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야록?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 한 선비의 치열함”

국가가 쓰지 못한 역사, 선비가 대신 쓰다

by 이예지

지난 6월 30일 제 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됐다. MBS는 매주 월요일 저녁, 경영의 해법과 새로운 통찰을 원하는 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독서모임으로 지난 30년간 누적 회원 수 국내 최대 7,500명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프라인 독서모임 MBS에서는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며 경영·경제·사회·문화·고전·지역테마 등 각 분야의 저자들에게 직접 강연을 듣고 질문하며,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도서 선정 시 각계 심사위원단의 엄정한 평가를 거쳐 해당 연도에 필요한 도서를 선정함으로써 현재 트렌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트렌드까지 가늠할 수 있어 조직에 필요로 하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도약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0433_10942_016.jpg 6월 30일 제 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강의 중인 허경진 교수

제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 열여섯 번째 강연자로 ‘매천야록’을 번역한 연세대학교 허경진 교수가 강연을 펼쳤다. 허경진 교수는 1952년 피난지 목포 양동에서 태어났으며 연민선생이 문천(文泉)이라는 호를 지어 주셨다.


1974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면서 시 '요나서'로 연세문화상을 받았고 1989년에 연세대 대학원에서 연민선생의 지도를 받아 ‘허균 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목원대 국어교육과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열상고전연구회 회장, 서울시 문화유산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허난설헌시집’ ‘허균 시선’을 비롯한 한국의 한시 총서 50권 ‘허균평전’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중인’등을 비롯한 저서 10권 ‘삼국유사’ ‘서유견문’ ‘매천야록’ ‘손암 정약전 시문집’등의 역서 10권이 있으며, 요즘은 조선통신사 문학과 수신사, 표류기 등을 연구하고 있다.


허경진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진정한 역사는 국가가 기록하지 못한 것을 담는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국가가 기록해왔다. ‘사기’를 남긴 사마천, 조선왕조실록 등 방대한 국가 기록물은 일정한 체계와 절차 속에서 후대를 위한 역사를 구성했다. 그러나 그 기록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왕이 살아 있는 동안엔 실록조차 볼 수 없고, 신하의 상소와 관청 보고서 속에 묻혀버린 목소리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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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속에서 허경진 교수는 ‘매천야록’의 중요성을 조명했다. “국가의 실록이 담지 못한 진실을 시골 선비가 기록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의미다.” 당시 황현이 있던 지역은 외부 정보가 거의 단절된 시골. 그곳에서 그는 듣고 본 것을 바탕으로 일기를 써내려갔고, 결국 망국의 기록을 남겼다. 허경진 교수는 “역사는 상상이 없다. 매천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는 보고 들은 것을 취사선택했고, 그 선택이 지금의 우리에게 진실을 다시 묻는다”고 말했다.


‘매천야록’은 서문이 없다. 목차도 없다. 날짜만 있을 뿐이다. 허경진 교수는 이에 대해 “처음엔 이렇게 죽을 줄 몰랐고, 기록이 책이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국가가 쓰지 않은 것을 내가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기록을 시작했지만, 끝은 유서가 되어버렸다”고 전했다.


매천의 기록은 친일과 저항, 변화와 몰락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지식인의 내면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에 근대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종이 수차례 파견한 수신사와 조사단이 가져온 지식, 기술, 제도들을 받아들이는 문제 앞에서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도 강조됐다.


허경진 교수는 한국에 도착한 지 140년이 된 언더우드 선교사의 연희전문학교 관련 편지를 인용하며 “총독부가 설치되던 시기, 교육과 종교를 둘러싼 권력의 압력 속에서 각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똑같은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 그러나 선택은 달랐다. 황현은 끝내 자결을 택했고, 어떤 이는 신학문을 향해 성금을 모았으며, 어떤 이는 국가 실록 밖에서 기록을 시작했다.


매천은 ‘매천야록’ 외에도 “사립 호양학교 성금 모금문” 등을 통해 “신학문에 대한 발심은 온 국민을 위한 의견”이라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공동체 전체를 향한 고민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10433_10944_112.jpg 6월 30일 제 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강의 중인 허경진 교수

강연 말미, 허경진 교수는 조선 근대화의 출발로 고종이 일본에 근대문물을 배우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사례를 언급했다. 외래 문물의 수용은 근대화의 필수 조건이었지만, 그 기준과 선택은 언제나 논쟁의 중심이었다.


“그 문물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어떤 지식이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허경진 교수는 “기록은 언제나 취사선택의 결과이며, 기록의 공백은 곧 역사적 공백”이라며, “’매천야록’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 한 선비의 치열한 눈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제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은 매주 월요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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