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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9. 2019
셜록 홈즈, 제국주의 영국을 그리다
<셜록 홈즈:네개의 서명> 속에 그려진 영국의 문제들
셜록 홈즈, 빅토리아 시대의 영웅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봤을 추리 소설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 강한 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교묘하게 합리화하는 논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무수히 재탄생되고 있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 작품도 원작을 읽어보면,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복하여 재생산하는 통속적인 대중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셜록 홈즈가 쓰여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계속해서 팽창하는 제국이었고, 많은 식민지를 거느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당시 발전한 종교와 과학은 제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다른 동양의 민족보다 우월한 족속이었다. 동양의 많은 국가들을 점령하고 이들 국가의 민족들을 지배하는 것은 신의 뜻(기독교)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끄는 것이 이들의 의무였다. 또한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과 더불어서 과학적 사고가 대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의 선두에 섰던 것은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우생학을 낳았고, 이 우생학에 기반 해 피식민지인들을 열등하고 하등한 민족으로, 그들을 지배하는 영국인들은 우월하고 뛰어난 민족으로 정당화했다.
이야기의 주인공 셜록 홈즈가 보이는 자신감과 우월감도 이러한 논리가 밑바탕에 있다. 셜록 홈즈는 이야기의 초반부부터 상당히 거만하게 등장한다. 그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며, 그는 사람들을 학생 앞에 선 선생처럼 가르친다. 그는 항상 왓슨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며, 실제로 이러한 명령을 따르는 왓슨은 사실상 거의 조수나 다름이 없다. 왓슨도 똑똑하지만 홈즈보다는 한 수 아래이며, 홈즈는 그러한 왓슨에게 ‘자네는 통 내 규칙을 적용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구만’이라고 훈계하기도 한다. 그는 경찰을 까다로운 바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홈즈에게는 인내심 많은 인물로 묘사되는 왓슨말고는 별다른 친구가 없지만 그것도 논리와 추론으로 무장한 그의 매력으로 포장된다.
홈즈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신사 계급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전형적인 서양인 외모를 갖춘 그는 백인 남성이다. 그는 문제, 사건, 갈등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매우 활동적이며 정력적이다. 그는 항상 생각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며, 이성적 추론을 하지 않는 때를 한시도 참을 수 없어한다. 난해한 암호, 복잡한 분석과제를 풀지 않을 때는 코카인이나 모르핀같은 약에 의존하여 뇌를 쉴 새 없이 움직이게 한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알 수 없지만, 팔뚝을 걷어 올린 그의 팔은 주사바늘 자국으로 썩어문드러질 지경이다.
이는 당시에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해야 하는 영국 제국, 영토를 확장하지 않으면 비대해져버린 제국을 유지할 수 없는 영국과 상당히 유사하지 않은가? 제국이 존속하기 위한 방법은 계속해서 식민지를 확장해서 외부로부터의 부의 유입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국민의 높아진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으며,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제국과의 싸움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마치 홈즈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대내외적인 문제들을 쉴 새 없이 일으키고 해결함으로서 힘을 확장할 수 밖에 없다.
쉴 새 없이 이성적 추론을 하고, 이러한 추론을 통해 온갖 난해한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홈즈의 특징은 당시 사람들이 과학적 사고를 얼마나 신봉했는가를 잘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홈즈는 주로 관찰을 하고 귀납적 추론을 통해서 자신의 추리를 구성하는데 이는 다윈이 했던 과학적 방법론과 매우 일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홈즈에게 투영하였으며, 따라서 홈즈는 당대 영국인들의 전형적인 영웅이자 합리주의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셜록 홈즈는 영국판 아이언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언맨은 뛰어난 두뇌와 이성적 사고로, 최첨단 기술을 통제한다. 그리고 그 기술을 정의와 인류를 지키는 데에 사용한다. 과학 기술의 진보는 인류 역사의 진보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구현한 대상이 바로 아이언맨이다. 셜록 홈즈도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의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셜록 홈즈 또한 아이언맨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무수한 논문을 쓴 학자이며,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게다가 프로 권투 선수를 이길만큼 뛰어난 싸움실력을 갖추고 있다. 변장술에도 능통하여 노인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범인을 추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언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아이언맨 자신조차 죽음에 이르듯이, 홈즈와 그가 상징하는 영국 또한 많은 문제와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우선 홈즈 자신부터가 약물 중독자이다. 또한 홈즈의 친구인 왓슨도 식민지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절뚝거리게 된다. 이는 영국이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또한 많은 전쟁에서 패하고 있으며, 점차 패배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강대국이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수행하는 전쟁의 상흔과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소설 속에서 세포이 항쟁(인도인들이 영국에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묘사한 부분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인도는 영국의 한 지역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었소. 그런데 갑자기 20만명의 시커먼 폭도들이 몰려나와서 그곳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거요. (...) 밤마다 불타는 방갈로가 하늘을 온통 벌겋게 물들였고, 날마다 유럽인들이 처자식을 끌고 우리 농장을 지나 군대가 주둔해 있는 아그라를 향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소."
소설 속에서 악인으로 등장하는 조나단 스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매우 탐욕스러운 인물로 부를 탐내서 인도로 가지만, 그 탐욕 때문에 결국에는 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질러서 몰락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는 당시의 영국이 막대한 부의 유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서사의 이면을 낱낱이 살펴보면, 실상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더 이상 강력한 제국이 아니며 도덕적 해이와 쇠락으로 휘청거리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점철된 셜록 홈즈
영국이 이러하다면, 반대 축에 위치한 동양은 <셜록 홈즈>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셜록 홈즈 2: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통가라는 동양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대의 영국인들이 동양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통가는 인도로부터 북쪽에 위치한 한 섬의 원주민이다. 이들 원주민들의 평균 신장은 1미터 20센티가 채 안되며, 선천적으로 보기 흉한 외모를 타고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원주민을 두고, 머리는 기형적으로 크고 눈은 작고 매서우며 이목구비는 제멋대로라고 묘사하는 부분에서 우생학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돌을 매단 곤봉으로 영국인들의 머리를 때리거나 독침을 날리는데, 이러한 학살 뒤에는 반드시 식인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통가는 소설 속에서 악한 존재로 묘사되며,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악인인 조나단 스몰을 따라다니며, 그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 이렇게 동양인을 덜 발달(진화)되고, 미개한 존재로 그리는 것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양은 부가 넘치는 곳, 모험이 가득찬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작중인물들은 부를 얻기 위해 인도로 떠나고 모험을 감수한다. 모험의 보상은 엄청난 부이다. 소설 속에서 부자들이 축적한 재산은 모두 동양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며, 그들이 치장하고 있는 온갖 보석과 사치품들은 모두 동양의 것이다. 그리고 범죄의 동기가 되며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아그라의 보물’ 또한 사실 인도에서 강탈한 것이다. 이렇게 동양은 야만적이고도 무서운 곳인 동시에 낭만과 꿈을 품게 하는 약속된 낙원이기도 했다. 셜록 홈즈는 서양인들이 동양과 자신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동양에 대해 선입견과 환상을 갖는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셜록 홈즈에서의 정의와 악
홈즈는 선과 정의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선과 정의는 항상 승리하고 악인은 몰락하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맺는다. 홈즈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는 범죄 수사계의 대법원이자 최종심이다.
반면 <네사람의 서명>에서 보듯이 악인은 야만적인 동양인이다. <셜록 홈즈>는 기독교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는 악한 동양인을 정복하고 교화시켜야 할 의무를 영국인들에게 부여한다. 세포이 항쟁과 같이 공식적인 영역에서는 패할지도 모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무력함을 노출할지라도(경찰은 항상 범인을 못잡는 무력한 존재로 묘사된다) 악인은 항상 홈즈에 의해 마땅한 처벌을 받는다. 그렇게 홈즈는 죄인을 밝혀내고 악을 응징함으로써 정의와 공정함을 실현하는 화신이 된다.
그런데 핵심은 정의와 공정의 편에 서는 것은 영국을 대변하는 것은 홈즈이며 동양적인 것은 악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을 통해 소설은 과학적 사고와 합리주의에 기초한 영국제국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시에 식민지전쟁에서의 영국의 불안과 무력함은 교묘히 은폐된다.
세포이 폭동-인도인들의 반란을 영국인들의 관점에서 묘사한 그림우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 했던 안중근 의사의 행동을 의거라고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것을 강자의 입장에서 테러라는 범주에 넣고 계속해서 폄하하려고 시도한다. 사실 세포이에서 일어난 일 또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에 가까웠지만 영국인들은 이를 폭동과 반란으로 깎아내리려 한다. 이 소설 역시 당시 영국인의 관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세포이 항쟁을 세포이 폭동으로, 힌두교를 악마숭배자 집단으로 교묘히 바꿔치고 있다.
<네 사람의 서명>은 왜 <세 사람의 서명>으로 바뀌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