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비로소 ‘두 개의 달’을 부른다.
-‘미긍 세상’을 열며.(2015)
늘 넘어지고 다쳐도 그걸 기억 못 해. 젠장!
내 기억력이 더뎌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 외운다고 해도
적용되지 않는 정보가 있다.
시선을 떼거나 움직임이 더 해지면
여러 개로 겹쳐 보이는 세상은 마구 어지럽게 뒤엉킨다. 사고로 ‘시각장애’가 생긴 후 보게 된 미치도록 어지러운 세상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정보야말로 머리로 암기하는 그 어떤 것과도 대신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넘어진다.
‘시각장애’로 보게 된 ‘두 개의 세상’이 두렵다.
그래도 늘 해오던 대로만 하면
변화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100장 드로잉 숙제는
내가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그토록 열심히 드나들던 김 강사의 작업실로 가는
4호선 혜화 역의 지하철 노선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게 됐으니. 2호선에서 5-3자리에서 갈아타는 거지만 출퇴근 시간엔 3-4 정도가 편하다. 갈아타는 인파들이 너무 많으니.
고정욱 작가의 초대로
혜화 ‘이음센터’ 강연에 자주 초대된다.
그동안 sns 활동은 심심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주로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고정욱 작가의 핵심을 찌르는 한 방에 그 생각은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맞는 말이다. ㅠ
나처럼 글을 쓰고 그림에 전시까지 하는 작가들에게는 특히나 sns 소통이 절실하다.
그렇지만 사실 sns 활동을
어찌할 지도 막막했다.
마침 고 작가의 소개로 행사에 온
정은상 교장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창립한 ‘맥아더스쿨’의
정은상 교장은 특히나 요즘 대두되고 있는
‘조기퇴직’ 후 제2의 일자리를 위해 sns 1대 1 코칭을 비롯 여러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그날 행사에서 그와 그렇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는데 더 감사한 소식.
알고 보니 우린 같은 아파트에 산다!
그를 멘토로 삼아 정식으로
sns 코칭을 받게 되었다.
Facebook을 처음 시작하며
그동안 내가 왜 sns 바보였는지 깨닫는다.
그건 Facebook은 특히나 서로 친구를 맺고 공감하는 등의 소통이 절대적이었다.
어쨌든 이참에
sns를 배워서 제대로 소통해보는 걸로.
사실 누군가의 앞에서
본인을 말하는 게 곤란해졌다
뇌손상으로 생겨난 시각장애와 마비되는 오른손 말고도 ‘혀’에도 마비가 생겼다.
처음에는 글을 써서 줄줄 읽으며 연습을 했다.
글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못하게 된 능력을 제대로 느낀다.
‘말을 하면서 동시에 숨을 내쉬는 게
이제 잘 안 되는구나. 휴.’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3분 짧방 ‘미긍 tv’ 생방송을 하게 된다.
말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고 sns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연습과 도전을 반복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개인방송 ‘미긍tv’를 하게 되었다.
감추려고 덮어둔 나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의 장애를 당당히 밝히는 모습에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 곧 '유튜브'에서
장애극복 ’미긍tv‘ 가 부활해요.기대해주세요!
-‘미긍tv' 시즌2
그 후로 더 놀라운 일이 생긴다.
L전자에서 facebook에 올릴 기업홍보 일러스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나야 당연히 승낙했고 L전자의 중간업체와 메신저로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업체에서 한 직원이 집으로 직접 방문한다.
"활발히 활동하는 미긍 작가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사실 직원을 보내도 되는데 제가 대신 직접 왔어요. 저는 업체 대표 장 기 덕입니다. 하하 핫.."
좀 어려 보이는 외모에 사원인가 했는데
그가 업체 대표라고?
연신 벙글벙글 웃으면서 본인을 소개를 하더니 들어와서 차를 마시며 일러스트 진행에 대해 회의를 이어나갔다. 역시 메신저 회의보다 훨씬 편하고 좋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좀 편안해진 분위기에 그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건강한 인상의 그가 본인도 '중도장애'가 있다고 밝혔다. 그때 알게 된 병이 ‘크론 병’이다.
크론병[Crohn’s disease [regional enteritis]]에 대해 알아보았다.
자가 면역질환의 하나인 만성 염증성 장 질환으로 ‘국소성 장염’이라고도 한다.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은 소장과 대장 경계 부위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의사 크론이 1932년 발견해서 크론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Google 지식백과
낫기 힘든 난치성 질환으로 다른 위장 질병들과 달리 원인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왔을 가능성은 높지만 아직 완치법이 발견되지 않은 질병.
이 질환으로 인해 그는 20대 초반부터 장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단다. 본인도 살 수 있을지 모를 힘든 상황에서 중환자실 생활을 오랜 기간 했다고도 했다.
더 알게 된 사실은 당시 그의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부도가 났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의 사망 소식,
뒤를 이은 집이 부도까지 나고.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나의 중환자실 생활을 떠올리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때 그는 그때 변해야 했다.
사실 이처럼 모든 게 엉망이 되기 이전엔
본인도 그냥 되는대로 사는 편한 인생이었단다.
절실한 마음으로 조금씩 일어난
본인의 사업, 아무리 아파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그가 더 당당해 보인다. 내 또래의 나이가 짐작이 안 가는 당찬 대학생 같은 외모인데
그는 벌써 두 아들의 멋진 아빠이기도 했다.
그날 회의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 우리는 시즌에 맞춰 크리스마스 일러스트를 계획했다.
후에 여러 안들이 그림으로 그려지고
그중에 한 컷이 채택되었다.
크리스마스. 커플들은 선물에 특별한 맛집 탐방, 카페 나들이에 저마다 예쁘게 단장하고 들뜬 분위기.
하지만 나처럼 솔로들에게는 여느 날과 크게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루 종일 tv 프로그램에 맞춰진 나의 크리스마스 일정을 그림으로 담는다.
‘Solo X-mas’다.
그런데 의외로 ‘solo X-mas'에
공감하는 이들이 꽤 많다.
저마다 solo들의 공감된다는 댓글에 나도 신난다.
‘나 말고도 tv랑 데이트하는
solo들이 많구나!ㅋ’
-solo xmas (2014)
그다음 시즌 2015 장마철에는
고객 사은품 우산의 디자인 의뢰가 들어온다.
물론 시중에도 예쁜 우산은 얼마든지 많다.
미긍 우산에는 더 특별한 의미를 담아야 한다.
비를 막아주는 우산에
긍정적인 이미지들이
담기면 어떨까?
세상 밖은 아무리 어둡고 비가 내려도
우산을 펼치면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여덟 쪽으로 나뉜 공간에 여러 긍정적인 상황들... 아이와 부모의 모습, 귀여운 아이들 표정들, 북극곰 가족들의 모습 등이 펼쳐진다.
-무한 긍정 우산 (2016)
어쨌든 이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그 후로도 그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특히 우리 엄마와 친해진 장기덕 대표.
나는 그를 ‘장떡’이라고 편하게 부르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업체에 초대됐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4층짜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빌딩에 40명가량 되는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회사 내에 샤워시설이 갖춰 있다.
직원들의 수면실까지 있어서 밤샘 작업을 해도 무리가 없다. 출근시간도 타 기업보다 늦은 편이다. 단지 직원만을 위한 배려가 아닌 오히려 업체에 애사심을 갖게 되고 업무 분위기 향상에고 큰 도움이 되는 똑똑한 발상이다.
대기업의 기획에 맞춘 마케팅이 주 업무지만 본인이 기획하는 사업도 함께 한다고.
그가 나에게 ‘향초 디자인’을 의뢰했다. 중국에서는 집집마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초를 피우는 풍습이 있는데 그가 만드는 향초는 좀 특별하다.
일단 초를 이루는 주성분도
시원한 향이 감도는 천연 아로마 성분이고
원형 모양인 향초를 모두 녹이고 나면 더 특별한 게 나온다. 바로 향초 마지막에 작은 광물 원석인 ‘소원 석’이 숨어있다. 소원석이 나올 때까지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story-telling까지 있는 아주 특별한 향초.
“예부터 달은 소원을 비는 매개체이기도 하지요.
이제 미긍 작가님이 생각하는 ‘달’을 담아 보세요.”
집에 와서 작업 고민을 많이 했다.
전에 업체에서 의뢰한 디자인보다
더 어려운 과제인데? 내가 생각하는 달이 뭐지?
달에게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을까?
‘복시’로 보게 된 '시각장애'에 대한 원망이
이렇게라도 세상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개의 시선’이 더 특별해지기까지.
나만의 두 개의 시선을 담아보기로. 사실 또렷이 보이는 두 개의 시선이라면 불편함이 덜 할지도 모르겠다. 내 시선은 오른쪽이 차단된 채
여러 겹이 뿌옇게 흩어진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두근두근.
쉬지 않고 작업을 해도 힘들지 않다.
집중을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그렇게 달을 담으며 짧은 시가 나온다.
바로 나만이 느끼는 세상 ‘두 개의 달’이다.
그에게 두 개의 달 그림을 보내며 작업 중 쓰게 된 짧은 시를 소개했다.
(작품 설명)
사고 후, 시각장애를 입어 ‘복시’로 보게 된 미긍.
‘두 개의 달’을 향초로 디자인 시와 함께 상품화.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시의 사용을 흔쾌히 허락했다.
‘두 개의 달’은 상품으로 만들어져서
시와 함께 판매되고 있다.
얼마 후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그가 다시 재입원을 하게 된다는 소식.
이젠 절개할 장도 별로 안 남았을 텐데 세균이란 건 정말 무섭다. 장의 대부분을 드러내는 수술을 했어도 완치가 없다는 ‘크론 병.’ 장떡이 다시 웃으며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퇴원 선물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