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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Mar 13. 2020

#장애극복_그림에세이 풀리지 않는 매듭-4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그땐 결코 알지 못했다.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본인의 감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퇴원 후~2016 )    


                   

“너 시간 있으면

  나랑 쇼핑 갈래?”                    

그녀가 나에게 말한다.

 M양은 체구가 큰 편인데 코디를 참 잘했다.       

     

신발 사이즈 275~280,

허리는 36~38의 거구인데

그래도 옷을 갖춰 입으면 꽤 귀엽다.

                              

어디서 옷을 구입했을까?


여성 큰 사이즈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녀의 평소 스타일은

 반짝이고 납작한 280의 슈즈 브랜드 mook,       

리바이스 바지와 같은 브랜드 하늘색 체크 남방, 폴로 남방에 곤색 면바지다.               


그 외에도 그녀만의 꿀 팁이 있었다.  

     

M양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 비결을 차차 알게 된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오래 걷기에

그리 부담 없는 날씨. 그날 이른 오후

우리는 이태원을 향했다.


여기저기 외국 간판에

흑인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우아~ 나는 이태원 나들이가 첨이라서

 보는 것들마다 신기했다.     

      

늦둥이들의 일반적인 특징인


‘우량아’ 몸매를 참 오랫동안 간직한 그녀.


일반 의류매장에선 그녀의 사이즈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

이태원의 빅 사이즈 쇼핑이 익숙했다.


 M양은 이태원 골목의

단골 옷가게를 찾아 매장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여점원이 권하는 티셔츠들을

얼굴에 매치해보았다. 그중에 짙은 파랑색과 진회색의 2XL 캐릭터 티셔츠를 두 개 골랐다.

                    

계산을 마치고 그녀가 웃으면서 내게 말한다.

                

“아! 오늘 맘에 드는 걸로

 옷 잘 골랐다.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쏠게! 히히힛~”  

                    

그 날 첨으로 해보는 게 참 많았다.  

             

이제 외국인들이 즐겨먹는 버거 집에 간다.

아 좋다! 다행히 그곳 점원까지는

외국인이 아니다. 헷~ 다행다행.  

             

그녀는 습관처럼 단골 메뉴를 시켰다.

 

나는 부지런히 카운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의 자리를 잡았다.   

            

빅사이즈 콜라에 버거 두 개,           

바삭한 감자와 양파튀김을 들고

내가 맡은 자리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그녀.  

                     

“역시 외쿡인 상대라 그런지


사이즈가 장난 아니네! 우아~”   

          

일단 그 맛을 보니


기존 먹어왔던 버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약간 더 느끼하면서 짭짤한 게..

소스도 색다르고.  

오~ 꽤 매력 있는데?!ㅋ     

                  

어때? 맛있지?


이 버거 먹으면... 국내 버거들은          

 

쪼잔해서 먹기 싫어진다니까ㅋㅋㅋㅋ”  

                    

그날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만큼..  

              

아니 숨쉬기 어려워질 만큼


꾸역꾸역 먹은 우린 포만감을 간직한 채


서로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 이제 어떡해.      
울 엄마가.. 흐.. 흑흑.."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M양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눈물에 나는 너무 깜짝 놀랐지만 일단 티슈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녀가 겨우

띄엄띄엄 말을 꺼냈다.  

                   

. 엄마가 백혈병이라고?!!’                                  

얼마 전 M양의 집에 갔을 때만 해도                

우리에게 간식을 챙겨주던 그녀의 엄마

밝은 표정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엄마의 상태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가 이제 나에게 묻는다.

                    

“흑.. 너 헌혈해본 적 있어?               


혹시 헌혈증서 같은  있니?”

                         

최근 엄마의 질환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일이 잦아지면서

헌혈증서가 절실하단다. 고도비만이었던 M양은 헌혈을 할 수 없었나 보다.      


이제 내가 그녀에게 힘을 되어야지.   

                     

걱정 ! 너네 엄마 


꼭 나아지실 거야. 나도 힘을 보탤게.”               


그녀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언젠가 친구들과 호기심에 학교 근처의

 ‘헌혈의 집’을 찾은 기억이 있다.


‘헌혈의 집'이라지만 ‘헌혈 차’였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간호사 두 명이 나를 반긴다.


그날 차량 안에서 처음으로 헌혈을 하고

그 후에도 종종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받은 헌혈 증서를 쓰지 않고

잘 모아뒀다. 문제는 그걸 대체 어디에다가

 고이 모셔뒀는지 기억을 못 한다는 거.ㅠ         

        

‘아휴.. 대체 내가     

어디다가 잘 모셔놓은 거지?!’               


평소에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는데

 그날 책꽂이부터 책상 서랍의 물품들까지

꼼꼼히 뒤졌다.

               

‘아.. 맞다. 그때

헌혈할 때마다 기념으로

메모를 해두던 녹색수첩이다!’               


가까스로 녹색 수첩을 찾아냈다.

수첩 안에 책갈피처럼 켜켜이 끼워둔

헌혈증서가 있다.


열 장이 조금 넘는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그녀를 찾아 증서를 건넸다.   

                

“너무 고마워!

 진짜 큰 힘이 돼!”

                   

이제 하교 길에 헌혈의 집 차량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헌혈이 가능한지 몸 상태를

혈액 검사로 미리 체크한다. 질환이 있다면 혈액에 좋지 않은 성분이 검출되기 때문에 헌혈을 할 수 없다.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시 그 혈액 검사에서 단 한 번도 거부된 적이 없다. 전날 아무리 잠을 설치고 컨디션이 엉망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ok.

     

여성에게 한 달에 한 번 오는 그날까지도

 위, 아래로 헌혈을...ㅋ;        

     

오랜 기간이 지나


너무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엄마는 차차 병세가 호전되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M양은

충주의 캠퍼스 기숙사에 들어갔다.  

        

어쩌다가 방학 때마다 그녀를 만나곤 했는데

 잠깐씩 만나더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던 M양이 변하기 시작한 건...   

            

인터넷으로 누군가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자신의 외모를 숨긴 채 채팅과 통화로만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오던 또래의 남성.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와의 만남을 최대한 미루어야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선 먼저 그녀는 달라져야 했으리라.  

                                 

난생 처음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다이어트 초반에는 물만 먹기도 하고

 채소와 소량의 단백질을 섭취했다.


 삶은 계란도 흰자만 먹으며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해나간다.  

    

거기에 한의원에서 지방감소 프로그램 한약을 처방받았고 유산소 운동으로 매일 저녁 집 근처를 2시간 이상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을까?


이제 M양의 몸이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운동과 식단 조절로 몸무게를 28kg 감량한 것이다!   

                     

게다가

여자의 변신에 필수 조건                   

'쌍 수'까지 짠~!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만난 그녀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있다.                    

그동안 커트머리였는데 롤 스트레이트 단발머리를 하고 펑퍼짐한 납작 구두 대신

아주 여성스러운 로퍼(발 사이즈 280에서 250)를 신었다.


옷차림도 벙벙한 면바지에 폴로남방 대신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에 몸에 어느 정도 붙는 니트를 입고 짙은 눈 화장에 마스카라도 한다.


이게 현실이 맞나 벙벙한 표정의

 

나를 보던 그녀가 당당히 하는 말.

                    

"어때? 놀랬지?!
 내 몸에서 초딩 한 명이
 나왔잖아!ㅋㅋㅋ"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말했다.            

          

"우아! 너무 축하해!!!
 정말 멋지다!!
 진짜 몰라보겠오~!"

물론 축하할 일이지만

 급 다이어트로 급 늙었다.ㅜ   
                


이내 그녀가 본인의 팔을 걷어 보이는데..


팔뚝의 처진 살가죽이 출렁출렁.


 내부의 지방이 빠져나간 가죽은 그대로 남았다.

 역시 식단 조절과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반드시 근력운동이 병행되어야

근육의 탄력을 유지하는데.


그렇게 변신 후 그 남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그와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단다.

알고 보니 몇 다리를 걸친 '문어발‘에

여성 편력이 심했다나.

                       

어찌 됐건 그 남성으로 인해

그녀가 큰 변화를 맞았으니

결과적으로 그리 나쁜 건 아니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것처럼


금전을 노리며 사기를 치는 연애도 아니었고.

               

그와 헤어지고 뜸해진 그녀는 바쁘게 지냈다.   

               



사실 그동안

나의 외모도 많이 변했다.   

             

오랜 병원생활로 살도 많이 쪘을 뿐더러

약을 많이 먹은 탓인지 피부 트러블까지

장난 아니다.     

       

누군가와 긴 대화를 하기에도 불편해졌다.      

 

그리고 가장 많이 변한 건...     


이젠 예전처럼 밖에서 활동하기 힘들다.


특별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ㅜ    

         

몇 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뭔지 꼬집어 말할 순 없는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그녀도 이제 나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 만남 후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응.. 나야. 바. 바쁘구나..?"  

             

메신저를 해도 확인조차 하지 않아

 

한참 만에 연결된 그녀와의 통화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하자. .. 뚝.’                                       


그렇게 너도 변했고

 나도 많이 변했다.  

   

얼마 후 그녀의 연락처를 삭제했다.   

        



요즘 어쩌다가 도로 한편에 자리 잡은


 '헌혈의 집'을 지나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고교시절

 

그녀를 위해 하던 헌혈이 떠오른다.    

                

나의 시선을 느낀 걸까?

 

팔에 헌혈 홍보 띠를 두른 요원들이

안내문을 주며 나에게도 헌혈을 권하지만

못 본 척 지나친다.


헌혈을 할 수 없는

 ‘저질체력’이 되었다.            

지금의 겉모습이 약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동안 주사를 맞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이제 더 이상 주사를 주입할 혈관을 못 찾는다.


꼭 필요한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경우에는

 몇 번씩 이나 혈관 위치를 쑤셔댄다.

굉장히 기분 나쁘게 쓰리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평범하게만 느끼던 일상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닫는다.

상대방에게 결코 나와 같은 감정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거다.

설사 그게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인을 향한 감정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하물며 과거 시간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같은 감정까지 강요할 수 있겠는가?  


과거엔 무심코 내려가던 계단들이               


이젠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될  

       

 ‘숙제’가 되었다.     

        

달라진 내가 부담스럽다면     


더 이상 나의 세상을 찾지 않아도 돼.   

-내가 보는 세상 /일러스트(2016)


하지만...

그렇게 함께 하기

 편안한 친구만을 찾다가..   


정작 너의 불편함 앞에서          


과연 남아있을 친구가 있을까?  


                                               

나는 어서 회복해서      


헌혈하러 가야겠다.

            

‘가즈~아!’   

         

-현재 제작중인 '미긍 마우스'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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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해요!     

 

-풀리지 않은 매듭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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