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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an 07. 2020

#장애이해_에세이 Q:‘볼펜드로잉’ 꿀 팁..?!

A: 당신의 손이 하는 말을 들어라!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손들. 

당신의 손을 어떠신지?


'이제 나는 


손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손 볼펜 드로잉 시작 (2012~ )      

               

             

“그릴 게 없다구요..?!
그림 소재가 얼마나 많은데..그럼 볼펜으로
 손이라도100장 채워오세요.”          

어떤 걸 그릴지 망설이는 내게

 김 강사가 하는 말.       



그림 초입이던 당시 연필 스케치 없이     

바로 볼펜으로 그린다는 게 막막하기만 하다.     

예전에도 ‘손’을 그리는 게 그림의 구도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는 들었다.               


근데 왜 하필 ‘손'인가?       

매일 보는 손. 아.. 재미없다.               


하지만 막상 나의 손을 관찰하고 그려보니     

 그런 생각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선 그림에 필요한 준비물은

 비교적 간단하다.     


0.8mm 유성볼펜 한 자루와      

A4 사이즈 연습장 한 권이면 된다.               

먼저 나의 손 형태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보통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니      

 왼 손을 관찰하는 게 편하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 선으로      

떼지 않고 길게 연결해서 그리는 게 좋다.     


손가락을 굽힐 때      

관절마다 생기는 주름의 형태로도      

손의 표정이 달라진다.     



얼굴 표정이라고 치자면..     


손을 쫙 편 모습을 그리면      


어떤 표정이 떠오를까?               


손이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손을 웅크리고 있으면     


얼굴 표정으로는 인상을 찌푸린 표정으로.       



이렇게  그림에 

상상을 하며 글을 담아내니     

손 100장씩 채워나가는 게 재미있어진다.     



이 작업을 통해 사물의      

형태감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봤다.               

볼펜 드로잉은 연필 스케치 없이      

한 번에 담아내기에      

틀리더라도 수정을 할 수 없다.     



찌그러지고 기울어도 틀린 게 아닌          

작가의 특별한 개성이 되니 이거야말로 ‘굿 잡~’                    

기울게 보는 나에게도 꼭 맞는 듯.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손을 먼저 보는 버릇이 생긴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연예인 이상으로 인기인 ‘셰프’나     

‘헤어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등.     

          

 세상엔 특별한 손으로                

멋지게 승부하는 이들이 참 많다.               

그걸 바라보는 평범한 대중들은     

 그들의 멋진 배경들만 눈에 먼저 들어온다.                              


내가 다니는 단골 헤어 숍.          


원장이 다른 고객 머리를 가위질하는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미용실 원장 'Gipson'.               

Gipson은 머리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잘한다.          

손님들 만족도도 아주 높은 편.       


그는 내 또래의 젊은 나이에     

강남에 자신의 헤어 숍을 운영하고 있다.               

늘 웃음이 많고 편해 보이는               

그의 인상에 이런 생각을 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강남에서      

직원들을 몇 명이나 두는 원장 하려면..     

집에서 뒷바라지를 잘해주나 보네.’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좀 더 친해졌다.          


언젠가 그가 말하길 ‘Gipson’이란 이름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타 이름에서 따 온 것으로     

 본명은 ‘김 기 수’라고 했다.               



 어쩌다가 언뜻 나오는      

그의 사투리 억양이 재미있어서 장난을 친다.   

            

“깁슨 원장니임~!
고향이 워디 메요~?”     

어설픈 사투리로 물으니

 그가 웃으며 대답한다.                    

“지는 강원도에서
혼자 올라왔더래요~”  
                  

알고 보니 그는 요즘 흔치 않은 ‘자수성가’다.    

                

‘Gipson’이라는 기타 이름이 말하듯          


원래는 그가 기타 연주를 잘해서      


기타리스트의 꿈이 있었단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본인의 집에선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다고.       



결국 꿈을 접고 다른 꿈에 도전한다.     

그동안 기타 연주를 하며 익힌 빠른 손놀림을     

 가위질에 응용했다는 그의 설명.       



밑바닥 미용사 보조 일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그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가위를 잡고 있던 오른손으로 빠른 가위 놀림을 보여준다.     


우아~ 손가락이 춤을 추는 건지.     


 가위가 춤을 추는 건지 빠르고 화려한 묘기.       


그의 가위 쇼가 끝나고 갑자기      

내게 왼손을 보여주었다.               

 그의 왼손은 여기저기 찢기고 꿰맨 흉터에     

지금도 막 생긴 상처인지 붙인 지 얼마 안 된      

밴드가 보인다. 오른손과 같은 사람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그가 말을 잇는다.     

“제 오른손이
컷팅하는 가위질 참 빠르죠..?
이걸 가능하게 한 왼손은
 화려한 오른손 뒤에서 묵묵히 일하며 늘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죠.”     

그의 왼손을 보니

 마음이 숙연하다.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온 건지
 왼손이 말해주네요.”   
-헤어 숍 원장 '깁슨'의 손 이야기

            오른손을 뒤에서 돕는 왼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다니는 단골 구두 수선 집 아저씨도      

오른손으로 구두수선에 왼손에 상처가 많다.  

   

예전의 나는 내 또래가 아니면 그닥      

말을 섞지 않았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다른 연령에 궁금한 점이 많아진다.     


한 평 남짓의 

작은 구두 수선집 안에서     

 늘 바쁜 60대 중 후반의 아저씨.     

그의 ‘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매장 안에
구두약 냄새도많이 나는데
   밖에 나오시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가 구두를 열심히 수선하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매일 반복되는
여기 생활이     
저한텐 그냥 천직인걸요..
허허헛...”     

          

그의 손을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오른손이 구두를 빛낼 수 있도록     

 

구두 속에 왼손을 집어넣어 자리를 잡는다.     


왼손으로 오른손에 긴 헝겊을 감아      


구두를 빛낼 뒤치다꺼리.     

이렇게 왼손으로      

끊임없이 오른손을 돕는다.   

  

-구두 수선 아저씨 손 이야기

              

나의 왼손은 

어떤지 생각해본다.     


양치질도 왼손으로 해야 하고      


상처에 연고를 바르거나 로션을 찍어 바르는      


섬세한 일까지도 이젠 왼손을 사용한다.               


물건을 줍는 일, 발톱을 자르는 일,     


심지어는 귀를 후비는 일조차도 오른손으로는 안 된다.


 무거운 짐을 드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니     


이제 생활 속 '왼손잡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오른손이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굳어지는 오른손을 사용하려면      

한가할 틈이 없다.     

          

그림의 소재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볼펜으로 손을 그리느라 바빴다.          


이렇게 담아낸 손들이      

1000장 이상이 된다.     


내 양손은 주인을 아주 잘 만나서     

 둘 다 부지런한 듯. ㅎㅎ;                              

무수히 많은 손들을 그려내면서     

 손에 공통적인 감정이 잡히기 시작한다.       



 과거 나의 감정이

 '움켜쥔 손'에 겹쳐진다.  

     

‘나는 과연 무엇을

 움켜쥐려 애써왔나?’               

'불편함’을 동정받는 게 싫다면서     

정작 본인이 장애를 당당하지 못하게      

의식했던 게 아닐까?'  

             

내 나이가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움켜쥔 손을 그리면서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삶’을 더 가치 있게 잘 쌓아가고 싶어 진다.        


그러기 위해 지금 무수히 많은 계단을     


오르고 있는 거겠지.        



그림 숙제를 하면서 이제     

 앞으로 이뤄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단지 테크닉만 강조하는 그림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미긍이 하는 손 이야기(2012.11)

그동안 힘들었던 경험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세상을 보는 눈은 불편해졌지만      


어두운 곳을 돌아보는      

‘가치 있는 눈’을 뜨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림에 따뜻한 감정을 담아내려면     


 먼저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먼저이겠지.                  


100장 그림 숙제에 종이가 아까워서     

버리려는 누런 택배 종이들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렇게 모인 종이 묶음을      

그냥 버리기엔 내 노력이 너무 아깝다.     

이 용지들로 후에 작품을 담아내는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택배종이 활용 작품으로.


마침내 2013년


 첫 번째 개인전에     


작품으로 수많은

 ‘손’들을 엮어낸다. 



- A2, A3 사이즈 원목 액자 (첫 개인전 전시/2013)          



어쨌든...
왼손과 오른손 둘 다 
        
아주 부지런히 사용해야 하는 나는 
        
 대박 축복받은 걸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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