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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Dec 24. 2019

#장애극복_그림에세이 '휘파람새 13년 만의 귀향'

-그때 사고로 영영.. 죽어버린 줄 알았다. 나만의 휘파람새.

              “저 영감보다 울 주혜가 훨씬 낫겠다!     

네가 함 불어봐~ㅋ”          

주말 아침 주로 중 장년층이 출연하는

 방송을 보던 엄마가 나를 부른다.

휘파람으로 여러 단체에서 활약한다는

할아버지가 나왔다.          

방청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고

 휘파람을 열심히 불어댄다.


'휘파람 소리를

                      떨면서 기교를 부리는군.                     

맑은 내 음색이

               훨~ 낫다!ㅋ’               

    -휘파람새 13년 만의 귀향 (2015)       


                      

유년시절의 나는

주말마다 외화시리즈를 꼭 챙겨봤다.

 지금도 여러 장면들이 기억이 남아있다.          


외계 괴물들이 등장하는 ‘V’라든지

‘600만 달러의 사나이’, ‘A특공대’, ‘자동차 키트’ 등.

그걸 챙겨보면서도 어린 나는

 그들이 원래 영어를 한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성우가 한국어로 더빙한다는 걸

 후에 알게 됐으니 말이다.   

            

친오빠는 당시 유행하던

 ‘맥가이버 칼’을 아빠에게

 선물 받아 나에게 자랑했다.

 나는 그걸 사용할 줄 몰라

그냥 바라만 보아야 했다.  

             

하지만

오빠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하는

 나만의 개인기가 있다.

 외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작전을 수행할 때나

혼자 무언가를 할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그건 바로 ‘휘파람’이다. 식구들 중 누구도

 휘파람을 불 줄 모른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서

 그걸 배운 기억도 전혀 없는데

신기하게도 유년시절부터

 나는 휘파람을 곧잘 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화 시리즈에서

 악당을 물리칠 때 멋지게 불던 남자 주인공을

 감명 깊게 보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거 같다.


                 

사고로 뇌를 다치고 나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졌다.


 ‘뇌’가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의 활동을

주관한다는 걸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일단 누군가와 대화만 하더라도

 길게 말하면서 호흡을 함께 내뱉기에는

 버거워서 짤막하게 끊어서 말해야 한다.


 하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의 연결도 쉽지 않았으니

 당시 내 주변에서는 좀 답답했을 거다.   

       

전에는 가끔 귀에 익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면

 가사를 몰라도 음감을 기억하기에

나오던 휘파람.

 사고 후 무심코 불어보니..     

“후~ 우.. 후 우우~!”

     

그렇게 입 속에서

빈 바람 소리만 휭~ 맴돈다.

이제 휘파람도 못 불게 됐구나.

좀 아쉽고 씁쓸하다.

휘파람은 그렇게 기억에 묻혔다.  

                        

나의 첫 조카가 태어났다.

조카의 이름은 ‘루아’다. 여자아이인데

 루아가 '돌'이 될 무렵 너무 사랑스러워서

 품에 안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불편해진 오른손으로는

 힘이 없어져서 아이를 안아보기란 큰 숙제다.   

  

잘 놀다가도 내가 안으면

이내 칭얼대는 걸 보니

아이도 자세가 편치 않은가 보다.   

       

 '너도 불편하구나.

나도 많이 힘든데. ..'               

안아주는 거 말고

다른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재미있는 소리를 내며

놀아주기로 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를

내보니 그제야 루아가 안아줄 때보다

 더 방긋방긋 잘 웃는다.


나도 신나서 더 새로운 소리를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다.   

                      

“루아 야~ 요기 요기~    
  까꿍~ 휘이이~ 익~♬


휘파람이 나온다!

너무 깜짝 놀랐다!

 휘파람을 불게 된 게

무슨 큰 대수냐 할지 모르지만

사라진 나의 감각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고 후 오른쪽에는

눈썹도 나지 않았다.

근데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몇 년 전부터

 다시 까맣게 돋아난다.    

 

뇌신경을 다치면서

 ‘청각’, ‘촉각’, ‘후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은 바보가 됐는데

휘파람이 살아나다니 신기하다.


마비된 오른손으로

재활치료를 하다가

이렇게 그림작가가 되었고

아기 말투였던 목소리도

발음이 정확하진 않아도

성인 여성 목소리로 조금씩 돌아왔다.


 이제 드디어 휘파람이

13년 만에 돌아왔구나! 아싸~   

        

돌아온 휘파람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살아 숨 쉬는 이미지가 뭐가 있을까?

  아.. ‘휘파람새’로 이미지 해볼까..?     


휘파람에 대한 자료를

확대해서 검색해보았다.

새의 울음소리가 휘파람 소리와 흡사해서

 붙여진 이름 ‘휘파람새.’


동영상으로

울음소리를 들어보니

 ‘숲’에 관련 효과음에

자주 들었던 소리다.


국내 서식 개체들은 특이하게도

 지역에 따라 울음소리도 다르다고 한다.

밤에는 ‘소쩍새’라 불리기도 한다고.         

이제 그림으로 휘파람새를 불러볼까?    

       

내가 일러스트 학원을 다닐 때

 원생들은 일반적으로 사용이 간편하고

값이 저렴한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


아크릴물감은

물감의 원색보다

몇 가지 색상을 붓으로

 빠르게 혼합해서 표현해야 한다.


나도 초반엔 그들을 따라해 보았다.

하지만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 탓에

붓놀림이 더뎌서 물감이 금방 굳어버린다.

물감이 아깝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낼 재간은 없구나. 젠장!ㅜ

         

결국 여러 개로 보이는

 나의 시각장애로 바라보는 ‘휘파람새’를

오랜 기간 수채화 작업으로 표현했다.


 13년 만에 되찾은 휘파람을

'휘파람새의 귀향'으로 담는다.     

그와 더불어 나의 아픈 기억들이 그림으로 담긴다.


단순히 시각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길을 기억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새로 이사한 집을 벗어나면

점점 깜깜해지던 나의 기억력.

이제 사고 나기 전의 기억들은


 하나하나 잔인할 만큼

너무 선명하게 돌아왔다.


그래서 기억을 못 하게 된 현실을

 더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새로 이사한 집을 벗어나면

점점 깜깜해지던 나의 '단기 기억상실.'


시각장애 때문이 아니라

길을 기억해내는 것도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바보가 된다.    

 

이젠 오르막길은

그런대로 잘 다니게 되었지만

내리막이 더 쉽지 않다.


어르신들이 내리막을 내려가며

 "아휴~ 되다!” 하는 심정을

조금 이해가 된다는. ㅜ


 탈골된 오른쪽 무릎과

그 아래 종아리뼈가 내려갈 때

 힘이 가해지면 더욱 아려온다.

내리막길은

늘 나를 긴장시킨다.

지금까지도.   

    

나중에는 잃어버린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요령도 생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쪽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위치를 물으면 된다.


늘 지루하고..

길을 잃어 헤매던 나의 막막한 기억들은

나중에 작품으로 나온다.


 우린 기억을 못 하는 걸

 '형광등이 나갔다'는 표현을 한다.

 형광등이 나갔어요!

                                  나의 '단기 기억상실.'                               


   

  형광등                                  

     

              -                



‘깜빡깜빡 깜깜...’     

치매 걸린 할배, 할미들은     

형광등이 나간대요.          


‘깜빡깜빡 깜깜...’     

할미들은 어여쁜 새댁이 되고,     

할배들은 씩씩한 청년이 되죠.               


‘깜빡깜빡 깜깜...’     

나의 형광등이 나갔어요.     

아직 나이도 어린데 어째.     


사고는 나를 깜빡이

                형광등으로 만들었죠.               


‘깜빡깜빡 깜깜...’     

새로 이사 간 집은 기억이 안 나     

하루 종일 돌고 또 돌고..          

‘헥헥...’     

          

그래도 좋은 점이 있어요.          

아픈 기억도 ‘깜빡깜빡 깜깜...’     

기억에서 사라지니 

~다행.  

                  

좋은 아이디어도 깜빡,     

그림 소재도  깜빡깜빡.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래요.   

       


이젠 도전거리가 많고

 깜빡이지 않는 밝은 형광등           

새로운 내가 되었으니.

              



나에게 생긴 어려움들을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처럼 '중도장애'로 힘든 이들이 있다면..

적극 권하고 싶다.


본인의 아픔을 인정하고

전처럼 밖으로 나오라고.



'나' : 나와 함께     

'가' : 가슴을 활짝 펴고 나가자!

'세' : 세상 밖으로.

                  

휘파람새를 비롯

두 번째 개인전(2016) 준비를 하며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작품들을 채워갔다.


나의 두 번째 개인전 '나 가 세' 전이다.

           

'나가세 내부(2016)


과거의 나처럼 나약해진 이들과

함께 하는 소통의 전시를 계획했다.

 그리고 전시 중간에 '나가세 쇼'를 진행했다.


조철웅 '인형 복화술' 쇼와 박병준 마술쇼,

그리고 나의 ‘장애인식개선’의 강연으로 구성되었다.

행사에 어린이 관객들도

부모들과 많이 왔고


휠체어 장애인 관객들과 비장애인들

 

모두 함께 공감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때 sns 활동으로

다양한 인맥들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몇 살

위라는 인형 같은 외모의

화영님을 알게 된 것도

그 sns를 통해서다.


꽃으로 여러 작품을

만드는 ‘플로리스트’라는

 그녀가 나의 개인전을 찾았다.

               

“안녕.. 하세요? 미긍 작가님,
정말 너무 반가워요!”
    

그녀가 너무 고마워서

 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인

인맥에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저의 어머니예요. 사실..     

다음 주에 큰 수술을 앞두고 계신데..     

제가 미긍 님께 좋은 에너지를 받고 싶어서     

 여기로 모시고 나왔네요.”   

  

어머님의 표정을 살펴보니

 오기 싫은데 딸에게 억지로 이끌려온 모양이다.

 짧은 파마머리에 동글동글 통통한 귀여운 인상인데

어쩐지 어둡고 창백하니 무표정이다.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마음이 심란할까 걱정이 된다.

그렇게 모녀만을 위한

나의 전시 에스코트가 시작되었다.   

            

전시된 작품들마다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그들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림설명을 듣던 어머님이

점점 밝아지고

드디어 얼굴에 웃음이 돈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놓였다.          

모녀는 내가 다시 불게 된 휘파람을 담은 작품

 ‘휘파람새 13년 만의 귀향’에

 관심을 갖는다.

-휘파람새의 귀향

결국 수술을 앞둔

어머님께 힘이 될 거라며

 따님이 그림을 구매해서

어머님께 선물한다.

  

         

전시가 끝나고


 정리를 마친 후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 글씨 편지와 함께 '휘파람새'를 분양 보낸다.

 

나에게 13년 만에 돌아온 휘파람새가


어머님의 건강도 되찾아 드릴 거라고.

           

'.. 다 잘 될 거예요!
                    미긍이 잘 해냈듯이.'                   


다음날 잘 받았다는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미긍님의 손 편지를

 소리 내서 읽다가..   

눈물을 한 방울 흘리시네요.


자식 같은 작품들이

 미긍님 곁을 떠나 섭섭하실 텐데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휘파람새를

 '양자' 삼아 고이고이

잘 키워나가겠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힘든 이들의 마음까지 

두루 살피는 작품 활동


 늘 응원할게요!♡'  

     

   

코끝이 찡해온다.     

휘파람새야. 드디어 둥지를

제대로 잘 틀었구나!          



근데

그 휘파람새...


 '양자' 아니고

  '양녀'(암컷)래요~!ㅋ  

   

         

  -미긍과 '나가세 展'(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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