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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pr 29. 2020

#장애극복_그림에세이 내 마음을 치유하는 것들?!

-누군가의 위로보다 힘이 되는 것들..

‘너무 마음 아프고 슬픈데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 웃으라고 해요.'  -위로보다 ‘힐링’(healing)[치유](2017)



“작가님, 여기
이것 좀 봐주세요.
 우리 딸 유진이가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이에요. 허허헛..”

아이의 아빠는 나에게
 딸의 상장을 핸드폰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엔 교육기관이 아닌

혜화 ‘이음센터’에서 강연 제의가 왔다.

이음센터는 대학로에 위치한 문화공간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는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해서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장애이해’ 강연이다.  

 


   

아버지와 함께 온 작은 체구의

유진양은 휠체어를 탄다. 그녀는 글쓰기를 참 좋아하는 순수한 고1 소녀, 그리고 그런 딸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서 나를 마주한 짧은 짬에도 딸 자랑에 여념이 없는

 ‘딸 바보 아빠’다.


그동안 아빠의 그런 자랑이 익숙했는지

유진 양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참~이제 이런 거

 그만 좀 자랑해. 글구..

 미긍 작가님은 이런 거 볼

 시간 없다구~~”


 내가 두 부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와! 글짓기로 상도 타고..

유진 양 정말 굉장한데요?!

아빠가 진짜 훌륭한 매니저네요.

유진 양 앞으로도 글 열심히 써서

이렇게 멋진 활동 부탁해요~ 호홋..”   

   

그녀의 휠체어를 밝은 세상으로 나가게 이끄는 든든한 통로 아버지.


그들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렇게 알게 된 유진 양은


그 후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작가님, 점심은 드셨어요..?
 전 중간고사라 학교에 갔다가
시험만 보고 일찍 왔어요.

오늘 시험은 망쳤어요.ㅠ 수학은

 정말 자신 없는데...ㅠㅠ 내일 시험은

 영어라 공부해야 하는데..
집중이 안 돼요. 어휴. 답답해~’      

나도 메신저로 짧은 답장을 했다.

 ‘아.. 요즘 시험 땜에
많이 힘들겠네요?
 기운 내서 내일 시험 잘 준비하세요.ㅎㅎ’     


그런데 이렇게 본인의 상황을 사사건건


메신저로 알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그녀.


이제 점점 지치기 시작한다.ㅜ

특히나 요즘 몇 달 후에 있을 개인전에 올릴

그림 구성만으로도 늘 시간이 빠듯해서

잠도 몇 시간 못 자기 일쑤인데.


역시나 오늘 새벽에도 장문의 메시지로

아침인사를 하는 그녀.


 ‘이제는 나의 상황을 알려야겠다.


 상처 받지 않게 조심조심.’   

  

‘유진양이 저에게 관심을 갖고
 메신저로 안부를 묻는 건 정말 고마워요.

근데 제가 요즘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아직도 준비할 것이 많은데 이렇게
긴 메시지가 자주 오면 그 흐름이 끊기거든요.

앞으로는 꼭 필요한 내용으로만

메시지 남겨주심 좋겠어요. ^ ^'       


그러자 그녀가 바로 답한다.      


‘아.. 작가님 정말 죄송해요.ㅠ

전 그냥 작가님이
너무너무 좋아서 얘기한 건데..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수고하시고요~’       


그 후로 고맙게도 이제 내 작업이 방해될까 봐

유진 양의 안부인사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이제 점점 추워지는 날씨


나의 세 번째 개인전이 돌아온다.


          




사실 전시를 가을 정도로 계획했는데

전시장을 미리 구해야 하는 걸 생각 못하고

작품 준비만 몰두하다가 전시 공간을 놓쳤다.


내가 두 번째 개인전을 했던 장애인 작가 전시를 위주로 공간을 대여해주던 이음센터가

이미 다른 행사가 잡혔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전시장은

작품을 준비하기 전에

 미리 정해야 하는 거구나.'


 전시장마다 연초부터 예약이 꽉 찼단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받은

전시를 포기해야 할까?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혜화아트센터에서 일정이 취소된 공석을 발견했다.

 그렇게 겨우 전시공간을 구한다.


 ‘휴, 정말 다행ㅠ 근데..

 12월이면 추울 텐데

   관객들이 과연 올까?'


 일단 페이스북에 올려

전시 홍보를 해보지만 걱정스럽다.ㅠ


 나의 세 번째 개인전

 ‘사샤 삵 展(2017)’이다.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는 ‘삵’이다.


보통 ‘삵’(살쾡이)에 대해선 이미지가 낯선데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젠가 다큐 채널에서 본

영상 때문이다.

언뜻 보면 귀여운 고양이처럼 보이는 '삵'.


하지만 편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개체 수 극감으로 ‘멸종위기’로 지정되었다.

    

그런 '삵'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시각장애'와 오른손 마비, 다리뼈 탈골.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어둠과 아픔.


우린 많이 닮아있다.          



나는 ‘삵’.  

              -미긍      


내가 흔한 ‘고양이’라구?

귀에 솟은 두 가닥 털.

멸종위기의 야생동물,     

나는 ‘삵’이야.    
외로워도 티를 내지 않아.


 낯선 계단에선 발을 헛딛고 구르기 일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고
 
마비되는 손과 다리뼈 탈골.     

이게 내 현실이지.      

그래도 ‘장애인석'은 이용 못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거든.   

 드러내지 않는 고독,

나는 ‘삵’이야.      


‘사사 삵~
당신에게 다가갈 거야!


 -사사 삵~展 메인 테마
‘사사 삵 展’(2017)

   

첫 개인전의 메인 테마 ‘광대의 꿈’에서는

처음으로 줄을 타는 광대에 휠체어와 보호자 없이

 혼자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게 된 나의 현실을 담으며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이번엔 겉으로는 어려움이 드러나지 않는 ‘삵’의 모습에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끌어내었다.


 그런데 마음을 담아낸 그림엔

참 신기한 효과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본인에게도 위로의 에너지가 되는 건 물론이고 그걸 보며 아픔을 공감하는 이들에게도

커다란 힘을 받게 되니.

         

(세상의 문을 열어/A3/수채/펜)
 -삵 위에 오른 휘파람새.
사고 후 13년 만에 불어진
휘파람을 형상화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린다.

 혼자 지하철 혜화 역 4번 출구에서 내려

 동숭중학교 방향으로 조심조심 전시장을 찾아간다.


사실 혜화 역은 그동안 100장 드로잉을 검사 맡을 때 줄곧 다녔기에 2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건 수월해졌지만...


문제는 혜화 역에서 혜화아트센터로 나가는 도보 10분이다. 비포장으로 좁은 길이 울퉁불퉁하게 이어졌고 나의 오른쪽 시선이 차단된 탓에

길의 오른편에 위치한 전시장을 못 본채 지나치던 경험이 있어서 늘 긴장해야 한다.


게다가 오늘처럼 길에 눈이 쌓여 미끄러우면

더욱 걱정. 전시기간 동안 혼자 오는 길에 익숙할 만도 하건만 이렇게 변수가 생긴다. 쯥.  


            




“올해는 눈이 참 많이 와요.

근데 이런 날 관람객들이 올까요?”


옷에 묻은 눈을 털며 하는 나의 푸념에

 전시장 큐레이터 언니가 말했다.


“이런 날씨에도 그림이 좋으면

 관람객들이 제법 와요.

 작가님~ 걱정 마세요. 호호..”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향이 좋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민다.

이번에 알게 된 나보다 언니인 한은정 큐레이터다.

그녀는 늘 맛있는 커피와 응원으로

나에게 힘을 더해준다.


 커피를 다 마시고 전시장 안을 어슬렁거리며

종이컵 등을 정리하는데 어디선가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와~ 눈이 정말 많이 내려요.

미긍 작가님 저희 왔어요!"


‘앗. 이런 날씨에

 첫 관람객이 누구지..?’


 두근두근...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다가가서

 누군지 확인하고는 난 말문이 턱 막혔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주말 아침

전시를 찾아준 첫 관람객은 휠체어로 어려운 걸음을 했을 아버지와 딸이다. 지하철로 이동해도

걷는 구간이 힘들다는 걸 본인이 짐작하기에

더욱 미안하다


 게다가 유진 양에게 최근 메시지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던 것도 맘에 걸리고. 에휴.  

   

“눈이 많이 와서..

휠체어로 오시기에 많이

불편했을 텐데. 너무.. 감사해요!

여기 따뜻한 차를 좀 드세요.”


일단 종이컵에 따뜻한 둥굴레차와 녹차를 타서 내밀었다. 그리고 내게 받은 종이컵을 감싸 뜨거운 차를 호호 불며 유진 양이 말했다.


“괜찮아요. 작가님.

저희는 원래 날씨가 이래도

외부에 많이 돌아다녀요.

아빠가 힘드시려나? 괜찮지, 아빠? 힛~”


 그녀의 말에 뒤에서 휠체어 바퀴를 정돈하던 아빠가 마주 웃는다.

그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이윽고 두 부녀만을 위한 나의 전시 에스코트가 시작되었다. 작품들마다 그림이 나오게 된 사연과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물론 작가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담는 것도 중요한 의미겠지만 나의 그림엔 주로 그림을 보는 이들의 공감과 위로를 담아낸다.  

        


“작가님,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전시장 입구까지 배웅하는 나에게

유진 양 아버지가 말한다.


사실 고마워하는 그들보다 나에게

 더 힘이 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요즘 유진 양과 연락이 뜸해졌는데

학교 일정이 바쁜가 보다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아닌 메일이 왔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떠세요? 전.. 너무

마음 아프고 슬픈데...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자꾸..
 웃으라고만 해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유진 양의 메일 첫머리.

 뭔가 뒤섞여 있는 어휘.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글을 쭉 읽어나갔다.


근데... 헉!? 글의 마지막을 읽다가

나는 너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메일 끝부분에 알려온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다.


유진 양과 아빠와의 돈독한 관계를 내가 지켜봐 왔기에 마음이 더 쩌릿하게 아려온다.


걱정스러운 맘에 그녀의 휴대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지금 수업 중이라 받지 못한다고 메시지가 왔다.


아.. 맞다. 지금 학교 수업시간이군.

 나는 다시 그녀에게 짧은 답 메일을 보냈다.  

           


‘슬플 때는 그냥 마음껏 울어도 돼요.        

그렇게 울어야 아버님을 마음에서
놓아드릴 수 있어요.          

대신 건강해야 해요.      

밥 잘 먹고.     

                      -미긍               


그 후로 한동안 유진 양에게 연락이 끊겼고

나도 굳이 그녀를 찾지 않았다.


어쩌다가 그녀의 sns 공간에 마치

노래 가사처럼 길게 써 내려간 시들이 보이곤 했다.    

글을 올린 시간이 대체로 늦은 밤이나 새벽인데 시의 개수가 대략.. 하루에 열 편 이상

어쩔 땐 스무 편도 넘는다.


아무런 댓글 없이 혼자 마구 써낸 독백.

유진 양의 시에는 종종 아빠가 등장하는데

그를 향한 고마움과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유진 양은 이렇게

시를 쓰며 본인의 마음을 풀어내는 것일까?'     





*힐링(healing) : 몸과 영혼의 치유.           


누구에게나 ‘힐링’의 모습은 각양각색.  

   

나의 가장 큰 ‘힐링’인 그림을 담다 보니..

그림 작가가 되었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근데 난 맛있는 걸 먹으면..


그림이 더 잘되더라.  

         


그럼 돈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수입만을 위한

상업적인 그림은 조심하기로.     


-참말로 어려운 과제~ㅎ;          


-조만간 출시될 '미긍 마우스'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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