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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Jul 17. 2019

소설과 비문학의 경계는 없다

<유혹하는 글쓰기> 리뷰

‘너가 읽는 그 소설이 순도 100%의 허구일까?’ 여기에 한 작가가 있습니다. 이름은 레오나르. 자신의 불륜 스토리를 소설에 담습니다. 레오나르의 전 부인인 솔랑주는 소설 속에서 베로니크 파스트로로 구현됩니다. 현 부인인 발레리는 소설 속에서 오리안이라는 등장인물과 흡사합니다. 소설 속 제니아는 자신과 불륜관계에 있는 셀레나를 형상화한 인물입니다. 심지어 소설 속 화자 이름도 레오나르이고, 소설가입니다. 소설의 화자가 사는 아파트와 동네도 작가 본인이 사는 곳과 같습니다. 작가를 아는 사람은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영화 <논픽션>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영화만의 이야기일까요? 자신의 인생사를 소설에 담아낸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대표적인 작가가 아니 에르노입니다. 그녀는 연하의 유부남과의 불륜을 소설에 담아냈습니다. 자신의 딸이 불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소설에 담아낸 부분은 매우 인상 깊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고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고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p.22”    
아니 에르노와 <단순한 열정>

이런 작가들은 한결같이 같은 주장을 반복합니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명확한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고. 과연 그럴까요? 한 인간이 타인들과 맺는 관계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입니다.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서 동일인물을 봐도 다 다르게 느끼는 거죠.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논픽션이나 픽션이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는 정치의 영역에서도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진실과 사실이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각자의 선입관이 정해진 허구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죠. 디지털의 발달이 비밀을 없애고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어 모든 것이 명백한 사실이 되었지만, 오히려 사실들이 범람하게 됨으로서 사실은 이전의 가치를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라면, 소설과 비문학의 경계도 불분명한 것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정말 소설일까요? 아니면 에세이일까요? 자신의 경험담과 이야기를 뒤섞어 쓴 비문학 글이 있다면, 무자르듯이 ‘이건 비문학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책의 대표적인 예가 보르헤스의 ‘픽션들’입니다.)    

어디까지가 픽션? 어디까지가 논픽션?

그렇기에 소설의 기법과 비문학의 기법을 따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소설을 쓸 때의 원칙과 방식을 비문학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소설 기법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르쳐주는 소설작문기법을 비문학 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는 책에서 어떤 소설기법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의 비문학 글쓰기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스토리


스토리는 글을 읽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모두를 단결시키는 것은 무엇인가요? 군대인가요? 황금? 깃발? 스토리입니다. 훌륭한 스토리보다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창칼로 무찌를 수 없는 것이죠. 더 나은 스토리를 가진 이는 없습니다. ‘부서진 브랜’보다요.” 왕좌의 게임 시즌 8의 티리온의 대사입니다. 결국 우리의 역사, 전쟁의 승리, 패배, 결혼 등 모든 스토리를 알고 있는 브랜이 왕이 됩니다. 결국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권력 투쟁도 스토리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스토리입니다.    

왕좌의 게임 아시나요..? ㅋㅋ

그렇기에 개인의 스토리를 궁금해 하는 욕망을 조금만 자극하면 사람들을 잡아 끌 수 있습니다. 썰을 푼다고 하죠? 글의 서두를 개인의 경험담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썰을 글에 조금씩 섞어주는겁니다. 그 다음에는 경험담을 통해 배운 자신의 생각, 주장을 쓰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특정 이론이나 반대되는 주장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에 살을 붙이거나 정교화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주장에 대한 논증(<글쓰기 특강>)을 하면 더 할 나위 없이 탁월한 글이 되지 않을까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경험담을 갖고 오는 것이죠. 개인 경험담을 쓰는 것이 부담된다면, 서사가 있는 이야기라면 어떤 것도 좋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본인이 글에 담고 있는 메시지와 스토리가 잘 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뚱맞은 스토리는 오히려 읽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스토리 중에서 어떤 스토리가 독자의 흥미를 자아낼까요? 글에 쓸 좋은 스토리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흉터’가 있는 스토리입니다. 흉터는 (다른 어떤 것과의) 극적인 충돌,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상흔, 안전과 통제력 상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흉터가 있는 스토리는 극적인 충돌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뜨겁습니다. 생생하고, 극적입니다. 또한 아픈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길티플레저’가 있는 스토리입니다. 정작 남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드라마 보기, 혹은 입안 가득 생크림 짜 넣기 등 당신만의 ‘길티 플레저’를 글 속에 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실패담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스스로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쾌락에 관심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밀을 훔쳐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 때문입니다.      


'묘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것을 '취사선택'해서 거기에 집중하는 것.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할 수는 없다.
묘사


두 번째는 묘사입니다. 이 책도 분명히 주장-논증으로 이루어진 비문학 글이지만, 스티븐 킹은 자신의 글에 묘사를 활용합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낼 때 묘사를 사용하는것이죠. 확실히 장면이 잘 떠오르고 섬세합니다. 그는 묘사를 잘 하는 비결을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이라고 제시합니다.     


‘묘사’는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글에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특정 부분을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묘사입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것을 봅니다. 그것을 글 전체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해 글에 담습니다. 어떤 글쓰기 강사는 묘사를 잘하는 방법으로 ‘그림 전체’ 곧 이야기 전체를 보여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종이로 손톱만 한 창을 만들어 보이는 이야기의 일면에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특정 부분을 쓸 것인가, 이야기할 것인가는 문학 비문학을 통틀어 모든 작가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며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묘사’를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생략도 해야 하는데, 생략은 글에 역동감을 부여하고 흥미를 자아냅니다.       


그러니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묘사는 ‘요약, 발췌’의 소설판 버전이라고. 다만 묘사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요약은 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서평에도 ‘요약’뿐만 아니라 ‘묘사’가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대화문은 글의 응축된 '정수'이므로, 대화문에는 진실을 담아야 한다.
대화문


마지막은 대화문입니다. 대화문은 서사를 전개시키는 도구만이 아닙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 서사를 응축해서 간결하게 표현하는 글의 정수입니다. 그렇기에 잘 쓰인 대화는 독자에게 글의 메시지를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킹도 이 점에 주목합니다. 그는 대화를 더욱 간결하게 만들 것을 권합니다. 대화문에서 부사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는 몹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는 간결하지가 못합니다. 몹시 화가 나있다는 것을 독자도 이미 알 수 있게끔 한다면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말했다.” 이런 식으로 쓸 것을 권합니다.    


또한 대화문을 계속해서 이어지는 줄글 사이사이에 배치한다면, 독자를 환기하는 효과도 가지게 됩니다. 눈은 피로해지고 긴장감은 점점 떨어지는 독자를 다시 글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윤pd님이 쓰신 다음 글은 대화를 잘 활용해서 이런 효과를 부른 글인 것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headbomb/221559961313



아무리 비문학이라도, 글에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재미를 담당하는 부분은 ‘스토리’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 ‘스토리’를 ‘비문학’에 잘 버무리면 재미도 있으면서 유익한 글이 됩니다. 글을 닭고기에 비유한다면 글쓰기의 기본원칙만 철저하게 지킨 글은 닭 가슴살입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하더라도, 닭가슴살만 먹으면 입이 텁텁합니다. 목이 메입니다. 고기에는 적당한 기름기가 있어야 맛있죠. 그 기름기를 담당하는 것이 소설 창작의 요소입니다.    


글쓰기 원칙에만 충실한 글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고, ‘잘 팔리는 글’을 목적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재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원칙에만 충실한 글은 유시민이 말했던 ‘요약, 주장 논증, 주제에 집중하기’의 원칙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유시민 본인도 <글쓰기 특강>에서는 대학시절 경험, 감옥에 수감됬을 때의 이야기 등 자신의 스토리를 버무려 이러한 책을 풀어냈습니다. 조금 더 글이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지기를 원한다면, 스티븐 킹이 말한 소설작문 원칙을 우리의 글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이며, 그것이 진정으로 ‘유혹하는 글’을 쓰는 법이 아닐까요?    


물론 이것들은 다 이론입니다. 연애 이론은 빠삭한데 실제 연애 경험은 없는 사람들이 있죠. 아무 소용 없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100개의 이론보다 그 이론을 실천으로 옮긴 한 번의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이론만을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엉덩이 붙이고 하나의 글이라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그가 삶으로 몸소 보여준 글쓰기 비법이 있다면 바로 ‘많이 읽고, 많이 써라’일 것입니다. 지금 당장 펜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잘팔리는 글쓰기> 3회차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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