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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an 30. 2020

#장애극복 ’대신 씹어드립니다.’

별다른 것 없이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들.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이해교육강사

“저런.. 그랬군요.
그쪽에서 모시는 게  좋으시겠네요.
끝까지 힘내시고.. 네네..”          


임종을 앞둔 노모의 곁을 지키는 지인이 상담을 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아빠의 핸드폰이 바쁘다. 그곳에 대해 알게 된 건 아버지를 통해서다.     

              

아빠가 30년 이상 머물던 직장을 퇴직하면서 이제 두 가지 방향을 잡았단다.

하나는 직장생활에서 얽힌 인맥 말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이었고

다른 하난 이것도 역시 정신없이 바빴던 직장생활로 인해 충실하지 못 한 신앙생활을 돈독히 하는 것이다.


퇴직 후 당신의 방향에 대해 알게 된

직장 후배가 조언을 했다.        

                 

“선배님, 그럼 퇴직 후에

샘물호스피스에서 하는 봉사 어떠세요?”

         

“어..? 샘물호스피스라고..?

국내에 생겼다는 기사는 본 적이 있어.

 고맙네. 함 찾아보지.”

              

그곳을 입원하는 환우들은 대부분이

말기 암으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들이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안식을 얻기 위해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환우들이 모이는 곳

샘물호스피스 병원.     




 

                   

아빠가 그곳을 찾아

첫 봉사를 했을 때가 2007년 4월이다.   

       

당시 병상 30여개에서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들은

지금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환우들의 목욕봉사는 물론이고 청소,

끼니마다 환자식을 챙기는 일까지 해야 했다고 하니


이제 병상은 90개로 점점 늘었고

 임종에 임박한 환우들은 6개의 ‘소천(召天: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간다는 뜻으로 개신교에서 죽음을 이르는 말) 방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병상이 늘었어도 늘 대기 환우들로 북적인다. 이제 요양보호사 한 명당 환우들 3명씩을 24시간 케어한다고. 환우들이 머무는 시간은 대개 2개월 미만으로 평균 28일이다. 만약 2개월을 넘기는 경우엔 보호자와의 상의 후에 재입원 한다고.


한 달 동안 환우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평균 400 만원 정도지만 대부분의 비용을 개인이나 여러 기관들의 후원금과 봉사들로 이뤄진다.


처음 이곳에 들어온 환자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에게 닥쳐올 죽음을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하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제야 한층 밝아지고 더 평안한 모습을 찾는다고 한다.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영원한 안식을 바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그곳에서 환자를 돌보는 봉사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경기도 용인 백암 면에 위치한 샘물호스피스 병원에서 화요일 오전까지 봉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현미, 조, 수수, 호밀로 구성된 잡곡 빵을 직접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조그마한 베이커리가 있다. 일명 빵집사의 베이커리에서는

매일 새벽 4시 반 신선한 빵이 나온다.

아빠가 그 빵을 사오면 우리 가족들의 일주일 분의 아침식사가 된다.


가끔은 야무지게 꽉 들어찬 팥빵이나

케잌이 되기 전의 카스테라 빵이 함께 나오는 빵집사의 아주 특별한 서비스다.  

                   

이제 많은 환우들을 케어하기 위한 요양보호사가 들어온 후 아빠는 주로 환우들의 식단을 준비하는 일을 돕는다.


보호자와 환우 한 명이 입원하는 이곳에서 보호자로 함께 있다가 환우가 소천하면 ‘보호자’에서 ‘봉사자’가 되는 경우도 꽤 된다고 한다.

환우였던 할머니의 보호자로 함께 입원해서 돌보던 손녀가 환자를 간호하는 데 관심이 생겨 ‘간호조무사’라는 평생 직업을 찾기도 했다고.        

       


환우들을 위한 식사 준비는 늘 분주 하다.    

씹지 못하는 환우들을 위해 주방에서는

매 끼니마다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음식물을 칼로 썰고 잘게 다지고 믹서 기로 갈아내기도 한다.


                   

만약 나에게 힘든 시기가 없었다면 그런 상황을 봐도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 후 몇 개월간 입을 벌리지 못하게 되고

 음식물을 씹어 삼키지 못해 고생을 했었으니까.  

                

호스피스 병원에서 함께 봉사하던

아빠 또래의 남성분인 김 집사.   

   

그는 주로 환우들의 목욕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의 눈이 어두워지기 직전까지.    


           

그가 나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2013)

-나에게 시각장애가 생긴 후  계단 앞에서

어느 게 진짜인지 헛갈리는 계단을 내려갈 때면

 줄타기에 도전하는 어릿광대가 된다는 글에 공감하고 아파했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그때는 흐릿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었나보다.


몇 년에 걸쳐

시각장애가 진행되었고

그는 이제 점자를 배운다.       

        

어느 날 예전에 자주 보았던

 하얀색 안내지팡이가 우리 집 현관 한 켠에 놓였다.


 이제 혼자 이동이 쉽지 않은 그가

아내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가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만
 지나치던 일상들이 이제야 느껴지네요.
그게 얼마나 감사였는지. 흑”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살펴보니

시각장애로 힘들어하던 초기보다 훨씬 밝아 보인다.


빛을 잃으면서 또 다른

감사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에게 나도 공감한다.

눈물을 훔치던 그가 말을 잇는다.    

  

점자를  익히면 

미긍 작가님께 전수해서

그림 그리는 데 활용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늘 응원합니다!”     


언젠가 손에 감정을 실어 그림으로 담아낸

 내 작품을 기억해낸 그가 말했다.


이제 나의 그림을 볼 수는 없지만

늘 마음으로 응원하는 김 집사의 눈물을 보며

너무 감사하고 나중에 김 집사 본인이 속한

 지방의 시각장애인 단체에서도 강연하기로 약속했다.

          

아빠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 중 음식물을 씹을 수 없는 환우들을 위해 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아빠에게 나의 생각을 전하자 다음 주 아빠가 환우들의 식단을 준비하는 모습을 찬찬히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사진자료를 보면서 오랜 시간이 걸려 그림으로 담는다.


시와 함께.          

  


                           

‘씹어드립니다.’     

                                

                            미긍     

원하시면

더 잘게도 씹어드릴게요!

              

‘음식을 삼킬 수 있게 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어쩌면 내일이 있게 해 주심에

더더욱 감사합니다!’

              

여기는 샘물 호스피스 병원.     

     

장기 입원 환자는 없습니다.  

              

퇴원 후 영원히 안식하소서.          

아멘.  

             

-A4사이즈/ 포토 샵

 

두 번째 개인전 메인작품으로 준비. 전시를 마친 후 작품을 그곳에 재능 기부했다. 이 작품은 현재 샘물호스피스 병원 식당을 지키고 있다. (A2 사이즈 /수채 2016~)


     

   

마지막 길을 마중하는 '행복한 동행' 샘물호스피스 병원에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아오며 아빠가 한 가지 느끼게 된 점이 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는 일생을 지내온 생활의 높낮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다가오는 죽음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고통스럽게 맞이하겠는가, 아니면 겸허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고로 잘 보지 못하게 되고

다치는 게 일상이 되면서

얼마나 세상을 원망해왔는가.   

  

 

빛이 보이지 않아도


따스함의 가치를 느끼는


이 모든 감각들이 얼마나 큰 감사였는지를.    

  


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맘에 안 드는 누군가를


 씹어대는 거 말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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