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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Mar 09. 2020

#장애극복_그림에세이 풀리지 않는 매듭-3

-자신에게 맞춰진 ‘코드’와도 같은 존재.누군가는 그걸 우정이라 부르지.

  '주혜야! 문병을 간다고 해놓고                

번번이 약속을 어기네. 정말 미안 미안~                

요즘 너무 바빠. 많이 기다렸...'    

                                    

기다리던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다.  

                  

'왜 자꾸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니?!'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튀어나온 .  

"전화 잘못 거셨어요. 아닙니다~"                


그렇게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병실의 내 침상만큼이나 좁았다.  


             

나와 그녀는 취향과 스타일이  달랐다.   

  

약간 큰 키에 보통 체형,


내려쓴 와인색 뿔테 안경에


웃을 때 드러나는 환한 잇몸,


하나로 내려 묶은 긴 곱슬머리가 늘 단정하다.                    



울 집에서도 종종 밥을 먹곤 했는데               


엄마의 기억에도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남아있단다.  

                         

“주혜 야, 너네 엄마 음식 솜씨..               

정말 끝내준다! 너무 좋겠다~               

주혜는... 오호호”      

           

우리 집 반찬을 유독 좋아하던 그녀는

 엄마 아빠가 지방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단다.


그래서 그녀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으면

본인이 직접 계란말이를 만들어 오거나 참치 캔, 시장에서 사 온 콩자반, 깻잎, 등을 챙겨 온다.

                

“주혜는 눈이 참 맑고..               

웃는 표정이 너무 예뻐~”            


나를 부를 때 ‘야~, 야아~,

 ..’ 대부분이었는데 그녀는   이름을 부른다.        


나와   어울리는 이름이라며 

곱씹어 음미하던 그녀.


얘는    칭찬한다. 기분 좋게 시리.    

                  

그중에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건                          

내가 그리는 그림이다.   

                    

주혜야~!  그림 너무 좋아! 정말 멋지다.          

이번 축제에 나도 시화전을 하는데...               

내 시에 너의 그림을 담고 싶어.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힘들겠지?”                        


내가 속한 미술반의 축제 작품을

 학교에 가져와서 준비하는데 나의 그림 작업을 보던

 그녀가 말했다. 교내의 글 창작 동아리 ‘글 다솜’의 회장이기도 한 그녀였다.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린 ~ 대답.     

              

해줄게. 걱정 ~ 틈틈이 준비하지 . ~”   

                

사실 전시 준비로 빠듯하지만 그녀를 웃게 하고 싶었다.  

               

그녀의 시는 새에 대한 내용이다.               

그림 작업은 그 시를 읊으며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한 마리의 새가 비상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낸 펜화였다.  

             

그렇게 바삐 준비한 그림은

 

오랜 기간 준비해온 작품보다 더 특별했다.  

                   

그녀의 시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결국 ‘글 다솜’의 시화전의


메인으로 장식되었다.   

        

‘아.. 기분 최고!’    


                          

미술반 전시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글 다솜’의 시화전을 찾았다.

                    

지하의 어두운 복도부터 시작되어

조명 대신 여러 개의 촛불이

공간의 어둠을 채우고 있다.  

           

. 우리 학교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그 촛불 덕분인지 내가 그린 새가                

더 아스라이 돋보이는 듯.   

                

전시공간을 지키던 아이들은 모두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 정도 내려오는 검은 주름치마로 맞춰 입었다.


굳이 같은 소속이라 밝히지 않아도 옷차림만으로 그들만의 

결속력을 보여준다. 아.. 보기 좋다.      

          

미술반에서 맞춰 입은

 블랙 상하이 옷이 왠지 썰렁하군.


티셔츠를 매만지는데 그런 나를 보던

 누군가가 뛰어나와 나를 덥석 껴안는다.

             

주혜야! 정말 너무 고마워!     

 덕분에 이번 시화전

 멋지게 성공이야~”  

         

그땐  그녀를 위한 새의 그림이 훨씬 오랜 기간 준비해온 작품보다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를 돌아보니 이제야  이유를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많이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전시작 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만  

그녀를 위해 그린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오르는

새의 자태와 예리하게 빛나는 창창한 눈빛까지..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렇게 그림으로 우린  특별해졌다.   

                

비슷해야 속하던 예전과는 달리 

서로 너무 다르기에 더욱 각별했다.    

                     

 후로 그녀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그곳에서도 문예 창작 동아리 대표를 맡았다고 했다.     

     

언젠가 그녀가 축제에 나를 초대했다.    

  그날 아침부터 나는  꼼꼼히 단장했다.


리바이스 구제바지에 특이한 티셔츠, 이번에 구입한 리바이스 청재킷에 피어싱  액세서리를 하고 눈매를 강조하는 마스카라를 진득진득.    

 

신발은 경쾌한 단화로 마무리다.   

일을 일찍 마치고 그날 중앙  캠퍼스로 향했다.    

      

미리 안내받은 대로 그녀가 속한 단체를 쉽게 찾았다.   

                 

! 주혜야, 바쁠 텐데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호호..”

               

그녀가 주최하던 행사를 뒤에서 관람했다.    

행사내용이 기억  나는  보니 관심 없는 분야였나 보다.


 어쨌든 그렇게 진행된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에 합류했다.


고교시절처럼 다과가 아닌

그녀의 과 선배들과 어울려 술자리 다.                     


무르익은 술기운 탓이었을까?  

   

연거푸 동동주를 마시던 그녀가

 나를 보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주혜 야... 네가 이제 그림이 아닌          

다른 길을 걷는 게 너무 아쉬워...ㅠ”       

       그러더니 오래전 기억을 꺼낸다.


 그림을 집에  보관하며 종종 꺼내어본다고.  

              

두꺼운 화장으로 꾸민 내가 너무 초라하다.                     


배움을 향한 파릇파릇한 그들의 열정 앞에서.           

그땐 그냥 그렇게 웃어넘겼나 보다.                    


사실 그림을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 와서 그림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그날 술자리가 끝난 후 집에 가려니

우리 집과는 극과 극이다. 버스를   갈아타며

  시간 반가량 걸려 늦은  집에 귀가했다.  


그렇게 묻어버린 그녀와의 추억들이 되살아난           

정신이 조금씩 깨어나면서일까?   

          

퇴원하면서 당시 치료받던 기관들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주로 활동하던

 중앙 대에서 그리 멀지 않다.


 종종 밥을 먹고 차를 마시던 그녀와의 추억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현재의 그녀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을지도

 확실치 않지만 못내 더 아쉬운 건..


내가 예전과는 많이 변했기 때문일 거다.


이젠 깜빡이는 정신의 어린아이에서도 벗어났고.  

              

도전을 망설이던     

 ‘이제 와서 어떻게 ..?!’ 나의 게으른 변명이었다.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지금.  

   

앞을 제대로  보게  시력과  펴지지 않는 오른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가 되어버리니..      

이제 도전을 멈출  없더라.

그렇게 거듭된 도전이 ‘+’가 될 수밖에.     


어느새 나는

 과거 꿈꿔왔던 그림 작가가 되어있다.               


그것도 이렇게

글을 쓰는 그림쟁이


문학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의 멋진 엄마가 되어 있을 수도.


 정말 궁금하지만 소식을  수가 없다.

 함께 소통하는 친구 없이 그녀와  둘이 친했기에.      

         

영파여고의 특별활동 동아리

 ‘글 다솜’을 검색해봤지만 그곳에서도 그녀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중앙 대 98학번 너무 흔하디 흔한..  

   그녀의 이름 ‘  이다.      

  옛말에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라 했던가?

             

이제는 ‘김지연 찾기일 수도ㅠ                            

지인들  ‘지연이들은 수두룩하고 

새언니를 포함

 ‘김지연’만 해도 벌써 4명이니.ㅠ  

 

                  




나이를 먹을수록..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나의 코드를 양보하는

 진짜 친구를 찾기가 어려워지는 요즘이다.   


                                  

아.. 이러다가   

   나에게  맞추겠다고 대시하는 

    이성친구가 나타나면 어쩌지...?!  

(혹시나...ㅋ;)    

                          

- 코드 맞추기 (16)
-‘풀리지 않는 매듭’
4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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