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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Oct 05. 2019

당신의 웃음소리.

지금은 누구와 함께 일까? 당신의 그 웃음.

'우리.. ㅇㅇ애인 되는 아가씨인가요? 허허'   

나의 건강상태와 안부를 묻는다.

교육자로 정년 퇴임하셨다 말로만 들어온 분.   

나를 따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신다.


'그 순간을 잠시 꺼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기억이 있다.'


-남자 친구 아버님 (2008)


  

                                                                                                                                                                                                                                                                                                                                                         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우리는 병원 내부를 돌았다. 성모병원 1층 내부로 들어가면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병원 내 성당이 나온다. 병원 내부에 장식된 종교 벽화로 십자가를 진 예수 그림을 비롯 여러 개의 마리아 형상의 그림들과 열 두 제자가 모인 탁자 그림.. 평소에 내가 식사를 마치면 매일 도는 코스였다. 그림을 순서대로 외울 만큼.  

                                                                                                                                                   "병원 입구가 꼭 그림 전시장으로

연결된 것 같아! 보기 좋지..??"

그가 휠체어를 밀다 말고 내 표정을 살핀다.

"다 성당 그림 같은데 몰.

그리고 내 눈에는 잘 안 보여."

귀찮은 듯 말하는 내 말에

남자 친구가 맨날 같은 소리만 한다.


"이제 퇴원하면..

다시 그림 그리자! 넌 할 수 있어!"

대답 없이 나는 오른손등에 생긴

수많은 주사기 바늘 자욱을 내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펴지지 않는

오른손을 꼼지락대며 그림을 바라본다.

그렇게 그림들을 보는 습관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병원인데 꼭 종교 그림만 걸려있지..?'

하긴 천주교 이념으로 설립된 '성모병원'이니까 종교화가 전시되어 있는 게 어쩌면..

당연했을는지 모르겠다.


사고가 나기 훨씬 전 나는 전공하던 일러스트를 뒤로 했다. 당시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워낙 주변에 흔했기에 나까지 꼭 그림을 그려야 하나..

도저히 자신이 안 생긴다.

그래서 도전조차 접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그림' 대신 '유행 패션'을 따르던 나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던 남자 친구.


  '우리 ㅇㅇㅇ 여자 친구 되는..

아가씬 가요? 허허헛.'  

순간 당황스러워하는 나의 대답에 대뜸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편히 들려서 다행이라 하신다. 남자 친구의 아버님이란다. 헙..

요즘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가 싶더니 이내 따로 자리를 만들어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사실 난 목소리만 편한데..ㅠ;)


예고 없는 그의 아버님과의 통화.

교육자로 정년 퇴임한 그의 아버지에 대해선 남자 친구에게 들은 게 전부다.

통화를 하는 그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의 어머님도 내가 병상에 있을 때 오래 앓던 병환으로 하늘나라에 가셨댔지.

‘아휴. 하필.. 다리 재수술로 요즘 잘 걷지도 못하는데.. 만나자고? 어쩌지..?!’

그의 아버님을 뵙게 되면 카페에서 앉아만 있을까?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하시면 어쩌지?

걷는 거 보이기 정말 싫은데.


하긴 그와 내가 사귄 지도 어느덧 4년이 되어가는데

나이만 차고 결혼에 대한 아무 계획 없는 아들이 답답하기도 하실 테지.

하지만 내입장에서 사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를 향한 나의 감정이 어떤 건지 확실치도 않을뿐더러 언제쯤 혼자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될는지 자신이 없다. 그의 아버님과 통화를 마치고 남자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그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다.


"엇?!! 뭐라고?!

아버지가 너한테 전화했다고.?!!

 진짜야??! 안 되는데.. 어휴..ㅠ"   

생각보다 그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럽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만큼.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거야?

나랑 사귀는 게 그렇게 곤란한 거니?!’


그 일이 있은 후 일이 바쁘다며

나에게 더 소홀해진 그.  

문득 내가 그의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가슴이 한켠이 무척이나 시리다.       

‘그가 나를 떠올리면.. 사랑이란 감정이 있을까?’ 감히 짐작컨데 '사랑'보다는 '책임감'이 먼저였을 듯.  

그날 그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지 못했던 책임감도 무시 못했겠지.


 당시 우린 둘 다 서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당신의 웃음소리 (아름다운 긍정 '미긍' 에세이 中2014)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점검’은 아이였을 때나

어른이 된 후나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먼저 현재 느끼는 본인의 감정이 어떤 건지

정확히 파악되어야 이후 이어지는 행동도

솔직해지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감정의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예전에 왜 그림을 제대로 못 그렸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거 같다.


'그림' 아니면 안 될 만큼의..

 '절실함'이 없어서였다.

이제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며

가치 있는 쓰임을 받는 걸 알면

그도 무척이나 기뻐할 텐데.

-푸르메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재능기부 전시 인터뷰 (2016)

당시 그의 상황을 이해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나.


가끔은 당신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스친다.

  -‘몇 일동안 당신 생각을 너무 집중했더니..

       막.. 가위 눌려. 젠장;!' (미긍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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