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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an 24. 2020

#그림에세이 ‘이게 웬 떡?!’

요즘 대세가 인맥은 넓힐수록 이로워지는 ‘홍보인간 (弘報人間)’이라고?!

“엄마, 올해도 어김없이 왔어요~     

새해맞이 떡국 떡!!ㅎ”      


무거운 택배 상자를 끙끙 거리며 부엌으로 옮기는 나를 도우려 엄마가 온다.      

    

“아유~ 떡 사장 어뜩해. 해마다 너무 고맙네! 올해도 1년은 거뜬히 먹겠는 걸~?ㅋ”

                   

낱개로 6~8인분 씩 압축 진공 포장된 떡은 냉동 보관하면 1년 내내 쫀득한 식감으로

정말 맛있게 먹는다.              

 

떡국 떡이 들어가면 요리가 더 든든해진다.    

김 가루를 솔솔 뿌려 고명과 담아낸 떡국은 기본이고 얼큰한 김치찌개에 넣어먹어도 좋다. 이번엔 미역국에 소고기를 대신해 북어와 떡국 떡을 넣으니 개운한 게 그 맛이 별미!  


이제 연초에

떡이 오면 느껴진다.   


   ‘새해가 시작되는구나!’


      -떡 사장과 특별한 인연 (2015~)       


                                                    




지하철 9호선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산 역에서 급행열차 

 9호선으로 갈아타라고?’   


지하철 노선을 보며 이동거리를 미리 체크한다.      

갈아타는 구간을 미리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이제 2호선 합정 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탄다. 내려가는 계단이 꽤 길다. 다행히 에스컬레이터가 구비되어 있다.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얼마쯤 가다가 가양 역에서 내린다. 또 긴 계단을 거슬러 올라간다. 8번 출구로 나왔는데 택시를 잡기에는 힘든 도로.


할 수 없이 20분가량을 쭉 걷는다.               


아파트 단지 옆에 위치한 오래된 상가건물 4층에 ‘빛소리 글로벌협회’가 나온다. 이번에도 역시 고정욱 작가의 초대로 이곳 ‘장애인 예술 행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그를 소개받는다.     


이쪽은   보이는 시력인데 

그림 작가로 아주 활발히 활동하는 

미긍 작가이고, 여기는 이번 행사에 떡을 기부해서 고마운  업체..

이름이 뭐랬지? , 윤석기 대표야.

서로 인사들 나누고.. 하하.”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후로

 인맥은 넓힐수록 이로워진다는

 ‘홍보인간 (弘報人間)’의 정신을

늘 강조하는 고 작가의 소개다. 


내가 안 보이는 작가 한 마디로 깔끔하게 소개되는구나. 흠. 우리가 인사를 나누는 걸 보던 고 작가의 휠체어는 또 다른 곳으로 쓩~ 이동했다.

                        

소개받은 그를 보니 보통 키에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멀끔한 인상이다.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다른 인맥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그동안 고 작가에게 배워온 대로 나를 홍보했다. 이러려고 명함을 넉넉히 챙겨 왔지. 사실 명함을 이렇게 뿌린 후 계속 짧은 인사 등을 주고받아야 인맥이 유지된다지만


그렇게 인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본인의 마음에 들어와야 ‘인맥’ 아닌가? 단지 필요를 위한 홍보는 하기 싫다.


 - ‘홍보 바보’의 변명이다.          


 

무대에서 ‘빛 소리 예술협회’ 회장

배은주 대표의 인사와 휠체어 합장 단원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사실 무대에서 무슨 공연을 하는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닥 관심 없다.     

 

여기저기 고 작가의 인맥과의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돌리기에 정신이 없었으니. 다과를 함께 하며 점점 행사가 무르익어 간다. 이제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다시 9호선을 타러 갈 생각에 까마득하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어두워지면 그제야 활동할 힘이 생겼는데 이젠 그 정반대.


 어둠이 이렇게나 두려워지다니. 헐.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저기, 작가님...

 제가 지하철역까지 모실게요.

 괜찮으세요?”  

        

걱정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내 모습을 본 걸까?      

떡 사장이 역까지 데려다준단다. 사실 행사에 임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다른 이들처럼 명함을 돌려 본인을 홍보하려 애쓰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진지한 표정으로 공연을 관람하며 박수만 쳤다. 떡을 기부하면서 그리 상업적 광고가 아니라 좋군. 그의 호의에 감사하며 승낙했다. 결국 행사가 끝난 후 지하철역을 향해 그의 차에 올랐다.      


“제가 바쁜 일정만 아니면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데 미안하네요.

2호선 합정 역까지 모실게요..”    

      

그는 이곳 행사를 이번에 처음 방문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건강이 안 좋은 편이라 불편한 이들을 보면 마음이 더 쓰인다고도 덧붙인다. 그렇게 떡 사장 덕분에 지하철 9호선을 안 타고 2호선으로 집까지 편하게 왔다.      


그 후로 그와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편한 오빠 동생으로 친해진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2,30대에 몸이 너무 망가져서 지금 고생을 하고 있단다. 젊었을 때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그때 몸이 폭삭 상한 것 같다고. 내가 그에게 메시지로 물었다.  

   

 ‘왜?? 2,30대에 무슨

막노동이라도 끌려 간 거야?’

          

과거 집에서 순대공장을 했단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그 일에 주력했고 군대 제대 후에는 떡 공장으로 돌리며 지금까지 유통하게 되었단다.


당시 하루 평균 16시간을 일했다고 하니 가업을 도우려고 애썼을 선한 인상의 그가 참 안쓰럽다. 그렇게 젊은 날 일만 해온 후유증은 40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뇌혈관질환’까지 발생한다. 막힌 뇌혈관으로 인해 '스텐트 삽입술'을 하게 되었다고.

                   

Q. ‘스탠트’가 뭐지..?    


‘스텐트’는 작은 철망으로 된 튜브 형태인데 동맥을 열고 혈관 안에 이 튜브를 영구히 남겨 두는 걸 ‘스텐트 삽입술’이라고 한다. ‘스텐트’는 혈관이 막힌 곳으로 이동되어 풍선이 부풀려지면 접혔던 ‘스텐트’가 혈관이 막히지 않게 고정을 하게 되고 심장 근육으로 가는 혈액의 흐름을 개선하여 가슴 통증을 완화시킨다고.

-Google 위키 백과     


‘아, 심장이 안 좋아져서 힘들다고 했는데 그랬구나.’          

그는 평소에도 종종 머리를 삭발해서

머리 쪽 혈 자리를 ‘사혈’하는 방법인

 '두침 요법'으로 머리 쪽의 나쁜 피를 빼낸다.   

       

사실 이 방법을 나에게도 권해주어

'귀 얇은 우리 모녀'도 그를 따라 사혈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몇 번 해봤지만 솔직히 좋은지 그닥 못 느끼겠던데. 하긴 치료의 효과를 느끼는 건

모두 다른 거니까.     


어쨌든 나중에 그는 사혈에 대한 책을 구매해서 자신의 머리를 직접 침을 놓으며 후유증을 이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또 그에게 생긴 질환이 있다. '키모 브레인‘이다.  

             

Q. ‘키모 브레인‘이란?        

   

항암치료 이후에 발생하는 우울증, 불안증, 기억력 감퇴, 예민 증 등의 상태를 말하는데 뇌혈관질환으로 수년을 고생한 그도 그 증세와 동일하단다. 극도의 '기억력 감퇴'가 와서 정신이 흐려진다고. 평소에도 몽롱해지고 무기력해져서 아무 일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그가 너무 안타깝다.       


나의 전시에도 역시 떡을 기부하며 마음을 써주는 떡 사장이 참 고맙다. 그러던 중 그가 사업을 맡아 ‘다원 떡’으로 이름을 변경했다며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   

       

“요즘 가게 사정이 안 좋은데

 떡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자신의 업체에도 떡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데 비용을 지불하기 힘들다고. 연신 미안해하는 떡 사장의 가식 없는 모습을 보니 이제 나도 그림으로 그의 일을 진심으로 돕고 싶어진다.    

 

“괜찮아! 전시 끝나면

 떡 캐릭터 만들어볼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솔직히 그리 자신은 없다.          

그동안 해왔던 작업 세밀한 '펜 드로잉'이 아닌 단순한 캐릭터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또 다른 숙제. 그래도 늘 해오던 대로만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지. 늘 그래 왔듯 나를 다잡는다.               


 '가즈~ 아!'     


먼저 떡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예로부터 떡은 동양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기존해오던 일러스트와 동양적인 이미지를 합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떡 캐릭터와 동양적인 붓글씨와의 만남은 어떨까? 붓글씨 ‘캘리그래피가’ 필요하다.           


Q '캘리그래피'란?   

  

아날로그적 느낌과 밋밋한 글자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함을 넘어선 독특하고 창조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글씨이다. 누구나 쉽게 글씨를 창조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요즘 감성 디자인을 이용한 마케팅이 주목받는 만큼 캘리그래피 또한 인간의 다양한 감성을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감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 -위키 백과사전               

사실 예전에 ‘캘리그래피’ 학원을 다니며 붓글씨를 익혀보았다. 붓을 잡아 손 글씨로 여러 멋진 글씨체들이 많지만 하나같이 흉내 낼 수 없다. 그들처럼 곧은 선을 그을 수 없으니. 결국 그렇게 한참을 연습하다가 만들어낸 글씨체가 있다.      


기울어지고 틀어져도 자연스러운 나의 그림처럼 꼭 반듯하지 않아도 정감 있는 글씨체 ‘미긍체’다. 떡 사장이 원하는 떡 캐릭터가 인절미, 모시떡, 송편, 떡볶이 떡 등을 글씨로 미리 연습해보았다. 그리고 캐릭터들마다 이야기를 담아 붓글씨와 함께 정적인 표정들을 살린다.       


인절미를 가장 먼저 작업하는데 캐릭터가 살아나려면 뭐가 필요할까...? 만약 인절미들이 살아 움직인다면? 콩가루가 날리겠지. 그 모습이 떠올리니 웃음이 나온다. 인절미 커플이 콩가루를 날리며 뛰놀면 어떨까..?ㅋ           

-인절미 양 가루 날려(15)

     

각각 떡들마다 이야기가 달라진다.          

색색의 반죽마다 호박, 흑미 등 건강한 성분들이 함유된 송편을 ‘속은 더 착한 송편들’로 담는다.


치즈가 들어간 쫀득한 쌀 떡볶이를 ‘치즈를 품은 떡볶이'('해를 품을 달' 패러디ㅋ)로 담았다.

 마지막으로 국내산 모시로 반죽이 사용된다는 정보도 ‘국내산 모시옷’으로 위트 있게 담아본다.         

 

이렇게 4가지 ‘떡 캐릭터’

드디어 완성.   

  

기존 해오던 작업과는 또 다른 특별함이 있다.      

캐릭터로 광고를 담아내는 그림이 재미있어지는 경험이었다. (2015)                    


그 후로 너무 다행스러운 소식이 이어졌다.

떡 사장이 드디어 늦은 나이에 자신의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동안 혼자 아픔을 견뎌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끈 떨어진 연’처럼 불안해 보이고 안쓰러웠는데 휴~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따뜻한 말씨의 상냥한 새언니도

이제 미긍 그림의 팬이 되었다. 떡 사장은 변함없이 올해도 맛있는 떡으로 새해를 열어준다.  

              

홍보로 널리 알리는 인맥으로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이득이 부럽긴 하다.


그래도 힘든 곳에 나의 그림으로

힘을 더해주고 싶다.


그렇게 이롭게 활동하다 보면

홍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닐까?  

             

‘인절미 양 가루 날려.ㅋ~

영양가 있는 홍보의 콩가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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