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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Nov 24. 2019

고전적 정치교본의 부활, <군주론>

<군주론>을 읽고

1. 마키아벨리와 현실주의    

 마키아벨리는 당대의 파격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이 새로웠고, 파격이었다면,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파악해서 정치행위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방침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기존의 정치철학이 인정하기를 거부했지만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본능을 인정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권력의 추구와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그로 인한 권력투쟁은 제어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인간 본성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정치는 인간의 이기적 이익 추구가 빚어내는 권력을 둘러싼 쟁투,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악, 폭력, 부패, 타락과 같은 부정적 현상과 불가피하게 혼합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성격들이 정치의 특성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정치를 바라보는 기존의 정치관은 어땠냐 하면,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상당히 이상적인 정치를 꿈꿉니다.     


정치의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정치를 이상적이고 도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정치가 파생시키는 부정적 현상들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종교적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만이 정당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과적으로 정치를 부정적으로 이해하게 만들뿐입니다. 정치와 윤리,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었고, 정치는 윤리의 하위 범주 내지 종교의 세속적 실천을 위한 하위 분야로 자리 매김 되었습니다. 앞의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르는 정치철학이라면, 뒤의 것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이해되는 정치사상입니다. 아무튼 둘 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를 지배하는 통속적인 관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도덕적 규범이나 종교의 세속적 실천의 규칙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더 멀어지고 정치의 타락은 더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것은 바로 이 패러독스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5장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 문제에 매달려 실제로 행해지는 문제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파멸로 이끌리기 쉽다. 어떤 상황에서도 착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착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반드시 파멸하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한 국가의 통치자가 신의를 파기하고 국가 간의 조약과 약속을 무효화하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다반사일 때, 도덕률에 따라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우와 사자를 모방”(17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악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선하지 않을 수 있음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정치가 천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할 때, 결과적으로 현실 정치에 아무 소용없거나 오히려 정치를 더 타락시키는 도덕적 담론보다는, 정치의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한 새로운 처방이 필요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 출발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군주론>과 공민왕의 개혁정치     


정치에 대한 분석은 현실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에 그는 현실 문제를 냉철하게 관찰하게 됩니다. 그 결과 쓰여진 것이 바로 <군주론>이라는 명저입니다. <군주론>에서 그는 현실정치의 특성과 한 사람의 통치자가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고 할 때 갖춰야 할 자세와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떠나서, 무엇보다 그의 통찰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현실 개혁에 관한 그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어, 한국의 역사에 적용해보더라도 결코 틀리지 않는 통찰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마키아벨리의 분석과 생각들을 읽으면서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정책과 그를 수행했던 신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관점이 어떠한 점에서 고려 말에 적용될 수 있는지, 또 공민왕과 신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민왕 시기에는 친원파들이 원나라를 등에 업고 고려의 정치, 경제 권력을 독점하던 때였습니다. 그들의 경제적 기반은 백성들의 것을 빼앗고, 백성들을 착취함으로써 형성된 것이기에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아무 힘없는 백성들의 것만을 빼앗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고려의 권문세족들은 나중에 중소지주의 토지까지 침탈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소지주인 사대부들은 지식인들입니다. 유학자들이었습니다. 일반 백성처럼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세력의 불만이 쌓이는 것이 공민왕에게는 더 위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비판적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권문세족의 토지침탈을 용인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체제 문제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체제에 저항할만한 어느 정도 힘이 있기 때문에 사대부들은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공민왕은 일반 백성(=민중)과 권문세족과 사대부(=귀족) 모두가 등을 돌릴 수 있는 위태위태한 시기를 통치한 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이 왜 꼭 필요한 것이냐에 대해서 마키아벨리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답할 것입니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군주란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랑받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어떻게든 평판을 유지하라’고 합니다. 군대와 외세에만 의존한 군주의 입지는 약하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인민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권문세족의 권력 독점으로 민중이 등을 돌린다면, 공민왕으로서는 입지가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었습니다.     


“귀족의 목적이 억압하는 데 있고, 민중의 목적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라는, 민중과 귀족이라는 두 중심적인 사회집단의 행동 정향의 차이를 파악하는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보다는 민중과 더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귀족에 비해 민중은 다수이기에, 군주가 민중을 적대적으로 만들 경우 권력을 상실할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통치자가 귀족과 적대하게 되더라도 민중과 친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면, 민중과 적대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군주론 9장에서 저자는, “민중을 기반으로 서있는 자는 진흙 위에 서있는 것 같다.”라는 격언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 격언을 인용한 것은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그것은, 민중은 적절하게 관리된다면 성채, 동맹국, 용병보다 군주의 국가를 위해 좀 더 견실한 기반을 제공할 것임을 주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통치자와 민중의 이익은 필연적으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합치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정치체제를 취하고 있건, 정치체제의 유형 문제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수를 권력 자원으로 하고 다수 인구를 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귀족과 평민간의 갈등은 정치적 역동성의 중심적 동력이 됩니다. 민중을 적으로 돌릴 때 통치자의 지배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귀족을 적대하게 될 때 군주가 자신을 보호하기란 민중을 적대할 때보다 쉽습니다. 그렇기에 군주는 계속해서 민중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민중의 이익과 요구는 단순하므로 이들을 보호할 때 이들로부터 쉽게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잘 질서 잡힌 국가는 공적 재산은 부유하게 하고, 그들의 시민들은 가난하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지혜롭고 현명한 기준에서 평등하고 온건한 부의 분배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 법적개혁“을 긍정적으로 인정합니다. 요컨대 마키아벨리는 토지개혁법에 반대하는 고려 말 귀족들의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토지 개혁 자체는, 국가가 소유한 공적 소유의 방대한 토지가 사유화됨으로써 권문세족과 농민 간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고려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개혁은 사회 안정과 공존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그 점에서 마키아벨리 또한 긍정적으로 평했을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공민왕의 개혁은 시대의 필연적인 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라면, 그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공민왕의 개혁정책은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개혁정치의 어려움을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스스로 새로운 질서와 통치 방식을 도입하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것보다 실천하기 더 어렵고, 성공이 더 의심스럽고, 다루기 더 위험한 일도 없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신생 개혁군주들은 구체제에서 이익을 얻던 사람 모두를 적으로서 대면하게 되는 반면, 새로운 체제에서 이익을 얻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단지 미온적인 지지만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런 미온적 태도는 적대자들에 대한 무서움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적대자들은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민왕의 개혁정책은 권문세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됩니다. 이때 권문세족은 모든 공직을 장악하고, 원나라를 등에 업어 고려의 법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민왕의 개혁정책이 좌절된 또 다른 이유는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미온적 지지만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개혁추진세력이 개혁 대상과 일부 겹쳤기 때문입니다. 공민왕의 초기 개혁정책은 공민왕의 모후 명덕태후의 조카이자 공민왕의 외사촌 형인 홍언박과 공민왕이 연경에 있을 때의 시종공신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외척과 시종들은 개혁 세력이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민왕의 초기 개혁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 뒤 공민왕은 승려인 신돈을 이용해 개혁정책을 수행하려 하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공민왕이라는 체제 개혁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있지 못하고 타인에 의존해서 개혁을 진행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체제개혁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있는지 아니면 타인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의 과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타인의 도움을 구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전자의 경우 이들은 항상 나쁜 결말을 보게 되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의지하고,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하는 일이 발생했다.   

공민왕은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는데, 신돈에게 모든 것을 일임해서 개혁을 진행합니다. 결국 신돈은 강력한 권력을 얻게 됩니다. 신돈이 권문세족의 땅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자 백성들은 신돈을 두고 “성인이 나왔다”라고 칭송합니다. 결국 신돈의 권력은 공민왕 자신에게 도모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자체로 위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다른 누군가를 강력한 권력이 되게 하는 자는 그로 인해 파멸한다’고 말한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신돈이 정말 공민왕에게 반역을 일으키려 했건 안했건 그의 권력은 왕에게 위협적이었고 결국 공민왕은 신돈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그렇게 해서 막을 내리고, 결국 그가 시도하려했던 개혁은 ‘무장한 예언자’인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에 의해 성취됩니다.    


3. 책을 덮으며


마키아벨리의 책은 500년 전에 쓰여진 책이고, 분열된 이탈리아라는 특수한 정세에 맞게 쓰여진 책이기에 책에 나온 통찰들을 그대로 우리 시대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내내 견지했던 태도, 현실의 정치 특히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와 관련해서 도덕과 윤리의 굴레를 벗어던진 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참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인간의 본성 자체를 직시하고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이러한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라고 해서 고려 말 공민왕의 시대와 크게 다를까요? 양극화가 심해지는 가운데, 빈민층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말이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소출의 8~9할을 뜯어가던 고려 사회와 한 달에 20~30만원 버는 폐지 줍는 빈민층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한국사회가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또한 얼마 전에는 검찰개혁이 화두가 되었고, 개혁을 추진하던 조국이 적대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실각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개혁가들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아직도 유효하지 않을까요?     


마키아벨리는 인류사회가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역사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역사는 끊임없이 퇴행과 경신의 과정을 반복한다는 관점, 즉 진보를 거부하고 완벽한 국가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역사관을 가졌습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치 공동체는 언제나 해체의 위험에 직면하고 그런 경향에 반하여 생존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이런 순환론적 역사관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는 돌고 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국사태도 우리 사회만의 특수하고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과거의 보편적인 사건과 역사가 반복된 양상에 불과합니다. 즉, 우리 시대의 새로운 리더가 과거의 교훈을 통해 배우고, 고전이 되어버린 마키아벨리를 참조할 수 있는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함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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