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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Jul 09. 2019

인터넷 글쓰기와 "아날로그 글쓰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리뷰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의 글쓰기에는 백신이 필요하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에게는 손쉽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소수의 학자와 작가들만이 책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 대다수 보통사람들도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한 것은 글쓰기의 대중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득뿐만 아니라 해가 되는 것도 많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빠르게 노출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공간의 속성 때문에 깊은 숙고와 성찰을 거친 글보다는 유행에 맞는 가벼운 주제와 내용이 많다. 디지털 공간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사람들은 스크롤을 내리며 내용을 훑고 넘어간다. 꼼꼼하게 읽으며 그 의미와 느낌을 파악하려하기보다는 설렁설렁 자신이 필요한 정보만 뽑아낸다. 독서가 이러한 인터넷 공간상의 독서에만 국한되다보니 글을 읽어도 중심내용이나 행간을 읽지 못하는 난독증이 늘어나고 있다. 깊이보다는 속도를 중요시하는 SNS 시대의 결과물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SNS는 종종 자기 과시적 부풀리기의 공간이 된다. 우리의 일상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한 끼 때우지만 이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대신 화려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SNS에 올라온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다거나 그래야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보며, 박탈감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은 더 그럴 듯해보여야 한다는 경쟁심도 느낀다. 그러한 경쟁 속에서, SNS는 나르시시즘의 공간이 되어간다. (“관심 받을수록 비뚤어지는 욕망”_정호훈)


블로그에서 ‘잘 팔리는 글’은 대체로 키워드를 잘 뽑아서 노출이 많이 되는 글이다. “검색엔진의 생리를 잘 분석한 블로그는 수준이 저급하더라도 수십 개의 덧글이 달린다. 반면, 신규유저가 아무리 알찬 내용의 포스팅을 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의 블로그 항목)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자신의 글에도 이웃과 덧글을 늘리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외형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글 자체가 얼마나 좋은가 여부보다는 조회수 여부로 잘 팔리는지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뉴스와 보도에서 페이크뉴스와 편협한 시각의 기사들이 판을 치는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기레기’라고 비판을 받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재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소셜미디어의 팽창”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오늘 날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세계에서는 정확한 보도 광고와 잘못된 정보를 구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마르쿨라 센터 셀리 레만 저널리즘 윤리 담당 이사) 자극적인 정보만을 빨리 소비하려하고, 정확한 사실은 검증하려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잘팔리는 글쓰기> 1회차 도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인터넷에서 잘 팔리는 글’이 정말 ‘잘 팔리는 글’이며, 대체로 좋은 글일까? 브런치는 인터넷에서 글의 수준이 가장 높은 공간으로 여겨진다. 만약 그렇다면, 브런치에서 호응을 많이 받은 글은 플랫폼을 뛰어넘어 출판을 했을 때도 ‘좋은 글’로 인정받아야 한다. 책으로 낸 브런치 글은 많이 팔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브런치 글들을 책으로 출간했을 때 알라딘 세일즈포인트가 2000을 넘어가는 것은 수십 종 중에 단 한 종뿐이다. <90년생이 온다>는 예외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성공비결이 브런치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 경우는 브런치가 작가를 배출했다기보다는 작가가 브런치를 홍보용으로 이용한 것이다.    


천문학이 밥 먹여주니 503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지구를 떠났거든요. 160

90년생이 온다 

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 1716

어린 시민 385

나는 대한민국 상사맨이다 335

사자생어 500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489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 40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 1652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1022

나는 슈퍼 계약직입니다 116

한밤의 미술관 464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지 않아 357

어서와리더는 처음이지? 1525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898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 맞았지만 856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7108

엄마, 나 시골 살래요! 196

소파 위의 변호사 311

꿈꾸던 전원주택을 짓다 1265     


브런치북 심사위원 중 하나였던 북스피어의 김홍민 사장도 이러한 세태를 지적한다. “이런 글들에서 무릎을 탁 칠만한 통찰을 찾기는 쉽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책으로 출간했을 때 인터넷에서 받았던 호응을 시장에서도 담보 받기는 힘들다.” 원인은 인터넷 환경의 구조적인 속성에서 기인한다. 


‘디지털 공간’이 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좋은 글이 나오기 위한 조건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내면을 강조한다. 유시민은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한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즉, 좋은 글은 외형이 화려해보이고, 세련된 기술로 써지는 게 아니다. 내면의 생각과 가치가 성숙해지고, 앎이 넘쳐흘러 그 결실을 맺은 것이 좋은 글이다. 삶으로 살아낸 글만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시민은 “아날로그 글쓰기”를 제시한다. 아날로그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정교화하고 숙성시킬 수 있다.

“이제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살펴보자.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 근육을 만들려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훈련해야 한다. 최대한 옛날 사람들이 하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메모지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 한 장씩 떼서 날짜를 적어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여유가 있을 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제대로 된 문장으로 쓴 다음 컴퓨터 문서 디렉터리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좋다. 가끔씩 서너 달 전에 쓴 것을 읽어보면 열에 아홉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문장이 유치하고 묘사가 서툴고 논리가 엉성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다. 글이 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키가 자라고 몸이 커지고 정신이 성장하면 예전에 입던 옷이 작아지고 예전에 하던 놀이가 유치해 보이는 것처럼, 글이 늘면 석 달 전에 쓴 글이 유치하고 서툴고 엉성해 보인다.”

이는 공자가 말한 “인이불발”과도 맞닿아 있다. 공부를 해서 무언가를 표현할 때는 배우고 익힌 것을 내면에서 충분히 성숙시키고 가다듬어야 한다. 글 또한 마찬가지이다. 삭히고 발효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호응을 많이 받아 책으로 출간된 글들이 과연 그러한 과정을 거쳤을까? 유시민이 말한 ‘내면의 글쓰기’는 플랫폼으로서의 인터넷을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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