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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Oct 07. 2019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만만해 보이는 힘든 당신에게 던지는 '미끼?!'

#그림에세이 #에세이  

간만의 상쾌한 아침이다.

아직 인조 뼈를 뜯어낸 빈 공간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피부까지 아려오지만 이제 조금씩

혼자 걸어보기로 한다.     


아플 때마다 복용하는 약은

될 수 있는 대로 줄이자!     

회복에는 운동이 필수라 하니

일단 집을 나와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요즘 들어 거르지 않고 매일

부원장이 지도하는 단전호흡 오전 수련을 찾는다.     

약간 통통한 체격,

밝은 갈색 커트 머리,

활달한 성격의 부원장이 오늘도 나를 반긴다. 나보다 몇 살 위인 그녀는 고맙게도 나의 건강상태에 늘 관심을 갖아준다.        

"주혜 도우 님(도우(道友 :함께 도를 닦는 벗.) 오늘은 몸 컨디션이 좀 어떠세요?" 내가 대답한다.

"어제보다 통증이 좀 나아졌어요.

오래간만에 잠도 푹 잤고요.."  

부원장이 나를 보며 웃는다.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예전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았거든요. 지금은 수련을 통해 극복했어요! 주혜 도우님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더 마음이 쓰이네요."   

   

그러던 그녀가

언젠가부터는 사명감에 불타서

나에게 개인 수련을 추천한다.          

멀리 지방에 내려가서 받는

2박 3일 코스의 수련?!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된다고?

또 나의 얇디얇은 '팔랑 귀'가 발동 시작.


근데 듣다 보니 수련비용이 넘 비싸다.

2박 3일에 100만 원이 넘는다고?!

108만 원이나?! 헐.      

매월 나에게 들어가는 치료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그런 목돈이 나한테 어딨어? 너무 비싸다고 손사래 치는 내게

부원장이 다가와 더 솔깃한 '미끼(?;)'를 던진다.       


"주혜 님.. 이번 수련 다녀와서

한 달 후 더 특별 수련이 있어요.

지금 불편한 시력도 돌아올지 몰라요! 아니면.. 책임지고 제가 '환불'해드릴게요! 속는 셈 치고.."           

어? 이 거봐라?!

제대로 보게 해 준다고?!      

책임지고 환불까지..? 이렇게 책임감 있는 말이 또 있을까? 나의 '팔랑 귀'가 부원장이 던진 ‘미끼’를 덥석!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고민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수련 예약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며 서두르는 부원장.     

갑자기 무엇에 홀린 듯

원장과 사범들의 박수를 받으며 계약서에 서명하려는데 곁에 있던 부원장이 잘 못 보는 나를 위해 계약서를 큰 소리로 낭송하기 시작한다.

"ㅇㅇ수련에 참가하면 선금을 입금하고 회비는 반환되지 않으며.. "     

어? 환불이 안 된다고?

내가 다시 묻자 계약서에 늘 표기되는 기본약관이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들의 환호 속에 얼떨결에 내 돈 계약금 40만 원을 계좌 이체시키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뭐?! 그게 말이나 돼?! 그깟 수련 갔다 온다고 눈이 잘 보여?! 그런 수련이면 몇 천, 몇 억을 들여서라도 너 보내겠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노발대발이다.

뇌 손상으로 시각장애가 온 건데 무슨..

'신 내림'도 아니고 그게 말이나 되냐고.

이내 엄마는 나를 보며 푸념한다.

"내가 이런 널 두고

어떻게 먼저 눈을 감니?! ㅜ"

사실 부원장의 단호한 권유에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홀린 듯 저지른 수련 신청. 아무래도 이건 아닌가 보다.         


다음날 다시 수련장을 찾았다.

부원장에게 가서 나의 사정을 얘기했는데 늘 나의 편이던 부원장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수련 취소는 절대 안 되지요.

수련을 일단 참가해서 환불을 원하시면 그때 제가 따로 해드리겠습니다! 두 번 다녀와야 하고.. 이미 계약금도 넣은 상태에서 환불은 절대 안 돼요! 제가 계약서 약관도 전부 읽어드렸죠? 단순한 심적인 변동에 의한 계약취소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정색을 하며 거절하는 그녀 모습,

정말.. 충격 이었다!  

   

결국 광고 쪽에 있는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비싼 수련을 하루 지났다고

계약취소가 안 돼? 그게 말이 돼??

 '소비자고발센터'에 확 신고해버린다!? 원장 바꿔!!"

전화를 바꿔주자 오빠의 불같은 호령에 부원장 표정이 점점 굳어왔다.

그렇게 어렵게 계약금을 환불받고

더 이상 부원장은 나와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수련장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잠깐만~ 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 수련장에서 본 사범이다. 그가 승강기에 오르고 나도 인사를 했다. 찬찬히 그의 모습을 뜯어보니 키 170 정도의 40대 초반.. 보통 체격의 남자 사범. 염색을 한 짧은 갈색머리, 흰 피부가 붉은 편인데 눈이 핏줄이 온통 빨갛다?!

"어머?! 사범 님.. 눈이 너무 빨개요!

양쪽 다.. ‘눈병’인가봐요?!" 그러자 사범이 나를 보며 배실배실 웃는다.

 ‘엌; 웃으니까.. 더 비호감-’

"제 눈은.. 원래 빨개요. ㅎ"

눈이 빨개서 힘들겠군. '토끼 사범.'    

 

그 후로 그와 마주치면

나에게 친한 척을 하며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등의 스킨십을 한다.

"사고로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늘 밝으시고 보기 넘 좋아요! 하핫"  그땐 '토끼 사범'의 그런 관심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원래 수련을 지도를 맡은

여 부원장이 당분간 센터를 비운 사이

'토끼 사범'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한다. 솔직이.. 그 사범의 수련 지도는 별론데 할 수 없지. 그날도 그렇게 수련이 진행되었다.     

 '행공(명상 호흡)' 시간이 되니

전등이 모두 꺼지고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이윽고 회원들은 평소처럼 모두 수련장 바닥에 바로 눕는다.

다들 본인의 수련 급수에 맞는 동작을 취한다. 나도 누워서 기본 동작을 하다가 늘 그랬듯 깜빡 잠이 들었나.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수련장에서

누군가 내 배를 만지고 있다?!

사실 수련 지도자들이 자세를 고쳐주거나 잠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근데 이건 또 모지?! 나의 아랫배(단전)를 그의 손으로 비비적댄다.

내가 손길에 ‘움찔’하자 토끼 사범이 낮게 말하길. "자.. 호흡 내쉬고... 후우~"

수련을 지도하듯 지시하는 그의 말투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둘째 날, ‘행공 시간’이 되니 사범이 기다렸다는 듯 내가 누운 자리로 재빨리 다가오는 폼이.. 좀 싫어진다.     

게다가 이번엔 나의 수련복 상의를 걷어 올리더니 맨살을 본인의 축축한 손으로 쓸어내리는 거다!? 내가 수련복을 여미지도 못하고 당황하는 사이..

떨려오는 그 축축한 손이 나의 가슴까지 어루만진다?! 헉. 그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튀어나온 말.

 "씨.. 발."

나의 작은 속삭임에 당황한

토끼 사범 황급히 호흡을 내쉬라는 둥. 개소리를 지껄인다.     


이런 불쾌한 일을 겪고 화가 치민 나는

50대 중반의 여성 원장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보상'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 그에게 ‘사과'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리자

너무 어이없는 원장의 반응.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서울말로 읽는 듯 목소리를 높여 오히려 나를 다그친다. 마치 내가 센터를 해하려는 '헛소리'라도 한다는 듯.   

"성추행 이라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 마십시오! 그런 일 없습니다! 어디서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십시오!"

#그림에세이  #에세이      


헐. 내가 성추행을 당했다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 생각하면 내가 대항할 텐데

당시 너무 바보 같은 나는 당황해서

그만 물러서고 말았다. ㅜ  

                  

후에 수련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점점 없어졌다.     

언젠가 수련복을 되찾으러 수련장에 가니 마침 토끼사범이 어떤 예쁘장한 신입 여성 회원의 등을 어루만지며 집적거린다.  역시 그의 손길을 불편해하는 여성 회원의 표정.     

'토끼 사범.

재수 없는 건 여전하군.'      

    


엄마는 성묘를 다녀오며      
산에 못 오르는 딸에게 보여줄     
도토리를 한 줌 주워왔다.                
문득 '도토리 키재기'라는 속담이 떠올라 그것들의 키를 재보았다.          
대부분 1.2 cm, 도토리 모자가 벗겨진 건 0.9 cm... 신기하게도 키가 거의 똑같다.

  -‘도토리 키재기' : 견주어 볼

                     '가치' 없음을 이르는 말.     

   

아픔을 이해하는 척

'미끼'를 던져 본인의

이득만 취하려는 당신.


'성추행'에도 센터의 이미지 손상될까      

인정조차 피하고 끝내

 '사과'조차 없던 그들.

                     

하나같이

따질 가치도 없이 역겨운...

 '도토리 키재기'다.

(귀여운 도토리 비유가 넘 아깝네!

더러운 건 그리기 싫어서...;)


‘카~악, 퉤 엣-!

  신발 토끼!!!’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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