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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Sep 30. 2019

다리 재수술 (2008)

장애는 또 다른 장애를 부른다. 비참하게도.

청년부 성가대에서 활동을 하면

사고로 잃어버린 목소리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멘 [Amen] :

'그렇게 될 지어다!'-2

 나의 기도


"으앗!! 아파요..! ㅠ"

딸내미 귀를⁠ 파던 엄마가 흠칫 놀라서

파던 걸 내려놓는다.

"아이고, 많이 아프겠다.

답답해도 그냥 네가 파야겠어. 잘 보이지도 않고 난 못해. 이젠 잘 못 건드릴까 겁나서 더 못 해!;"  


요즘 귀가 너무 간질간질한 게 답답해 죽겠다.

얼마 전엔 내가 오른손으로 귀를 파다가 피가 났다. 너무 겁나서 사실 그 후로는 나도 귀를 못 건든다.


눈을 대신해서 듣는 게 예민해진 청력에 많이 신경을 쓰는데 그것마저 다칠까 봐 염려된다.

물론 '이비인후과'에 가면 말끔히 귀 청소를 해준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써야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뒤처리하는 사소한 것들도 이제 오른손으로는 할 수 없다.

양치질할 때도 오른손을 사용해봤지만 구석구석 안쪽까지 제대로 닦이지 않는다. 힘이 주어지지 않아서 인가보다. 오른손 사용하다가 치아만 상할라.

어쩔 수 없는 개인적인 일상은 왼손을 사용하기로.


높은 선반에서 컵을 꺼내는 일도,

컵에 물을 따르기, 머리를 쓸어 넘기는 것조차

오른손으로는 안 올라간다.

나 같은 약간 곱슬머리는 특히나 머리 쓸어 넘김에 따라 헤어스타일이 좌우되는데 이제 왼쪽이랑 오른쪽이랑은 확연히 달라졌다.


하긴, 얼굴의 왼쪽이랑 마비된 오른쪽은

표정부터 짝짝이니 젠장.


하다못해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것도 왼손으로는 왜 안 눌러지는지.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사실 오른손으로 펜을 쥐고 글씨를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아침이면 오른손은 지금도 오그라드니까. 매일매일이 나만의 숙제다. 누구에게라도 터놓고 얘기하고 싶지만 말할 대상이 생각 안 난다.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아 바쁜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만날 친구가 없다는 것은 참 외롭고 심심한 거구나.


나의 세례명은 '안젤라'.

문득 '여의도 성모병원' 내부에 있는 간이 성당에서 기도를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휠체어 없이 다시 혼자 걷게만 된다면.. 앞으로 뭐든지 열심히 해낼게요. '  

치료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계획 안 서는 지금

그때의 기도가 무색해진다.


자주 말을 하려면 동성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를 어디서 만나지..? 종교활동을 해볼까?

일단 성당에 가보자! 말할 때 힘없이 갈라지는 목소리로는 주변에서 '어디 아파..?'가 일상이고 점점 말하기도 싫어진다.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보자!

혼자 동네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입구로 나오는데 인원 모집 공고가 보인다.

어..? 청년부 성가대??!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이제 첫 번째 도전이다!


"저.. 성가대.. 모집공고를 보고 왔는데요.."

문을 열어 삐쭉.. 얼굴을 들이 민다. 어색한 나의 방문에 청년부 여성 회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성가대에 가입해서 찬양하며 사고로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고 싶다는 나의 사연을 듣더니 그녀가 내 손을 따뜻하게 잡는다. 성가대 단복 가운이 너무 잘 어울리는 하얀 피부에 청순한 인상이다. 좀 이쁘군. 단원들을 향해 말을 하나 싶더니 이내 나에게 돌아와서는 흔쾌히 승낙했다.


 "네! 정말 잘 오셨어요. 함께 활동하시지요.. 호홋"  

단원들을 둘러보니 내 또래는 없다. 보통 20대 초반에서 많아 봤자 중반 정도? 그들과 인사를 하고 공고를 듣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나에게 잽싸게 다가온다.


"집이 어느 방향이세요?"  작은 키에 통통한 체구,  밝은 갈색 머리, 발그레한 귀여운 인상의 여성 단원. 내가 사는 곳을 밝히니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와~! 우리 동네예요! 저는 '진희'예요. 집에 같이 가요!"

함께 집에 가게 되어서 좋다! 드디어 나에게도 동네 친구가 생기는구나.

나보다 ⁠6살 어린 20대 초반의 진희에게 배울 점이 참 많다. 알찬 구성의 화장품 브랜드라던지 손톱관리가 편한 저렴이 브랜드, 또한 맛집 정보도 꿰뚫고 있다. 술 안 마시고 남자 친구도 없는 그녀에게 맛집 탐방은 특별한 취미인 듯. (그래서 통통하구나~)


아르바이트로 돈을 열심히 모아서 당당하게 맛집에서 특별 메뉴를 즐기는 모습이 별나면서도 귀엽다. 더 나이가 먹고 남자 친구가 생긴다면 소비구조가 달라지겠지만..


"언니~ 공책 돈가쓰 먹어봤어요?"

"아니.. 안 먹어봤는데? 돈가스가 공책만 한 거야? 무섭네..? ㅋ”

"그거 되게 맛있어요! 나 오늘 알바 월급 타는데 내가 쏠게요! ㅋ"

공책 돈가스라고..? 다음날 오전 그녀와 만나서 여기저기를 빈둥빈둥 둘러보다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서둘렀다. '공책 돈가스'를 먹기 위해.


작은 매장이 손님들로 꽉 찬 유명 맛집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 돈가스 튀겨내는 기름 내음이 고소하게 풍기고 땡기네. 이래서 맛집이구나.


"언니, 요기.. 자리났어요. 맛있겠죠? 내가 알아서 시킬게요!" 진희는 맛집에 오니까 얼굴이 더 밝아졌다. 이윽고 나온 돈가스와 양배추 샐러드. 왜 공책인지 알겠다. 정말 공책만 한 네모진 도톰한 고기를 튀김옷을 얇게 입혀 튀겨 바삭, 푸짐한 돈가스. 나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먹다 보니 한계를 넘어 서고 말았다. 다 먹고 나니 돈가스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온다. 무식한 과식이다.


그렇게 돈가스를 해치운(?) 뒤, 우리는 남대문에 있는 알파문고 본점으로 향했다. 아직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여러 화구들을 둘러보니 사고 싶어 진다. 디자인 쪽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진희도 필요한 화구를 고르는 사이 찬찬히 아래층까지 둘러보는데 구식 건물인 데다가 계단도 여러 개로 복잡하다.


도중에 길을 잃어버렸다가 진희에게 핸드폰을 하고 내가 있는 곳에서 기다렸다. 4층 건물이 화구들로 꽉 찬 알파문고 본관 건물에서 오래된 향이 베어 나온다. 왠지 언젠가는 이 곳을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알파문고를 둘러보고 나니 3시간이 다 되어간다. 많이 먹고 쇼핑까지 마쳤으면 그냥  거기서 집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진희의 식욕과 식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언니, 이제 소화 좀 됐죠? 헤헷~ 2차 가야지요!"

나도 기분 좋게 따라간 그곳은 수제 햄버거를 파는 곳. 배가 꺼지지도 않았는데 또 흡입하고 말았다.

"더 이상 상체가 무거워지면..
다리가 못 버텨요. 앞으로 휠체어에서
못 내려옵니다! 조심.."  

너무 많이 먹은 죄책감이었을까?

갑자기 휠체어 생활을 하던 시절, 살이 자꾸만 찌는 나에게 경고를 하던 담당의 목소리가 들린다. 속이 뒤틀려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진희도 불룩한 배를 움켜잡고 숨을 들이쉰다. 내가 진희를 보며 말했다.


"우리 이대로는 절대 안 돼! 움직여야 해. 걸어가자. 집까지.."  

나의 무식한 발언에 진지하게 검토하는 진희.

 "헥?! 집까지요? 음.. 나도 배부르긴 하지만.."  

핸드폰으로 지역을 검색하는 진희는 길눈도 밝다. 그렇게 함께 걷기로 했다. 3시간 반 정도를 걸었고 한강대교가 나오는데 집은 아직 멀었단다. 이미 해는 져물어가고 어두워진다. 무섭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택시~!!


술 한 방울 안 마시고도 의식을 잃을 수 있었다.

비몽사몽으로 집에 들어왔고 죽은 듯이 쓰러져서 잤다. 걱정하는 엄마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벌써 다음 날 오후 3시다. 퉁퉁 부은 몸을 일으키려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비틀비틀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몸이 이상하다?! 탈골된 다리의 빈 공간을 채워놓은 인조뼈와 나사들이 반항하기 시작한다. 어제 무식하게 걷고 난 후유증.



다리 빈 공간을 채운

인조뼈가 돌출되기 시작한다.

장애가 또 다른 장애를 부르듯.


안 좋은 일들은

왜 한꺼번에 닥쳐올까?

  -다리 재수술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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