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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Oct 03. 2019

'내 다리가 이상해!'

가끔은 밝히기 싫은 아픈 '비밀'이 생긴다.

미친듯 너무 먹고

무식하게 많이 걷고 난 '후유증?!'

요즘 다리가 이상해졌다.


 -다리 재수술 (2006)


"엄마.. 나 요즘.. 다리가 이상해.

다리 안에서 뭔가 튀어나와! 휴."

이젠 내 몸 상태를 엄마한테 알리기도 미안하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숨김없이 즉시즉시 말해야 더 큰 화를 면한다지만.. 예전에는 건강으로 인해 겪어보지도 않은 일들을 자꾸 생긴다. 조심스러운 나의 얘기를 듣고 역시나 엄마의 한숨이 깊어졌다.


"뭐?!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번엔 또 뭐지? 걸을 때 아프니?! 어떡해~!"

그러고 보니 퇴원 후 오른쪽 허벅지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지 1년도 채 안 되는구나. 오른쪽 허벅지 옆에 독소가 차올라서 철렁철렁 대던 나쁜 혹을 떼어낸 수술. 오른쪽의 장애는 별의별 게 다 생긴다.


"일단 오른쪽 다리 걷어 올려 봐. 이번엔 어느 부분이야?" 내가 바지를 걷어 올리자 엄마가 오른쪽 다리를 돌려가며 유심히 바라본다. 내가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짚었다. "여기.. 이 부분이야."  종아리를 구성하는 앞 뼈 부분에 뭔가가 돌출됐다. 살살 만져보니 딱딱한데? 덜컥 겁이 난다. 또 오른쪽에 독이 차오른 건가? 근데 올라온 부분이 그때랑 촉감이 다르다? 아.. 그랬다. 어제 많이 먹고 무식하게 걷다가 이렇게 됐다고는 도저히.. 말 못 하겠다. 엄마한테 혼날 게 분명하고 밝히건 안 밝히건 속상한 건 매한가지.  그냥 시치미를 떼기로.종아리 앞부분에 인조뼈랑 나사가 돌출되는 거 같다.


"아무래도.. 이 거 인조뼈가 튀어나오는 거 같아.

잘 못 된 게 아닌지 걱정이네. 병원 예약부터 잡자!"  일단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아 상태를 진단받기로 했다. 예약 시일이 다가오고 그동안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돌출이 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며칠 후 드디어 성모병원을 찾았다. 병원 냄새가 나를 반긴다. 에이, 진짜 싫다.


옷을 갈아입고 내가 싫어하는 차디 차고 딱딱한 쇠침대에 다리를 여러 방향으로 뉘이며 사진을 촬영했다. 읔.. 늘 드는 생각이지만 나처럼 다리 살이 실~한 사람도 이렇게 손상 부위 사진 촬영하려면 소름 끼치도록 뼈까지 시린데 원래 다리가 부실한 사람은 얼마나 더 아플까..?


검진 결과를 들고 엄마와 함께 의료진에게 가서 상담을 했다. 사실 난 잘 모르는 아주 먼 친척이란다.

“네, 오셨어요?? 주혜 다리 촬영한 거 결과를 봤습니다. 이런 말 하기가 좀.. 곤란하네요. 어쩌죠..?"

엄마와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본다.

"왜... 요..? 다리.. 많이 안 좋아요?"  

그러자 그가 말하길.

"인조뼈랑 나사랑,, 제대로 붙어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마무리했지? 이 상태로 그동안 어떻게 걸어 다녔지요..?"  

내 입에서 바로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농담.  

"그러게 말입니다. ㅋ;.."  (아직 살 만한 가부다.)


상담을 계속 받다보니..

잘 모르던 사실도 알게 됐다.

원래는 인조뼈를 몇 년은 더 착용하고 있어야 했는데 문제가 발생한 거란다. 그리고 인조뼈를 빼는 시술 같은 경우는 타 병원에서는 잘 맡아서 하지 않는다고. 처음 수술받았던 병원을 다시 찾아 여의도 성모병원이 수술을 받겠노라는 소견서를 받아야 했다.


서둘러 내가 처음 머물던

건대 앞 '혜민병원'을 찾았다.

엄마가 박카스 한 상자를 앞세우고 당시 나를 담당했던 의사와 상담을 예약했다.

내가 의식 없던 상황에서 머문 병원이라 모두 낯설고 어색하다. 그곳은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제법 많이 모여있다. 정신없네.


 "여기 중환자실에서 한 달은 있었지.

보호자들 모여있는 이쪽에서 늘 대기 상태였어."

작은 쪽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보호자 대기실?!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게 마음이 쩌릿하다. 말없이 엄마손을 꼭 잡았다.


상담실에서 기다리는데 담당의가 들어왔다.

이내 담당의가 깜짝 놀라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본다.

하긴 당시 내 모습은 머리도 완전히 삭발한 상태인 데다가 시체처럼 한 달 동안 깊은 잠을 자고 있었으니 어쩌면 살아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할 게다.


"네... 선생님, 우리 주혜.. 살아났어요!

정말 감사해요..!"  

엄마 앞에서 나는 항상 '우리 주혜'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랬다. 이제 나도 나이를 좀 먹었는데 어쩔 땐 괜히 민망하기도 하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데요?!

정말로 축하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엄마가 예전 상황이 떠오르는지 눈시울을 붉힌다.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사고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의식 없는 딸을 놓쳐버릴 거 같은 엄마의 예감에 그 담당의를 찾아가 울며 하소연을 하고 더 큰 병원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겼다고 들었다. 이내 엄마가 눈물을 훔치더니 말을 잇는다.

 "이제 인조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요. 오래 머물던 병원에서 받고 싶습니다. 소견서를 좀.."  엄마가 곤란한 표정으로 동의를 구하니 그가 흔쾌히 소견서를 써준다.

 "원래는 정말 안 되는데..

어머니 때문에 써드리는 거 아시죠?"

-나의 병원 생활 (볼펜 드로잉 2015)

그렇게 해서 이제 인조뼈와 다리를 채운 나사들을 빼내는 수술을 성모병원에서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밀검사와 사진을 다시 찍어보니 다리 상태가 많이 심각해서 부분마취가 아닌 전신마취를 진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수술을 전에 간호사가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내 눈으로는 써있는 글씨를 잘 볼 수 없어서 물어보니 수술이 잘 못 돼도 병원은 일체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의 동의서다.


수술이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내가 곁에 있던 오빠에게 물었다.

 "수술받을 때마다 이런 동의서를 꼭 써야 해? 무섭다."  그러자 오빠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너 다른 수술받을 때는 수술하다가 만약 죽더라도 병원은 전혀 책임 없다는 각서랑 지장을 꼭 찍었어."  

더 이상 할 말 없다.


그렇게 진행한 수술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전신 마취한 딸이 혹시 잘 못 될까 엄마가 걱정을 많이 했다지만 나는 조금씩 의식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정신은 몽롱한 상태.


"너무 많은 인조뼈와 나사들이

뼈와 엉켜서 오른쪽 다리를 꽉 채우고 있었어요.

이제 다리의 빈 공간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으로 채워내야 합니다.

환자분.. 꼭 명심하세요!"  

담당의가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수술한 다리는 붕대로 칭칭 감싸서 어떻게 됐는지.

“빼낸 인조뼈랑 나사들을 확인시켜주는데..

넘 많아서 진짜 깜짝 놀랐어!"  

엄마가 곁에 있다가 한 마디 거든다.


'어쩐지...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더라.


   음.. 다리 빈 공간을 근육으로 채우려면..


     일단 '단백질 보충?!'


 이제..
고기 먹으러...
가즈~아~!'   

                       -다리 재수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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