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장의 매력 3가지? “정년이 없는 것·치매예방에 효과적·성취감”
홍익가구공예사 소병진 명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병진 명장은 지난 1965년에 전주 중앙가구점에 기능공으로 입문해 10년 후 1974년 서울 인사동 동일가구에 숙련공으로 전통가구 수가반에 취업했으며 고급기술을 습득했다.
이후 1977년 전주에서 홍익가구공예사로 개업을 했는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간판을 홍익가구공예사로 정하고 지금까지 50여년을 한결같이 장인정신으로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1992년 대한민국 명장(가구제작)으로 선정됐으며 2012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전주장으로 인정받고 2014년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으로 인정받았다. 2016년 우석대학교 미술학 석사를 취득했고 2023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1992년에 대통령 표창, 2004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명장 가구 제작 1호이자 최연소 명장 소병진 목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명장이 된 배경, 비결, 소목장의 매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다음은 소병진 명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명장님께선 대한민국 명장 가구 제작 1호이자 최연소 명장이십니다. 이 길로 가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1992년 40세에 가구제작 분야 최초, 최연소, 명장으로 선정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은 나에게 사치다라는 생각이 들어 일찍이 중학교 2년을 마치고 기술자가 되어야겠다는 애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여 남들보다 빨리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1971년 국제 기능올림픽 전북대회에서 가구제작 은상을 수상하며 이 업을 천직으로 알고 매진했습니다. 60여년을 작업해오면서 다른 길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제자 육성에 여념이 없습니다.
Q. 15살 때부터 전북 최고의 가구공방 ‘전주중앙가구’에서 일을 시작해 보통 10년이 걸리는 기술을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습득했다고 들었습니다. 천부적 소질과 노력, 간절한 염원이 명장님을 전북 최고의 목수로 이끌게 한 것 같은데 10년이 걸리는 기술을 2년 6개월만에 습득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인생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고 봅니다. 저 역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도제공으로 처음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을 아주 잘 만났습니다.
엄하게 기술을 배웠죠. 작업만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굉장히 세밀하고 꼼꼼한 편이었고 저 역시 하루빨리 기술자가 되는 게 꿈인지라 아예 공방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야간일을 비롯 남들보다 2배는 열심히 일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니 자연적으로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었고 더불어 조상님의 천부적인 소질을 물려받고 노력과 인내라는 울타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명장님의 증조부는 조선 헌종 때 태어나 고종 때 목공과 토목을 관장하던 선공감 목수 장인이었고, 할아버지와 집안 어른들 역시 농사를 지으며 동네 소무난 대목수의 삶을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명장님의 고향이자 ‘소’씨 집성촌이던 완주군 용진면은 한 집 걸러 대목장, 소목장일 만큼 목수 마을이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배경들이 지금의 목장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증조부님이 조선 헌종 때 태어나 고종 23년 병술에 선공감을 지내셨던 만큼 그 여파로 인해 집안 어른들은 거의 다 목수 일을 하였던 터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목수 직업을 물려 받음으로서 가업의 전승이란 의지 하에 성장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고 한편으로는 고향 마을 소씨의 집성촌에서 자랑스럽게 작업에 임하며 목수로서의 삶에 커다란 이정표를 남길 수 있어 박물관이나 미술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Q. 명장님께서 1992년 대한민국 명장 가구 제작 1호이자 일제강점기 이후 끊어졌던 200년 전통가구 ‘전주장’을 성공적으로 복원한 국가 무형 문화제 제 55호 소목장입니다. 전주장을 복원했을 때의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1974~1977년 서울 인사동 동일가구에서 근무할 때 주말마다 인사동의 골동품가게를 들러보곤 하는데 ‘고도사’ 앞을 지나가는데 우인도 안에 조그마한 2층장이 아주 예쁘고 단아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안에 들어가 큐레이터와 사장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사정하며 그때부터 자주 전시장에 들락거리며 조언을 들었는데 조선시대 200여년에 전주와 완주에서 생산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이건 내 것이라며 생각하고 15년 간 재료 준비를 철저히 하였으며 1992년 명장이 되고 나서 복원에 20여 년의 세월을 연구하며 전래기법을 완전히 터득하여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Q. ‘대한민국명장 가구제작1호’ ‘국가무형문화재’ ‘대통령 표창’ ‘전라미술상’ ‘전북대상’ 등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타이틀이 있는데 평생 목수로서 걸어온 삶을 돌아봤을 때 소감이 어떻고 젊었을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목수로서의 삶을 살 건지 궁금하며 이유도 함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60여년의 목수일을 하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대한민국 명장과 국가무형유산, 대통령상을 비롯 각종 기관장상을 받을 때마다 더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국가의 지적 자산인 미래무형유산을 사장되지 않게 보호 육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어려워도 이 일을 해야하는데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다는 행복감이 있었고 건강함도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목수로 살 것이고 우리 집안 것과도 같은 전주장을 영원히 남기고자 박물관 건립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Q. 명장님의 집념으로 조선공예가 되살아났는데 향후 후순 명장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200년의 역사에 묻혀 있었던 ‘전주장’의 제작 기법을 20년에 걸쳐 복원하여 전래기법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다가 일부러 뒤늦게 학업에 열중하여 후대를 위해서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에 전주장의 모든 것(유래, 특징, 기교, 기법, 유칠, 장석 등)을 수록하여 귀중한 교육자료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즉 국가의 무형유산을 길이길이 보존하는 아름다운 미덕을 우리 스스로 지켜주길 당부합니다. 또한 2년에 걸쳐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데 내가 못하면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후대들이 꼭 등재해주기를 바랍니다.
Q.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을 가진 명장으로서 각종 대회의 심사위원이면서도 대한민국 전승공예전에 전주장에 출품을 했습니다. 전주장을 출품을 한 이유와 계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1992년 명장에 선정되고 나서 전주장 복원에 온힘을 기울이며 조선 최고의 한식가구인 전주장을 세상에 알리고자 대한민국 최고의 전승공예 대전에 인정을 받기 위해서 출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심사사원들이 전주장을 몰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전주장의 유래와 특징을 설명서와 함께 출품하니까 그 후로 인정받기 시작해서 12년만에(2004년) 최고 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때부터 세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어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측의 전주장 초대전에 그동안 복원한 작품 30여점을 전시하면서 전주장(全州欌) 무형유산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크게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Q. 인터뷰에 나와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니 명장님께선 대학에서 한 학년에 60명씩 4학년까지 240명을 가르쳤으며 그 중에서 제자가 나와 대학원생 2명을 개인지도 했고 제자 3명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추가된 제자가 있는지 궁금하며 현재도 계속해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1992년 명장 선장 이후 산업화에 따른 때마침 우석대학교 산업 디자인 학과가 개설되어 우리 같은 실기 강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그때 우석대학교 산디과에 외지에서 학생들이 대거 몰려왔죠. 분반할 정도로 많은 강의가 있어서 나의 신지식을 가르치는데 공유하고 배려하는데 참으로 행복했죠. 20년을 강의했습니다.
그 이후 2011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도 문화재수리기능자 과정의 강의 요청이 들어와서 작년까지 14년간 문화재수리기능자 양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저의 연구소 (완주소목학교)에서도 도제 교육과 이수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명장님이 생각했을 때 소목장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매력은 참으로 많죠. 첫 번째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정년이 없습니다. 둘째는 치매예방에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뇌와 팔 다리 온몸을 적당히 움직이는 꼭 필요한 유산소 운동이 됩니다. 세 번째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작품에 진가를 느끼는 안목이 생기니까요. 스스로 작가를 입증하며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일거다득의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Q. 만들었던 작품 중에 가장 애정이 많이 갔던 작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역시 전주장이죠. 전주 버선장이라는 건데요. 연대는 약 150여 년 전 거였어요. 소장자의 집에 가서 실측할 때 두근거리던 가슴이 있었죠. 너무 고급스러운 장이었으니까요. 그 장으로 제 인생이 바뀌었죠. 2년에 걸쳐 복원에 성공하여 제 29회(2004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니 애정이 클 수밖에요.
Q. 마지막으로 브랜드 뉴스 구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전통은 우리가 가꿔가야할 소중한 무형유산이고요. 아울러 귀중하게 물려줘야하는 미래 유산입니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라고 하듯이 우리 모두 국가무형유산에 아낌없는 성원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전통무형유산의 문화가 융성할 때 우리 모두의 삶에 질이 높아지고 국가의 백년대계가 한층 더 발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