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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Jul 31. 2019

이제는 문법책을 그만 놓아주자

문법책 밖에서 생각하기-<나의한국어바로쓰기노트>리뷰

‘언어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문법책은 갖다버려라.’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실 이런 말도 틀린 것이 아닌 것이 우리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모국어 사용자가 문법책을 보는 일은 거의 없죠. 그 근거를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내던져버려라’라고 말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는 무수한 연습문제들이 나옵니다. 그 연습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동생이 "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말했다.

2.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성모 마리아와도 같은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3. 나는 아파 학교에 안 갔다.

4. 계약 체결 여부에 따라서 회사가 살아날 수도 있다.

5. 그와 함께 동행했다.

6. 접수하러 간다.

7.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세 살 밖에 안 되었다.

8. 나는 그에 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9. 그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10. 그에게 부담을 지웠다.    


정답

1. X, 동생이 "난 학교에 안 가겠다."라고 말했다.

2. X, 그녀는 나에게 성모 마리아와도 같은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3. X, 나는 아파서 학교에 안 갔다.

4. X, 계약 체결 여부에 따라서 회사가 살아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5. X, 그와 함께 갔다 또는 그와 동행했다. (동행이라는 한자어에 이미 의미가 포함되어 의미 중복)

6. X, 내러 갔다. (접수의 뜻은 '신청이나 신고 따위를 구두나 문서로 받다.'이다.)

7. X,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세 살이었다. (겨우는 긍정형 서술어와 쓰일 수 있음)

8. X, 나는 그에 관해서 전혀 아는 바 없다. (이유를 아시는 분께서는 댓글에 달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9. X, 그는 발이 손이 되도록 빌었다.

10. X, 그에게 부담을 지웠다. (부담의 뜻은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짐'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ini02006/221596197431

저는 이 문제를 풀어보았는데, 3개 이상 틀렸습니다. 5개 이상 틀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개 이상만 틀린 사람한테도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 좀 하세요.’ 예전에는 제가 공부가 덜 된줄 알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공부를 하느니, 이 책을 과감히 버리겠다고.    


이 책을 비롯한 문법책에는 항상 연습문제가 나옵니다. 문법을 설명하고, 그 문법의 기초를 토대로 연습문제에 적용해보라는 것이죠. 그러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와도 같이, 어떤 불변의 원리나 문법 법칙 있어서 우리는 그 원리를 개별문제에 적용하는 걸까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문법이 연습문제를 낳는 것이 아니라, 문법은 연습문제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즉, 법칙을 형성하는 객관적인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문제와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법칙이 생긴 것이 더 맞다는 말이죠. 특정한 원리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례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법이 만들어집니다. 법은 이 상호관계들을 하나로 묶은 형식적인 범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모국어 사용자가 봤을 때,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연습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니면 그 문법사항은 폐기해야 맞는 것입니다.    

이 유비가 아닙니다..ㅋㅋ

이론이나 법(문법도 법이니..)은 범례(모범적인 예)에 대한 유비성을 기반으로 해서 구축된다고 합니다. ‘상대가 해를 가했다고 해서, 똑같이 복수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철수가 영희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행동하지 않은 모범적인 사례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적절한 행동을 취한 모범적인 사례가 법 자체인것이죠.     


하나의 모범적인 케이스가 법이 된 것은 유비성의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유비성의 논리는 이런 것입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큰 폭력을 가해 영희의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러면 이때 영희는 철수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어야할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영희가 갑순의 팔을 부러뜨렸을 때) 갑순이 영희에게 똑같이 되갚아주는 것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게 옳은 일이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나오고 혼란에 빠지겠죠.) 영희가 철수에게 똑같이 응수하지 않은 범례는 갑순과 영희의 상황을 토대로 해서 유비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철수와 영희의 상황을 판단할 근거는 갑순과 영희의 상황을 모범적인 사례로 삼았기 때문이죠.     


비슷한 일이 3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도시국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웃인 테베 사람들과 전쟁을 해야 할 것을 놓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결론은 ‘아니다’였습니다. 테베 사람들이 그들의 이웃인 포시 사람들과 전쟁을 하는 것은 악한 짓이다. 바로 이런 사례가 범례입니다. 지금 논쟁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정확하게 유비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테베 사람들과 전쟁을 하는 것도 악한 짓이다. 결국 3000년 전의 이 법은 (유비성에 근거해) 지금의 상황으로까지 경신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비성의 논리는 문법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학생들이 라틴어를 배울 때, 사랑하다(love)는 동사의 활용을 배우게 되는데, “나는 사랑한다”, “너는 사랑한다”, “그는/그녀는/그것은 사랑한다”는 동사의 활용은 라틴어에서 amo, ams, amat입니다. 이것이 범례입니다. 다른 동사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이를 모방하면 됩니다. 이 범례를 토대로 ‘라틴어 동사에는 4가지 변화형이 있다’는 문법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어 문법에 국한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한국어를 배울 때, ‘마신다’라는 동사의 어미 변화를 배우게 되는데, 그가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를 마셔(요).’ ‘커피를 마시지(요).’ ‘커피를 마시네(요).’ 등 다양하게 어미가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범례입니다. 다른 동사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이를 모방하면 됩니다. 이 범례를 토대로 비슷한 용례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충돌회피, 불규칙 활용, 매개모임 및 ㄹ탈락’ 등의 문법규칙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미 뿐만 아니라 다른 문법사항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주격조사 ‘이’가 행위를 나타내는 주어에 붙는다면, 설명의 대상이 되는 주제어에는 보조사 ‘은’이 붙는다”는 문법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달이 몹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음이 상쾌해졌다’와 같은 범례를 하나로 묶어주는 법칙입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라는 문장에 ‘은’ 대신 ‘이’를 쓴 것은 ‘달이 몹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라는 문장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은‘보다는 ’이‘를 쓰는 것이 맞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슷한 문장(범례, 용례)들이 쌓여서 ’아, 이런 문장을 쓸 때는 ‘은’보다는 ‘이’를 쓰는 게 맞겠구나‘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러이러한 때는 ‘이’를 쓴다‘라는 문법항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달이 몹시 밝게 빛났다’라는 문장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라는 문장에서 같은 것은 ‘이’라는 단어 한글자일뿐입니다. 단지 구조가 유사하니까, 닮아있으니까 “‘이’를 쓴다”는 문법이 적용되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입니다.    


법(또는 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 판례의 유비성에 따라 현재 판결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죠. (이전에 쓰던 문법 관례에 따라, 신조어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결정됩니다.) 관습법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개별 문법에 전체를 꿰뚫는 공통점이나 원리는 없죠. 문법을 익힌다는 것은 이런 범례들을 중심으로 학습을 한 뒤, 이런 범례들과 닮아있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적절한 범례를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범례에 반대되는 변칙 사례들이 발견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외떨어진 언어습관(은어)이나 오류로 치부되죠. 이런 건 잘 포착도 되지 않습니다. 문법에 익숙한 사람은 문법적인 것만 보게 되니까요. 'thsi is apple'이라고 쓰인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틀린 것을 몰라요. 사람은 익숙해진 것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변칙현상은 규칙성에 반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나 맞다고 예상한 것에 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게 처음에는 부자연스럽지만, 이런 것들이 점점 많아지면 문법이 변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법은 이런 식으로 변화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물 흐르듯이 점진적으로 바뀌어온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단절적이었죠.     

법칙의 변화가 단절적(혁명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의 대표사례

'범례'(연습문제)에 문제가 있으면 '범례'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문법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게임의 예를 다시 들겠습니다. 땅따먹기와도 같은 게임의 규칙은 절대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땅따먹기라는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행동했던 범례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놀이를 하는 과정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죠.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게임의 규칙은 그것에 참가한 사람들이 게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인터페이스’에 불과합니다.     

같은 게임이지만, 대체 어떤 공통점이..?그저 조금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이 둘을 특징 짓는 공통점을 추출할수는 없다.

이렇게 언어를 게임에 빗대어 설명한다는 것은 곧 언어가 그것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언어활동과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언어의 의미나 규칙은 전적으로 언어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규칙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양식'에 기반하여 만들어져야 합니다. 다양한 사례들이 모여서 삶의 양식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문법의 존재이유는 삶의 양식을 반영하기 위함이니까, '삶의 양식'에 기반하지 않은 문법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게임=언어라는 이 논리도 법이나 이론, 언어 모두가 기반으로 하는 '유비성'의 논리에 근거해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언어관과 반대되는 고전적 언어관에 관한, 과거 수능문제인데 답이 뭘까요? 글을 충실히 읽었으면 풀 수 있습니다. (힌트: 오른쪽 그림)

위내용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겠습니다. 문법은 연습문제(범례)를 토대로 하여 형성된 것이며, 문법을 익힌다는 것은 이 연습문제들에 익숙해진다는 것인데, 이 연습문제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범례에 반대되는 변칙사례가 그만큼 많아졌고 이것이 언어생활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기에) 책에서 제시된 문법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문법만을 위한 문법은 존재해서는 안 되고, 더는 언어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법은 폐기되어야 하니까요.    


문법책은 사실 범례들 모음집이며, 범례를 익혀 언어를 학습하기 위한 아주 좋은 수단입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입장이라면, 문법책을 통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러나 모국어 사용자라면 범례를 익힐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충분히 주어져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문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실생활에서 듣고쓰는 말과 글이 문법책입니다. 또 그렇 되어야 합니다. 닫힌 세계 속의 한정된 범례들만 담긴 문법책은 변칙사례들을 포괄할 수 없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언어사용자의 실력이 발전하는 것을 제약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변칙사례를 반영해 문법책을 새로 쓰고, 새로 쓴 책으로 공부하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변칙사례는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또한 그러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데 차라리 그럴 바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는 다른 집단에 가본다든지 새로운 언어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언어를 습득(변칙사례를 기반으로 문법변경)하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문법공부가 문법만을 위한 공부가 되게 해서는 안고 문법책이 문법책을 위한 문법책이 되게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러니 한국어 사용자라면, 이 책을 비롯하여 권면과 훈계들이 담긴 무수한 문법책들은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과거의 예술은 추상적 실체(이데아)가 담긴 세계를 재현하려고 노력했으나, 현대의 미술은 (이제 그런게 없음을 깨닫고) 닮음에 기초한 무수한 관계들의 유희만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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