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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Dec 31. 2019

#장애극복_이해: 박사 말고 ‘도사?!’

-학력과 비례해서 '장애이해' 강사료가 올라간다고?!

     “아유. 답답해라!
미긍 작가도 이제 운전해야지!
 강연 다닐 때마다 언제까지
부모님 신세를 질 생각?!
ㅋㅋ”               

고정욱 작가(겸 박사)가 나에게 하던 조언.     

본인은 휠체어를 타는 불편한 몸으로도

운전면허를 따서 지방의 교육기관

강연까지 휩쓴단다.     


‘고 박사 당신처럼 나도
 다리만 불편했으면 좋겠다!’
   

내 눈으로는

교통표지판을 볼 수 없다.     

이젠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          


- ‘장애이해 강연’ 가족 나들이 (19.12.27)                                   




새벽 5시가 되기 전

 잠에서 깨었다.

     

겨울에 접어드는 요즘이라

 새벽이 되어도 무척이나 어둡다.

해가 짧아져서 빛이 짧게 머무는 하루는

늦게 시작되어 너무나 빨리 저문다.  

   

잠에서 늦게 깰까 봐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역시나 ‘긴장’이야말로 최고의 ‘기상 알람’이다.

    

오늘은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강연이 잡혔다.


 최근 장애이해 강연 제의를 받았는데

전교생이 고작 130명밖에 안 되는

지방의 작은 초등학교다.

 

1교시가 9시 10분 시작이라

 새벽 6시부터 온 가족이 서둘렀다.     


소도시의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외부강사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나 서울권의 강사들은 지방의 학교까지

 왕복시간을 비롯해서 컨디션 회복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운전면허도 없고 ktx나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나는

가족들에게 기댈 수밖에.   

            

“엄마, 오늘
감기 좀 괜찮아요?”  
   

요즘 감기 기운으로

안 좋아진 컨디션인데

 딸의 일이라고 새벽부터

이것저것 바쁘게 챙기는 울 엄마.

 아빠는 학교까지의 이동

거리 시간을 체크한다.


 해가 뜨기 전 우리 일행은

아빠 차에 올랐다.   

       

새벽에 더 서두르는 이유는

그래야 차가 막히지 않아

이동이 수월해지기 때문.


몇 십분 서두르는 것만으로도

도착시간이 판이하니.   

  

그렇게 2,30분가량 새벽을 가르던 차가

터널에 접어들고 이내 커피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렇게 이제 차에 작은 카페가 열린다.  

   

오늘처럼 이동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엄마는 늘 보온병과 커피,

작은 쟁반 등을 챙겨 온다.


그리고 쟁반을 무릎에 얹고 

종이컵에 커피가 쪼르르...

    

우린 커피를 마시기 전

차내를 가득 채운 커피 향을 찬찬히 음미한다.


차가 들썩이지 않고

서서히 주행할 때면 따뜻한 커피 한 모금씩 홀짝.               

역시 바리스타 ‘이 마담’ 최고!    

 

조금 더 가다가 귤과 사과,

파프리카 등을 먹으면 지루할 틈 없다.


         

차량은 1시간 40분가량을

달려서 학교에 도착했다.

 양평 ‘개군 초등학교’다.

나를 강연에 초대한 정 교사가

주차장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평소에 강연 시간이

30분 정도 남으면교장 교감 자리에 들러서

인사를 하는데 오늘은 좀 다르다.


우린 다시 학교 정문으로 안내되었다.

 사실 차량으로 정문을 들어설 때는

경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장.     

“안녕하세요?
오늘 장애이해 강연으로 온
 미긍입니다.”
    

내 인사에 그가

웃으며 말한다.

“먼 거리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오늘..
잘 부탁합니다! 허허..”   
       

친근한 그의 웃음.

서리가 내린 부쩍 추워진 이곳 날씨에도

 교장실이 아닌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는 멋진 교장이다.

 내가 준비해온 파일과 엽서 등을

드리고 이내 교실로 향했다.  


                        

수업을 할 과학실에 들어서니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창에

따뜻한 분위기다.


 아빠는 컴퓨터에 ppt자료를 연결하고

 동영상 등의 자료를 한 번씩 점검한다.


1,2교시는 6학년 아이들의 수업이다.

 

5학년이 30명, 6학년은 18명.

한 학년에 한 반씩이란다.    

 

6학년은 주제를 잡아주기로 했다.

 그나마 생각의 영역을 지정해주어야  

그림이 잘 나온다.


수도권에서는 학교 수업 이후

 방과 후 받아야 할 학원 뺑뺑이 때문일까?

 그림에 상상력이 없어진다.   


-4분 33초/강연 동영상

 화면 클릭))  

다행히 이 곳 6학년 아이들은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 과정을

재미있게 소화했다.          


“5학년 아이들 대부분 남학생이라..

 많이 소란스러워요. 수업에 집중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호호호..”  

   

1,2교시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

 정 교사가 차와 간식을 내오며 하는 말.

             

잠시 후 5학년 아이들이

까맣게 몰려들어왔다.


대부분이 남학생이군. 이렇게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만날 때 하는

나만의 특별한 무기가 있다.   

   

“저는 사고로 입게 된 시각장애로..

여러분들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요.     

대신 소리에는 굉장히 예민하지요.

 모두들.. 저에게 집중..!

 저의 질문에 대답을 잘해주시면

 상품이 나갑니다!”


이내 떠드는 소음들은

점점 잦아들어 조용해진다.

상품은 내가 직접 만들어온

미긍 엽서들이다.  

             

“선생님, 폭력적인 거
그려도 돼요?”   
  

아이들 중 누군가가 하는 말.    

그나마 그림을 그리기 전

먼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순진하다고 할까?


아이들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웹 툰'에 많이 노출되어있으니.      

내가 딱 잘라 대답했다.  

   

“아니요.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폭력적인 그림은
절대 안 돼요!”    

                 

우아..

글씨 예쁜  보면 알아.

이 그림 그 언니 거.. 맞지? 힛”


신기하게도 다른 학년인데

글씨체만 보고서 대번에 알아챈다.


 한 학년에 한 반씩이니

졸업할 때까지 반도 그대로라고.      


학우 중 발달장애 친구도 2명 있었는데

 별로 개의치 않고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장애인, 비장애인 차별 없이 모두 함께.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앞에 나와

 모두에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았다.


 반마다 그림에

본인만의 생각을 잘 담긴

재미있는 작품 3명을 뽑아 내가 마련한 상품

 미긍 파일을 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얼. 역시 상품 앞에

   도전자들이 꽤 많다.’          


어떤 여학생은 자신을

엎질러진 우유란다.아무리 쏟아져도

다시 일어날 거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안경을 쓴 남학생은

자신의 감정을 산에 비유했다.

 안 좋은 기분을 붉은 산으로 파란산은 보통의 기분, 녹색을 좋은 기분의 산이라는 설명.

    

사실 이 그림에

자신의 캐릭터에 표정과 상황들을

더 자세히 묘사한다면

 ‘그림 심리치료’가 될 텐데 좀 아쉽다.     


** 그래도 오늘의 베스트로 선정! ㅋ   

                 

-산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그림 심리치료)

모든 수업을 마치고 나니

힘은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지방의 교육기관이라고 해도

교통비 지급은 고속버스나

ktx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영수증을 납부해야 한다.

혼자 이동할 수 없는 나는 해당 무.      


사실 대부분의 장애인강사들이

혼자서는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을 텐데

차량으로 이동하면 주유 비용 정도는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건강하게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나 질병으로장애를 입는 경우가 89%나 된다는 자료를 찾아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정신이 바로 서있고

 절실한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극복해낼 수 있다.     


사고로 마비되는 손과

시각장애를 입게 되고..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며 여러 번의 시련과 도전 끝에

지금 이렇게 그림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나의 경험이 그걸 증명한다.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니까.


 아무리 지방에

작은 교육기관이라고 해도

찾아다니며 장애이해교육을 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이번에 아이에게 선물받은 작품 ^ ^


몇 해 전 장애이해 강연 초입인 나는

 고정욱 박사가 시간상 하지 못하는 강연을

소개받았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강연자의 학력에 비례해서 강연료가 지급된다는 걸.


 강사비가 얼마 안 되는 내 사정이 답답했는지

 또 고 박사의 조언이 이어진다.     


“허. 강연료가 고작...
그것밖에..? 미긍 작가는 일단
대학원부터 수료해서 차근차근
 학력부터 밟아가는 게 나을 듯.”
     

물론 나를 위한 조언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작은 활자는 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뇌손상으로 기억도 더뎌졌는데

... 어쩔? 숨이 턱 막힌다.   

  

무엇보다 이제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순위가 매겨졌다.

단지 몸값을 높이기 위해 고학력 취득보다

 나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곳에 쓰임 받고 싶다.

                

“부모님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네요.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려는 우리 일행을 배웅하며

 정 교사가 말한다. 그러자 엄마가 웃으며 대답했다.  

   

“수고는요 뭘~ 부모입장에서는

강연에 쓰임 받는 게 감사하지요.      

미긍이 우리를 ‘효도관광’

시켜주는 거래요.. 호호~"  

             

‘역시 미긍 엄마다.
강연료 더 받겠다고 ‘박사학위’는
 안 따도 되는 걸로.

그동안의 경험과 노력으로 이미
 ‘도사 학위’는 수료했으니.ㅋ~’     


- 나는야 ‘미긍 도사’(2019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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