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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Sep 26. 2019

나의 단기 기억상실증 '뚜껑 장애!'

수시로 먹던 약을 끊고 나니 더욱 끔찍한 '성장 통'이 나를 기다린다!

어? 이게 무슨 뚜껑이었더라..?’

희한하게도 과거의 기억들은 더 선명해지는 한편

최근 일들은 머릿속이 하얘진다.


‘단기 기억상실.’  

나는 ‘뚜껑 장애’다! ㅠ 

   

-퇴원 후 어느 날 (2008~ ) 

        

"여기에 100원을 넣고 

이렇게 하면 동전이 빠지는 거야.

자~ 다시 한번 봐봐. 쇼핑 후에 물건을 싣고.. 요렇게 해서 100원을 꺼내오면 돼~ 알았지?"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있다. 보는 것마다 '별세계'일 정도로.  ‘이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엄마가 입구 한 켠에 줄지어있는 쇼핑 카트에 100원짜리를 넣으니 딸깍 하면서 카트하나가 무리에서 분리가 된다. 요즘 카트에서 동전을 꺼내는 방법을 엄마가 조근조근 반복해서 주입시키고 있다. 쇼핑 후 차를 빼는 동안 딸내미한테 카트의 100원을 꺼내오라는 분부.예전 기억들은 어느정도 돌아왔는데 왜 새로운 건 주입이 더딘지 모르겠다. 이 동네로 이사를 한 후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곤 했다. 어쩔 땐 이렇게 깜깜해진 나의 기억력에 집을 영영 잃어버리는 거 아닌지 겁이 덜컥 나기도. (핸드폰 꼭 챙겨야쥐! )


‘쇼핑카트에다가 100원을 넣는 거구나.

내가 병원생활을 한 게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별의별 게 다 생겼네. 신기.'

#에세이 #그림에세이 #장애 


‘이마트’에 가면 나는 늘 긴장이다. 

그나마 한가한 시간을 이용한다 해도 마트는 늘 혼잡하고 정신없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어느 쪽에서 카트가 밀려올지 모르니 시선을 집중해야만 한다. 정면을 바라봐도 오른쪽 시선이 차단되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수시로 오른쪽을 주시하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사실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깜빡 잊곤 한다. 시선의 오른쪽에서 뭐가 튀어나오면 상대방은 내가 봤을 거라 판단하지만   번번이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친다. 어쩔 땐 평소에 착용하는 자외선차단용으로 쓰는 커다란 선글라스가 날아가곤 한다. 


“오늘이 마지막 세일, 특가 특가!”

“여기.. 맛있는 생선구이, 맛보고 가세요!” 

“오리구이 오늘만 특가..” 

점원들은 물론 오늘따라 쇼핑카트 물결이 장난 아니다. 제대로 못 보게 되면서 청각이 더 예민해졌는데 여기저기 왕왕대며 울리는 소리를 듣다보면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이렇게 쇼핑카트를 밀며 장을 보기 시작한다.

쇼핑카트를 내가 끄는 이유는 카트에 의지하기 위함이다.

카트를 밀면 손을 얹을 수 있어서 그나마 편하다. 이렇게 번잡한 마트는 혼자 걷기에 아직 불안한데 쇼핑카트를 밀면 다리에 가중되는 힘도 어느 정도 분산되어 안심이 되고 편하다.       

거리에서 어르신들이 '실버 카'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되는데 그 원리를 서른도 안 돼서 벌써 내가 깨닫다니. 헐~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카트에 가득 실었다.

식료품 코너에서는 종류별로 시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통계에 따르면 배가 고픈 상태에서 쇼핑을 하면 이것저것 불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배가 부른 상태에선 구매할 욕구가 안 생긴다. 열심히 시식하는 재미가 반감되서인가? 어쨌든 쇼핑은 배고플 때 하는 맛이 있다. (아님 말고~ㅋ;) 


세제와 주방용품, 우유도 사고 커피도 산다.

더 필요한 거 없나? 이제 쇼핑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니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제 외출하면 한 시간짜리 나의 ‘저질체력.’ 마트바닥이 굴곡 없이 편편하더라도(바닥에 굴곡이 있음 걷기 힘들어짐.) 물품들마다 비치는 조명 빛이 강하고 사람들 이동도 많아서 금방 지친다. 이제 계산을 마치고 마트 주차장까지 왔다. 휴.

쇼핑한 물품들을 차에 싣고 엄마가 차를 빼는 동안에 일러준 대로 내가 카트에서 100원을 빼낼 차례. 긴장.. 또 긴장.


'어?! 동전 빼내는 방법...

뭐였... 지?; 100원을 어디서 꺼내더라.?' 

순간 마치 처음 보는 기계를 대하는 

치매 '어르신'이 되었다.      

몇 번은 주차하던 엄마가 짜증스럽게 차에서 내려서 쇼핑카트에서 100원을 꺼내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결국 그 후론 100원을 꺼내는 건 

아예 엄마가 하는 일이 되었다.


미안하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기억 장애는 나에게 수시로 찾아온다.


'어..??! 이건 대체 무슨 뚜껑이야? 

어휴~ 답답해! ㅠ'

#에세이 #그림에세이 #장애 




-'뚜껑 장애 ㅠ' (2016)


식사를 마치고 나면 몇몇 반찬에 맞는 

뚜껑을 찾아 닫아야 하는데.. 

생활 속에서 이런 세세한 것까지 헤매는 바보가 된다.


직접 겪는 본인이 이렇게 답답한데 

이런 나를 지켜보는 엄마 입장에선 얼마나 속이 터질는지.ㅠ



'뚜껑 장애..'     

이렇게 발견되는 생활 속의 '단기 기억 장애'들은

내 나이에서는 그닥 겪지 못 할 여러 장애들은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고 있다.    


수시로 먹는 약을 끊고 나니...

더욱 끔찍한 '성장 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2008~ )


#그림에세이 #에세이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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