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라키오가 될 수 있어. 꼬마였을 적 마음속 비밀 상자는 내 키보다 한참 작아서 그보다 큰 비밀들은 잘 담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만의 가장 큰 비밀을 자주 발설하곤 했고, 이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으레 겪게 되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내 비밀을 들은 사람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어떻게?라고 물으면, 나는 냉큼 다가가 작고 따뜻해서 보드랍기만한 숨을 담아 은밀한 밀고자로서 귓가에 속살댔다. 우리 아빠랑 나는 합치면 공룡이 돼. 그래도 여전히 미덥지 않은 얼굴을 내비치면 나는 큰 소리로 아빠- 하고 아버지를 불렀다. 언제나 내 근처에 계셨을 아버지가 너른 품을 벌리며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물으시면 나는 보란 듯이 준비 자세를 취했다. 양팔을 높게 올리고 두 주먹을 *잼잼. 반짝이는 내 눈과 쭉 뻗어 치켜든 팔을 보시고는 단박에 큰 손으로 겨드랑이 아래쪽을 잡아 쑤욱 들어 올려주셨다.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나는 아버지 어깨 위. 꼬마의 키로서는 닿지 못했을 나무들을 마음껏 만지다 보면, 부푸는 마음을 따라 기다란 목과 커다란 몸, 긴 꼬리가 자라난다. 올려다보기만 했던 높고 거대했던 세상은 공룡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면 다 작았다. 아버지의 왼손과 내 왼손, 아버지의 오른손과 내 오른손을 맞잡고 발걸음을 내디디면 쿠웅 쿠웅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다시 눈을 떠보면 공룡은 온데간데없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어 보지 못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빠르게 자랐다. 그의 비밀상자는 충분히 크고 견고해서 가끔은 말하지 못할 진실들도 담겼다. 남들 눈에 가여워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평범함을 덕지덕지 몸에 발라 꾸며내던 청소년기를 지나 허기진 20대가 되었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훔쳐먹는 것이라, 공허함을 채우려 허겁지겁 주워 삼켰던 장면. 아버지와 어린 딸. 태어나면 마주하게 되는 햇살처럼 당연했을 사랑. 영원히 갖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나는 하릴없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먹먹하게 욱여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꼭꼭 씹어 삼킨 장면들은 해상도가 높아 가끔 꿈에 나오기도 했다. 깨고 나면 잠시동안은 내 것이었던 기분이 든다. 사랑받고 자란 건 티가 난다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티가 날까. 훔쳐 먹은 마음들은 진짜보다 가벼워서 나는 속절없이 흔들거리고. 달고 달아서 더 가짜 같아 허기가 지고.
*잼잼 : 죔죔이 표준어이나 이 글에서는 잼잼으로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