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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Oct 14. 2019

‘본인들 노후 걱정이나...ㅆ!’

-남의 일에 그렇게 참견할 여유 있으면 차라리 '봉사단체'를 찾으시던가.

"아유~ 저만하면 괜찮네!

그냥.. 불편한 사람들 중에

웬만한 사람 골라서..  시집이나 보내버려~ 다 살게 돼있다니깐..     


여자 나이 더 먹으면

누가 데려가지도 않아!~ㅎㅎ"        


사실 사고 나기 이전의 나는 막연히

내가 이렇게 미혼으로 남을지 예상 못했다. 그땐 결혼에 관심도 없었으니까.

주변 친구들도 다들 늦게 가는 편이고.


결혼에도 ‘적령기’가 있다는 게

사실인 거 같다. 내가 나이를 먹으니 연애를 할 만한 대상도 점점 좁아져오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기혼 남성과의 연애는 별로다. 그동안 열심히 하던 sns인 'face.. xx.' 활동을 줄인 것도 지저분한 이유가 더 있다.      


Y대 교수라는 그와 sns로 소통하게 되었고 이것저것 배울 게 많겠거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가 나의 책을 구매하고 싶다고 한다. 어느 초겨울이었나?

그가 동네에 와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염색을 안 한 하얀 백발 머리를 짧게 내린 그의 모습이 사진에서 본 것처럼 참 멋지다.      


“교수님은 글도 많이 쓰시고 

제가  쓰면서 배울 점이 많겠어요.

‘멘토 님’으로 모시고 싶네요!”

한데 ‘멘토’로 모시겠다는 나의 말에 그가 단칼에 거절한다. 엥?!


“날 ‘멘토’로 삼아요? ㅋ 왜...?

그냥 간단하게 연애하면 되지~ㅋㅋ"

그러면서  볼을 쓰윽~ 꼬집는다.

  ‘헙...!’ (이건 아닌데..ㅠ)


일본에서 산다는 나보다 네 살 많은

한글교사이자 한식조리사라는 교포가 내 그림이 맘에 든다며 자꾸 말을 걸어왔다. 이러다가 내 그림 좀 파는 거 아냐? 기분이 좋다!

일본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한식 전파사로 참 열심히 사는구나 싶다.


그와 알게 된 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언젠가 그가 잠시 부산에 계신 어머님 생신이라 귀국한다며 부산에 갔다가 서울에 들른다고 한다.


“미긍 님. 음식 뭐 좋아하세요?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와! 그럼 설 오시믄

‘샤브샤브’ 먹을 까요!~”

그렇게 그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준비하던 두 번째 개인전 때문에

외부에 자주 나와 있었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샤브샤브.’를 먹게 되었다. 그를 찬찬히 뜯어보니 생각보다 키가 많이 겸손하지만 안경 쓴 그의 인상이 평범하면서 참 선해 보인다.


샤브샤브 재료를 준비해주는

그의 손길이 참 착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집까지 차로 데려다주어서 참 편하게 집에 왔다.

그렇게 몇 번을 일본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내 얼굴을 보던 그가 언젠가부터 너무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누가 어깨에 손 올리래?’

키 작은 그가 내 어깨를 만지작거릴 때는 좀 별로다. 난 깔끔한 매너가 좋은데.


그러다가 1년 정도 된

어느 날 그가 말한다.

“우리 정식으로 만나볼래요?”

엥? 이건 또 뭐냐.


“저는 할 일도 많고

남자는 사귈 생각이 없는데요.?”

그러자 내 말을 들은 그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근데 언젠가는

내가 좋아질 걸요?”

그가 과연 좋아질까?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그가 그냥 맹숭맹숭하다. 그러던 그를 향한 감정이 깔끔하게 정리된 사건이 생긴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그와 카톡을 주고받던 중 그가 내게 말을 건다.

‘미긍은 아기 좋아하니?’ 엥? 웬 아기? 내가 대꾸했다.

‘아뇨. 내 몸 거두기도 힘든데..

무슨 얘기까지 돌본대요? ㅋ’

그러자 그가 풀이 죽은 듯 하는 말.

‘.. 그럼 난 절대 안 되려나?

사실은 나 초등학생 딸내미 있거든.’  


헐.  나중에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는 일본인 여성과 혼인한 후 그녀가 아이를 낳고 버린 채 도망갔더란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기간 나와 연락하며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써온 그가 왠지 무섭다.


'그래 맞아. 내 또래에 

남자는 없는 거야. 괜히 기대하지도 

관심 갖지 않는 걸로.

그와 연락도 마음도 완전히 끊었다.     

내가 옛날 사람이 되어 선입견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미혼인 이들은 나처럼 신체적인 장애가 있거나 혹은 성격에 장애가 있거나 둘 중 하나더라.


하긴.. 이미 한 번 갔다 온 부류들도 수두룩하고 한 번도 안 간 내가 ‘불량품’인 건가? 나이를 먹을수록 눈이 높아져서는 절대 아니지만 점점 현실적이 되어가니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겁이 먼저 나고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하고나 연애하는 건 별로다.  


내가 알던 지인 중에 많은 나이임에도

‘시험관 아기’에 비용을 들여가며 벌써 네 차례나 도전하던 언니가 있다.


“언니는 매번 돈 들이는 게 아깝지 않나요? 몸도 힘들고..”

그러자 언니가 단숨에 말하길.

“이제는 임신이 기대도 안 돼. 임신이 된다 해도 끝까지 지킬 자신도 없고. 혹시나 나이 더 먹으면 후회할까 봐 하는 거야. 신랑 쪽 가족들은 다 아이를 원하는데 짜증 나 죽겠어. 그냥 최선만 다하는 척 해야지.”


솔직한 속마음을 말하던 그 언니에게서 별다른 카톡 연락이 없는 걸로 보아 이미 포기했을 거 같기도 하다.

당시 나이도 40대 중반 정도였으니.


언니를 알게 된 건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다.

그녀는 시력이 점점 떨어져서 지금은 거의 희미하다고 했다. 그래도 혼자 다닐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혼자서 거동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하다.)


작은 체구에 뭐든 아동복 사이즈의 그녀는 샌들과 운동화도 아동용으로 해외 쇼핑으로 싸게 구매한다고 했다. 초딩 체구에 말하는 것도 애기처럼 ‘~자기, ~왜 그랭~?’ 이러는 게 아마도 네 살 연하와 결혼해서일지도. (아님 말고 ㅋ~)    


원래는 언니도 혼자 살 생각이었다는데

주변에서 하도 시집가라고 권해서 할 수 없이 선을 보게 되었다고 들었다. 하긴 그녀 입장에서 시력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기존에 하던 사무직은 이제 도저히 할 수도 없게 되고 나이만 점점 차오르는 게 불안했을 거 같다.

내가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그렇게 결혼한 거 후회 없어요?” 그러자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그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로 답한다.


“결혼은 해도 후회,

 해도 후회라잖아. 나에게 결혼은 용돈 타서 쓰는 종신보험이양~”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 입장에서 나이 많고 손 없는 본인은 시댁 눈치가 많이 보였을 거다. 또 점점 앞을 못 보게 되니 아이를 갖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무시 못 할 듯.  얘기를 들어보니 신랑이 연애 한 번 안 해본 ‘쑥맥’이란다.


그 언니의 '종신보험' 님이 변함없이 늘 그대로이길 바라며 나도 그녀처럼 ‘종신보험’을 들어야겠다. '연애'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그림과 강연, 글쓰는 일을 더 열심히 도전해서 나이를 먹을수록 가치 있는 내가 되련다.  


그건 그렇고 남의 혼사까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그들의 심사는 절대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할 일 없나? 한가하고 심심하면

‘복지단체’에서 봉사활동이라도 참여하시지 않고.  내가 걱정돼서 말하는 것처럼 내뱉는 당신의 그따위 '참견'이 당사자들에겐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되는지 알기나 할까?


"너 괜히..

‘시집' 같은   생각 하지 마!"

본인도 사위 욕심이 없겠냐 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늘 한결같다.


정말 사랑해서 결혼해도

나중에 사네, 안 사네, 하는 마당에

아무한테나 시집가서 애 낳고 고생하는 건 더 못 본다고. 괜히 나이에 부담 갖고 시집가지 말라 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판단은 참 현명하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마철에 우비를 준비할 수도 있고..

장화나 샌들이 편한 사람도 있어요.


남의 일 신경쓰다가..
본인 입 돌아가는지 모를 수도.

-어떤  신발을 고르던.. 제발 신경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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