내아이는 간호사나 교사가 되면 안 된다, 비서가 되면 안 된다, 저녁을 차려서는 안 된다는 것 등등.     

그러나 민주주의 원칙은 남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두 성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은 성별에 근거하여 세금에 대한 혜택을 다르게 부과할 수 없다. 시대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역설적으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나타나고 있다. 


치밀한 논증과 정교한 언어로 법의 불합리한 모순을 파헤치면서 분노한 루스는 외친다.

"재판장님, 우리 여성들은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카틸리나여,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 텐가?’<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아무 백도 갖추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로마 일인자가 된 키케로가 특권층이었던 카틸리나에 대적하여 던진 이 말은 20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미국의 법정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정치적 투쟁과 주장이 ”원로원“이라는 대화의 장에서 합리적으로 소통되었듯이 사회적 차별은 미국 법정에서 이성적, 논리적 변론으로 드디어 폐지되고 법 개정에까지 이른다.    


로마의 경우, 적어도 키케로의 말에 따르면, 원로원들은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할 인내심을 갖고 있다. 원로원 의원이라면 누구나 다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의원들은 말하는 상대방의 지위, 나이를 따지지 않고 의견 자체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에만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부자이고, 귀족이어도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주장의 근거가 적합하지 않다면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무리 힘 없고, 불쾌함을 주는 상대라도 연설이 논리적 설득력을 갖고 있다면 박수갈채를 받고 그 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로마의 젊은이들은 항상 ‘언변 좋은 남자’가 되고 싶어 했다고,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는 말하고 있다. ‘언변 좋은 남자’는 별 게 아니라, 법(이성)에 기반 하여, 적절한 내용을 적절한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사진(우): <카틸리나를 탄핵하는 키케로> (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키케로, 오른쪽 구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카틸리나)



“정치적 저항자들을 위한 언어를 제공”했고, 그 언어로 소통할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미국은 로마와 닮아 있다. 그것이 로마가 위대해진 까닭이고, 미국이 로마에 비견되는 이유다. 

“남성들이여,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텐가?” 

“미국의 법이여,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텐가?” 




법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법을 개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모리스 사건’이 보여주듯, 완벽한 법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루스는 100년 전이라면 자신이 법정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법은 그 시대의 기후에 발 맞춰 항상 변해야 한다는 영화의 대사는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성은 법의 정신이다.”라고 했듯이, 법을 만드는 도구도 이성이어야 하고 법을 바꾸는 도구도 이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성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합리성이 존중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암묵적으로 허용해왔는가. 그러나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온 사람들은 터부시되는 것을 공론화하고 의문을 제기한 불편러들이었다. 그들은 키케로가 그랬고, 루스가 그랬던 것처럼 논리라는 수단에 의존해 호소했다. 적어도 미국과 로마는 그들을 존중했다. 우리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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