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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Oct 20. 2019

‘봉 사마’의 선물

-혼자서는 외출도  어려운 그들과 소통하며 느낀다. ㅠ

“자~ 왼쪽부터...멸치볶음. 시금치, 계란말이,

김치, 두부조림이네요.”

식판에 반찬들이 놓인 순서대로 말한다.


“우아~ 국으로 부대찌개가 나왔어요. 맛있겠다!”

“쥬~디, 매운 냄새가 나. 나 매운 거 못 먹는데?”


“봉 사마~ 국물은 덜 테니까 건더기만 드세요. 부대찌개에 햄이랑 두부도 있고 아주 맛있겠는데?”

나는 봉사마의 오른쪽에 놓인 숟가락에 그의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는 반찬을 듬뿍 떠서

밥 위에 섞는다. 그가 젓가락질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마는 이렇게 숟가락만으로 

반찬과 밥을 뒤섞어 흡입한다.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2007~09)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오늘은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의 영어수업이 있다. 영어 반에 들어오면 각자 맘에 드는 영어 이름을 정해야 한다. 나의 영어 이름은 ‘쥬디.’

내 한글 이름인 ‘주혜’와 비슷하고 발음이 쉬운 ‘쥬디’를 택했다.


‘봉 사마’는 내가 지은 별명인데 당시 일본에서 부는 ‘욘 사마’ 열풍에 힘입어 본명 가운데 글자인 ‘봉’에서 따왔다. 50대 후반의 '봉 사마'는 내 맘대로 그렇게 불리는 걸 무척 즐거워한다.



난 영어 반 반장이다.

영어실력이 좋아서는 아니고 회원들 중 그나마 내 눈이 제일 밝아서다.

여긴 ‘실력’이 아닌,

 ‘시력’이 좋아야 반장이 된다.


‘길안내 도우미’ 없이

외출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회원들 부류도 구별된다. ‘약시’들 중에선 자주 다니는 익숙한 길 정도는 장애물과 걸음수를 외워서 혼자 다니기도 한다.



‘길안내 도우미’는 핸드폰으로 서비스를 호출하는데 미리 도우미를 예약하지 않으면 위치랑 이용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도우미 이용시간에 따라 비용도 추가된다.


반장이 할 일은 회원들이 이동시

앞을 못 보는 이들의 ‘길안내 도우미’가 되는 것부터다.


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 된다.

우린 보통 지하식당에 내려가서 2500원짜리 맛있는 ‘한식 뷔페’를 즐긴다.

반장인 나는 식판에 담긴 음식이 뭔지


순서대로 그들에게 알려준다. 수저를 쥐어주거나 모자란 찬과 물을 챙겨주는 일도 한다. 회원들 대부분이 중년 이상인데 난 어느 반에 들어가든지 가장 어리고 또 그들 중에서 앞을 제일 잘 본다.


그래서 늘 ‘반장’이다ㅋ.



나의 두 눈 모두

시력측정이 어려울 만큼 나쁘다.


대략 시각을 맞춘다고 해도 뇌 손상으로 생긴 '복시 현상'으로 여러개로 또렷이 보인다. 그래서 두 눈을 뜨고 안경을 쓴 채 오래 집중해서 사물을 보면 멀미가 난다.


낯선 계단을 내려갈 때는 어느 게 진짜인지 모르고 발을 헛디뎌 자주 구른다.

반장 일도 몸이 민첩해야 수월하겠지만, 내 다리는 그때의 사고로 오른쪽 무릎과 종아리뼈 부분이 깨지고 탈골된 상태. 게다가 골반도 많이 깨지고 틀어져서 걷는 게 불편하다.


그래서 어떨 땐 몸이 아닌, 말로만 ‘반장 임무’를 대신한다. ㅋ;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작곡가로 활동하는 봉 사마는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한다.

그리고 마비되어 늘 굳어있는 나의 오른손을 안타까워하며 자주 신경 써준다.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외출하지 않고 집에 있으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어...? 봉사마구나..? 웬일이야?..”


영어 수업시간에 내 옆자리에 앉는 봉사마랑 영어로 대화연습을 하다가 친해졌고 반말을 섞어 대화한다.


'쥬~디! 지금 뭐 하고 있어? 너 어디 아프구나? 목소리가 왜 이리 기운이 없지?'


“봉 사마! 내가 몇 마디도 안 했는데 어찌 알아? ㅎ 나 지금 너무 많이 아파.”


'쥬디 시간 내서 우리 매장에 들러라. 내가 침놓고 근육 좀 풀어줄게!'


그는 앞을 못 보는 대신 이렇게 소리에 무척이나 예민하다.



봉사마의 ‘안마시술소’에 가려면...

일단, 지하철 환승역에서 갈아타기 가까운 열차 칸 번호를 미리 알아둬야 한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몇 정거를 가다가 교대 역에서 3호선을 갈아타 신사 역에 내린다.


내 눈은 역 이름을 못 보니까 들리는 안내방송에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신사 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시장으로 이어진다. 과일, 야채를 파는 시장 골목으로 쭉 내려가다가 보면 끝 모퉁이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연립주택 4층에 봉사마의 ‘안마시술소' 가 있다. 간판도 특별한 광고도 없지만 오랜 안마시술 효과로 꽤 유명하다. 입소문으로 고객들이 먼저 찾는 ‘안마시술소.’란다.



가는 길에 찐만두를 포장해서 들고 갔다. 봉사마네 ‘안마시술소’는 살림집과 함께 붙어 있다.

나는 만두를 맛있게 먹는 봉 사마에게 단무지와 물을 챙겨주다가 물었다.


“봉 사마는 언제까지 빛을 느꼈어?”


“빛? 음.. 글쎄? 기억이 안 나. 어렸을 땐 앞을 좀 봤다고 엄마한테 들었는데 이젠 꿈을 꿔도 그냥 어둡기만 하거든. 허허..”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내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치민다.


이렇게 두 개로 보게 된 세상,

눈에 부담스럽기만 한 ‘빛’이 그에게는 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부러운 것이란다.



“우아~! 이거 얼음도 나오나봐?

진짜 신기하다!”


국내에서 얼음 나오는

냉장고가 나오기 전 봉사마네 거실에 얼음 냉장고를 처음 봤다. 사용한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데? 수입품이구나.


몇 년 전 강남의 S병원의

60대의 수간호사가 척추가 틀어지는 희귀 질환으로 좋다는 약과 치료는 다 받아봤는데 효력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봉 사마에게 매일 출장 치료를 받았는데 기적처럼 1년여 만에 몸이 회복되어 다시 걷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에 해외에 있는 그녀의 자녀가 얼음 나오는 냉장고를 선물했다고.


봉 사마에게 그 얘기를 들으니 치료에 더 믿음이 간다. 내 틀어진 몸도 회복될 거 같은 기대가 생긴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이윽고 치료용 침대에 누웠다. 봉사마가 내 오른팔과 다리에 침을 촘촘히 놓는데 누군가가 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저 들어왔어요. 어? 아버지 손님 오셨나 보네?”


“어.. 그때 너도 복지관에서 봤을 거다. ‘쥬디’ 누나야. 몸이 좀 안 좋아서 침놓고 있어. 식탁에 누나가 사 온 만두 있으니까 씻고 나와서 챙겨 먹어라.”


20대 초반, 밝은 인상의 청년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쥬디 누나! 아빠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나는 누운 채로 고개만 까딱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드님이 아빠보다 훨씬 미남이네요~ㅎ 만두를 좀 더 사 올 걸 그랬나 봐.”


그러자 봉사마가 손사래를 친다.

이거면 충분하다고.



“내 아들 처음 보나? 음.. 아까, 쥬디가 ‘빛’을 봤냐고 물었지?

이 녀석이 나의 ‘빛’이야. 눈으로는 빛을


보지 못하지만 저 녀석은 내 마음의 ‘빛’이 되었지.”

그러면서 봉 사마는 오래전 아들이 생긴 얘기를 꺼낸다.


“내가 그때.. 고아원에서 오르간 반주 봉사를 했는데... 이 녀석이 자꾸 나한테만 오더라고.


내 악기들을 신기하다며 만져보는데,

얘가 유치원 다닐 나이였나? 그곳에서 봉사를 계속하면서 얘를 안 보면 자꾸만 생각나고... 정이 들더라고. 결국 큰 결심을 했지.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아들로 입양했어.


마누라는 없어도 얘 때문에 외롭지 않아. 그때 일을 절대로 후회 안 해.”

그러면서 자신을 닮아 작곡에 꽤 소질이 있다며 아들 자랑을 한다.


얼마 후 봉 사마는 내 팔에 놓은 침을 하나씩 뽑으면서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때 있었던 사건도 말했다. 아들이 하교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집에 안 들어왔단다.


너무 걱정이 되고 답답해서 누구의 길안내 도움도 없이 혼자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장애물에 다리가 걸려서 넘어지고 길바닥에 완전히 철퍼덕 뻗었다고. 그때 마침, 그 길을 지나던 순경의 도움을 받아 아들 학교에 찾아갔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던 녀석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때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은 게 어쩌면 본인 눈에 ‘빛’을 되찾은 것보다 더 감사하고 기뻐서 아들을 꼭 끌어안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나에게도 과연 ‘빛’이 있을까?’

조용히 그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나도 ‘빛’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엔 뇌손상으로 ‘아기 지능’으로 퇴화해서 정신적으로 힘든 건 그다지 없었다. 항상 간병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며 여러 차례의 수술과 재활치료 끝에 1년 반 만에 드디어 기적적으로 걷게 되었다.


하지만 몸이 회복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평범한 직장생활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내가 할 수 없는 걸 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괴롭다. 내가 꼭 살아야 하나?



‘사고 났을 때... 그때 

그냥 죽었어야 했어.

도대체..  살아난 거야!? 왜, 왜?!’



나를 이리도 힘들게 만든

음주 운전자를 원망하며 삶의 이유까지 잊게 된다.


그랬던 내가 우연히 알게 된

봉 사마를 통해 ‘감사’라는 걸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곳 복지관에서 조금씩 나만의 ‘빛’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를 시작한 초반에
어떤 친구는 ‘시각장애’에 마비되는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나를 ‘미친 긍정’이라며 비웃었다.

그녀말처럼 ‘미친 긍정’을 아름다운 긍정 ‘미긍’으로 바꿔 시작한 나의 그림은 다른 작가들처럼 형태가 정확하고 빠르진 못해도 그림에 ‘절실함’과 '진정성'이 담긴다.


그래서인지 내 그림은

긍정이 필요한 곳에서 가치 있게 쓰이게 되었다.

‘장애인 고용공단’, ‘발달장애 지원센터’, ‘푸르메 어린이 재활병원’, ‘샘물 호스피스 병원’, '척수장애센터' 등에서.


요즘에는 교육기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아픔을 딛고 일어난 나의 이야기와 장애를 대하는 올바른 시선을 강연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를 멋진 작가로 만드는 수업이 이어지는데 그림실습을 할 때마다

나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뇌 손상’으로 말할 때 호흡이 버겁고

발음을 하기에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그것도 강연으로 차츰 개선되고 있다.



    ‘빛’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을 만나 '감사'를 배우게 되고

나보다 더 어두운 곳을 돌아본다.

봉 사마에게서 받은

 아주 특별한 ‘선물’ 덕분에.

-봉사마의 가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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