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이 죽고 난 뒤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기자들은 강연에 온 스파이더맨에게 묻는다. “아이언맨의 자리를 이제 누가 대신하죠? 스파이더맨 당신인가요?” 스파이더맨은 이 질문에 당황하여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아이언맨의 공백은 대중들뿐만 아니라 히어로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한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아이언맨을 살리지 못했다고 계속해서 자책한다. 스파이더맨은 이렇게 말한다. “어디를 가든 그분의 얼굴이 보여요. 보고싶어요.”
미스테리오는 ‘아이언맨의 죽음’을 계속해서 이용하는 악당이다. 그는 가상의 이미지를 이용해 스스로 아이언맨의 자리를 대신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민다. 그가 스파이더맨을 무너뜨리는 것도 아이언맨의 환상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통해서이다. 미스테리오는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을 원한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믿고 싶어한다. 나는 단지 그것을 충족시켜줄 뿐이다.”
미스테리오
그렇게 ‘현대의 신’이 사라진 세상, ‘아버지’가 사라진 세상의 혼돈과 혼란, 그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아직 채 성장하지 않은 히어로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다.
아이언맨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아이언맨이 없으니, 이제 누가 우리를 구해주지?’ 그러나 아이언맨이 세계 평화를 지켜준다는 생각은 명백한 허구이며 신화이다. 아이언맨이 있을 때도 무수한 폭력과 약탈과 억압이 존재했다. 아이언맨 자신이 본의 아니게 폭력과 부조리를 낳기도 했으며(<시빌워>) 외계인의 침입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인피니티워>)
하지만 인간 사회는 공통의 허구를 믿음으로써 진화했으며, 대상에 대한 부풀린 신화를 믿는 것이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아이언맨도 필요에 의해 포장된 신화이다.
인간은 협력에 약하다. <시빌워>에서 잘 묘사되듯이, 좀만 방심하면 같은 편끼리 싸우고 내전으로 인한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 이런 재난들이 발생하는 원인은 인류가 지난 수백만년 동안 불과 수십명으로 구성된 작은 무리에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 도시와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는 불과 몇천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로 협력하는 본능이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생물학적 협력본능이 부족한 인간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신화였다. 그것은 인류가 가족, 밴드 단위의 결속을 넘어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제프리 잉햄이라는 화폐 이론가에 따르면 고대 바빌론에서는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둑이 주기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한다는 믿음 아래 왕이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이것의 진정한 목적은 부채위기로 인한 계급분열과 사회혼란을 방지하는 것이었다(<돈의 본성>). 이때 고대 바빌론 사람에게 ‘마르둑은 허구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어깨를 으쓱하고 ‘나도 알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지적의 초점이 잘못되었다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유발 하라리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권'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역사적으로 발명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궁극적으로 정당화할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생물학에 ‘자유’나 ‘평등’이나 ‘행복’과 같은 개념이 있던가.
물론 그는 보편인권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념체계라고 말하며, 이를 통해 인류 역사가 가장 “안정되고 번영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다만 현재에도 인권을 일종의 '제도적 사실'로서 지탱하는 궁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집합적 믿음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독립선언문을 보면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믿음이 기독교 신앙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언맨 신화는 기술 발달이 초래한 혼란을 은폐하고자 하는 인간 심리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이언맨은 뛰어난 두뇌와 이성적 사고로, 최첨단 기술을 통제해왔다. 그리고 그 기술을 정의와 인류를 지키는 데에 사용했다. 과학 기술의 진보는 인류 역사의 진보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구현한 대상이 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 아래, 온 인류는 진보를 위해 협력한다.
그러나 아이언맨이 없다면? <스파이더맨>은 이 점을 노린다. 인류는 아이언맨이 만든 시스템 ‘이디스’에 의해 역으로 공격받는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로 등장한 드론이 공격무기가 되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는 결국 좋은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누가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대신 통제해줄 주인을 원한다. 그렇게 해서 그 시스템이 통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원한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허구이다. 왜냐하면, ‘미스테리오’의 태생이 바로 신이었던, 아버지였던 아이언맨의 경솔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설’이 되었지만, 해피가 추억하듯 히어로이기 이전에 인간 토니 스타크는 경솔했고, 늘 저지르고 후회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기술은 통제되지 않았다.(<에이지오브울트론>) 그렇게 영화는 '신화'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앞에 등장한 어마어마한 빌런이 '조작된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그곳을 향해 돌진한다. 그건, 자신을 짓눌렀던 어쩌면 또 하나의 조작된 환상일 수 있는, 신화가 된 아버지 아이언맨을 향한 돌진이요, 그저 어리숙한 착한 소년에 불과했던 자신의 지난날의 극복이다.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의 신화를 파괴하고 극복함으로서 그 자신이 신화가 된다. 신화적 서사의 틀을 빌려오는 것. 그것은 대장정의 막을 내린 어벤져스 시리즈를 마블이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아버지를 극복해야만 스스로 히어로로 거듭날 수 있었던 신화 속 히어로들처럼 소년 스파이더맨은 '아버지의 과오'가 잉태한 집단 '미스테리오'를 통해 자신의 어깨를 짓눌렀던 부담에서 한결 가볍게 첫 발을 내딛는다.
영화는 이러한 허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때로는 허상도 필요하다. 필요한 허상과 폐기해야 할 허상이 있을 것이다. 아이언맨이나 인권과 같은 경우는 인류에게 필요한 허상이다. 미스테리오 같은 경우는 필요 없는 허상이다.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대중이 ‘허상’과 ‘허상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 데에 있지 않을까? 미스테리오의 존재는 미국 자체가 거대한 이미지 국가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환상에 불과한 미스테리오를 없앴다고 안심한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스파이더맨은 정보를 조작하는 미디어 매체에 의해 공격받는다. 미디어가 편집을 통해 생성한 거짓 정보로 스파이더맨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결국 미스테리오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허구 또는 환상임을 직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도 ‘영화 한 편 잘 봤네’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극장에서 나오는 순간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환상(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