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토스트

그는 수더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우연히 혼자 가게 된 아쿠아리움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동물들과 친구처럼 이야기하며 투명 유리 너머에서 즐겁게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내 주관적인 감상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반짝반짝했다. 그와 대화 한마디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여러 번 아쿠아리움을 갔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지 마주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날도 있었다. 어느 날 펭귄 먹이 주기 시간에 나온 그를 발견하고 관객들이 아무도 집중하지 않는 틈을 노렸다가 연락처를 적은 포스트잇을 그가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다. 갑자기 유리 가까이 다가오는 관객에 놀랐을까, 나를 보다가 포스트잇에 시선이 머무른 그와 눈이 잠시 마주쳤다. 가슴 언저리에서 시작한 불이 화르르 피부를 타고 올라와 얼굴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나는 아쿠아리움을 도망치듯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멋없는 고백 방식에 그냥 이상한 관객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냥 안 하는 게 나았을 거야 하는 마음에 피어오르는 후회와 한번 더 아쿠아리움에 가볼까 하는 망설임 사이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왔다. 펭귄 보러 올래요? 문자를 받고 바로 다음날 그를 보러 갔고,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고 함께 씩 웃어주었다. 몇 번의 만남 뒤에 우리는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긴 연애기간 동안 그는 우리의 관계에 충실했다. 그와의 데이트는 시간이 지나도 소홀해지지 않고 한결같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채식주의자라는 그를 배려하여 데이트 코스는 한정되었지만 그 모든 번거로움이 그와의 사랑을 키워나가는데 장애물이지는 않았다. 외식대신 집 데이트를 더 많이 하며 그의 집에서 그가 한 요리를 먹는 것은 우리 데이트의 단골 코스였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이가 들어갔다. 아니, 그는 사실 나이가 들지는 않았다. 8년이라는 꽤 긴 시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처음 모습 그대로로 보였다. 그는 나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늘 듣게 되었다. 그것 또한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여느 때처럼 집 데이트를 즐기던 중 그가 씻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가 놓고 간 전화기가 매섭게 울려대기에 나는 그의 전화기를 전해주려 노크 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뿔싸, 그는 노크 없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문을 열고 욕조 안 그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작은 비늘로 촘촘히 반짝거리는 피부가 보였고 그의 허리 아래로는 다리가 아닌 거대한 물고기의 형태였다. 급하게 몸을 일으킨 그로 인해 긴 꼬리 끝의 지느러미가 출렁대는 물속에서 흔들거렸다. 침묵이 잠시 흐르다가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세면대에 두고 욕실을 나갔다. 나는 어쩌면 그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가끔 아쿠아리움의 생물들과 교감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듯 보였고, 물에 젖은 피부는 유독 반짝거렸으며, 화장실에 노크 없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니까. 하지만 반인반어는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종류의 비밀이었고, 이해와 공감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그와 나의 간극이었다. 우리는 마치 약속한 듯이 이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멀어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별 방법이었다. 그렇게 이별한 우리는 자연스레 각자의 길을 갔다.


주말에 하릴없이 혼자 놀러 간 한강 공원에서 노을빛에 생긴 윤슬이 물결을 따라 모양이 계속 바뀌는 걸 멍하니 보다 그날의 욕조 안에서 보았던 그의 반짝이는 피부와 지느러미가 떠올랐다. 그리고 비늘이 나란히 누워있는 그의 피부 같던, 그가 늘 해주는 물고기 비늘 모양처럼 사과를 가지런히 올린 토스트. 몇 년간 연락하지 않았던 그의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미련은 아닌데, 사과 토스트에 사과 말고 뭐 들어갔어?’ 그의 첫 연락을 기다리던 때처럼 지루한 일주일이 지났고 답장이 왔다. ‘ 내 눈물 한 방울. 인어의 눈물은 늙지 않게 해 준대. 건강하게 영원하자고 한 방울씩.’ 어이없는 그의 말에 눈물은 어떻게 흘려서 넣었을까 싶어 희미해진 그와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데이트마다 그는 이상한 순간에 종종 눈물지었는데, 이유는 늘 하나였던 기억이 났다. 영원하지 못할 지금이 아름답고 슬퍼서. 영원했으면 해서. 그는 지독히도 나와의 영원을 꿈꿨나 보다. 바보 같이.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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