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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Oct 17. 2019

‘바람 불어 감사한 날?!’

이번 기회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그림으로 말한다.

"평소 딸을 교육시킬 생각만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 친구가 저보다

더 큰 그릇을 갖고 있었네요.

오히려 제가 직장생활에 쪼들리면서 요렇게

막.. 쪼~꾸만 그릇에만 담고 있고요. ㅎㅎ”

그림 속 커다란 캐릭터인 딸아이,

그 안에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아주 작은 크기의 캐릭터를 자신이라며 그림으로 담는다.

아이의 아빠가 본인의 작품을 설명한다.


 -부모와 장애이해 ‘그림 심리치료’

(금천구내 도서관)          


‘강사님 이걸 어쩌지요?

외부에서 진행하는 행사까지 여럿 겹쳐서..

아무래도 오늘 수업에 참여율이 적어질 거 같아요. 그래도 끝까지 좋은 수업 기대합니다!’

     

오전에 사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강연에 참여하는 참가자 인원이 적어도 너무 낙심하지 말란다.


금천구내의 도서관 4곳을 돌며

 ‘장애이해 강연’과 더불어 그림 그리기 마지막 시간이다.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수업을 이어나갔는데 마지막 수업 참여인원이 저조하다는 말.

     

평소에 진행해온 교육기관에서의 ‘장애이해교육’은 부모들의 참여기회가 없었다.

이번엔 마침 어린아이들과 동행하는 학부모들을 보니 함께 그림 수업에 참여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부모들이 일반적으로 직장의 휴무로 편한 토요일로 선정했다. 그렇게 진행해온 금천구내의 도서관 중 이번에 진행할 ‘가산도서관’이 마지막이다.

사실 다른 곳에 비해 규모도 작은 데다가 공사를 앞둔 상태라 ‘유종의 미’는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도 전에 기운이 쭉~ 빠진다. ‘에 효~;’

#그림에세이 #장애이해 #에세이     


그런데 이게 웬 일!?..

바람 불어 좋은 날, 감사한 날..!


가을 하늘은 부서질 듯 파랗고

이렇게 좋은 가을 날씨에 태풍 영향으로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외부행사에 참여했던 부모와 자녀들이 방향을 돌려 내가 진행하는 강의에 참석했다. 강연 시간 1시를 채우는데도 자리가 몇 명밖에 차지 않아 걱정했는데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적은 인원도 아닌 딱 좋은 30명 미만이다!

!바람 불어 감사한 날!ㅠ’     


딸내미와 함께 온 아이의 아빠가 본인의 작품을 소개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감정들을 그림으로 쏟아내고 있다. 초반에 그의 그림설명을 듣고 내가 조언을 했다.  

“아빠가 직장생활에 묶여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더 자세하게 표현하는 게 어떨까요? 형태가 이미 작게 잡혀서 세밀한 표현은 쉽지 않지만 커다란 딸과 대조되는 이미지로 표현하면 정말 재미있을 거 같아요. 넥타이랑 안경 정도는 또렷이 표현해주는 게.. 그리고 짧은 글로 그림을 설명하는 거지요. ‘어른보다 큰 아이세상’ 이런 표현도 좋겠어요. 옆에 글로 함께 담아보세요!”

“아하~! 네~ 한 번 해볼게요!” 그의 즐거운 그림 작업이 이어진다.    

((동영상 클릭))

(동영상) 부모와 아이의 '장애이해' 그림심리치료

부모와 함께 하는 ‘장애이해, 그림 심리치료’ 수업.

사실 부모들이 이렇게 좋은 작품이 탄생시킬 수 있는지 놀랍다. 반신반의로 시작한 작업 결과물이 정말 기대 이상이다.


‘장애이해’란?

비단 신체의 장애뿐 아니라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 풀어내는 과정이 ‘그림 심리치료’다.

여러 연령의 그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나중에는 노년기 작가님들도 모셔봐야지..

     

힘이 나서 목소리를 한껏 높여 강연을 이어나간다.

‘장애이해’를 위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질문과 참가자들의 답변으로 강연 초반을 채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두를 작가로 만들어주는 시간.

가장 기본적인 도형인 ‘네모, 세모, 동그라미’에 상상력이라는 자신만의 소스를 보태어 나온 작품들.


그중에 지구본에 하트를 가득 채워 ‘우리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제작 과정이 눈에 띈다. 어느 두 딸아이의 엄마의 작품이었는데 초반의 과정에 비해 마무리가 되어가면서 초보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실수를 범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작품에 심취해 ‘하트남발.’이다.

하트를 너무 많이 그려 넣다가 보면 본래의 지구본이라는 메인 캐릭터 이미지가 파묻힌다.

#그림에세이 #장애이해 #에세이

    

우승 작품을 뽑아 미긍 삽화가 들어간 첫 도서 ‘캔 꼭지 기동대’와 ‘미긍 그림 에세이’, 다른 교양도서를 두고 참가자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전에 하던 박수의 크기로는 식구들 많은 참가자들이 유리하기 때문에 내 맘대로 우승을 정하기로 했다. 일단 앞에 나와 본인의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


자신 있게 교단 앞으로 나와 본인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에 모두에게 좋은 음악을 선물하고 싶다는 메시지와 그림을 설명하는 저학년 여자아이의 웃는 모습이 해맑고 싱그럽다.


내가 꼽는 우승 후보로 두 명이 선발되었다.

첫 번째는 예쁜 색감을 살려 당근을 들고 있는 토끼 캐릭터를 만든 사내아이의 엄마와 초반에 ‘젖소’ 캐릭터를 열심히 담던 남자아이다. 내가 작업 초반에 아이에게 말했다.

“젖소는 이름 자체가 ‘졌다’는 의미를 담게 되는데 ‘젖소’보다는 ‘이겼 소’로 황소 이미지에 다양한 승리의 메시지를 담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아이는 바로 얼룩무늬를 황소의 털로 덮고 승리의 메시지를 고민한다. 수정하는 아이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작품을 수정하고 발표를 한다.


 “이 소의 이름은..

몇 가지가 있는데.. ‘누렁이’, ‘이겼소’.. ‘함께라서 고맙소..’입니다. 누렁이는 모두에게 고기와 우유를 줍니다. 농장주인은 이 소가 자랑스럽습니다.”

수줍은 듯 조용히 말하는 초교 저학년 남자아이의 진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관중석이 조용해진다.


 ‘와! 이런 이야기를 바로 지어낼 수 있다니..

요즘 애들 굉장하네!' 역시 그날의 우승은 자신만의 ’ 이겼소 ‘ 캐릭터를 만든 남자아이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캐릭터 만들기 수업이라 그리 깊은 이야기는 담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열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그림에세이 #장애이해 #에세이     


엄마 아빠의 자리에서 그림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그들이 이렇게 그림을 통해 아이와 대화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마음의 조그마한 응어리까지 그림으로 녹여 담아내며 어떠한 글이나 언어로도 대신하지 못한다. 특히나 아이들의 그림은 마음을 투명하게 담아내는 치료효과가 있다. 미술이라는 방법으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까지 그림 그리기가 큰 도움이 된다.   

  

이번 강연 전 찾았던 ‘금나래 도서관’에서 부모와의 그림 수업은 부모와 함께 온 자녀들이 대부분 고학년이어서 부모와의 의견 대립을 그림으로 표출해내는 시간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마친 후 딸이 먼저 앞에 나와서 본인의 그림 발표를 한다.


“엄마가 새벽부터 나한테 잔소리하느라고 걷기 운동도 못 가는 거예요~ ‘공부해라.. 핸드폰 그만해라.. 읔~ 그렇게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못하게 잔소리하니까 진짜 답답해 죽겠어요!” 이러면서 그림으로 자신의 한풀이까지 한다.(이래서 '미술치료'구나..ㅋ)

짧은 단발머리에 오동통하고 귀여운 인상의 초교 5학년 여자아이가 자신의 마음이 담긴 그림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다른 참가자들 모두 즐거워한다. 스마트 폰 하지 마라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그림으로 말하는 딸과 두 딸을 바르게 교육시키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 대조된다. 아이의 엄마가 ‘바통’을 잇는다.


"정말 억울해요~! 변론할 기회를 주세욧~ ㅋㅋㅋ”

두 딸내미와 함께 수업에 참여한 엄마의 그림은 '용자‘다. ‘용감한 자매’의 줄임말이란다.(아.. 그래서 이번 수업에서 딸내미가 '용감하게' 그림으로 엄마를 꾸짖는 거구나..?!)     

-용자: 엄마의 그림 '용감한 자매'

내가 딸아이를 보며 물었다.

"그럼 그 잔소리가 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요?” 나의 질문에 아이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한다.

"물론 저를 위한 건 알죠.

하지만.. 저도 놀고 싶어용~"  

내가 모녀의 ‘화해 점’을 찍어주기로 했다.


 "그러면 그림에서처럼 '잔소리'라고만 표현하지 말고 엄마의 따뜻한 메시지라고 그림을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요?" 나의 대답에 모두 웃는 분위기에 아이의 엄마가 후련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이어서 아이 입장에서도 말을 건넸다.


“딸아이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 엄마가 딸내미를 한 번 믿어주는 게 어떨까요?"

나의 발언에 이번엔 딸내미가 함박웃음이다.

#그림에세이 #장애이해 #에세이     


이렇게 ‘장애이해교육’에 자녀와 그림 그리기 수업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낀다. 평소에 말로 얘기하면서  “너, ~이런 거 하지 마!” 이런 강압적인 이야기도 그림으로 풀어내면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그림으로 마음을 담아 뱉는다는 건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 그림을 그리며 한 번 더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보고 서로 절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부모와의 그림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장애이해교육’이 내가 평소에 느껴온 장애에 대한 편견과 현실을 깨는 자리라면 그림으로 본인의 마음을 풀어내는 수업도 갈등을 풀어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동안 금천구에서 하던 도서관 강연이

반응과 평가가 좋아서 이번엔 강동구에서 이어나가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사람의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도 없는데 이참에..
 부모와 자녀 중간에서 심판이나 볼까? ㅋ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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