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단상들

Farewell-! Farewell-!

묵은 인연들을 보내주는 한 주였다. 그동안 내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놔주었다. 꽉 쥔 손을 펴보니 손톱자국이 나 있는 듯했다. 들여다보니 내가 움켜쥐고 있던 건 끝까지 버리지 못한 기대감 아니면 희망. 다 놓쳐버려서 이미 뻥 뚫려있던 자리를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가둬두느라 여태껏 나를 아프게 했다.


친구는 너무 어렵다. 나를 좋아하는지, 나랑 같은 마음과 무게인지 잘 보이지가 않는다. 시험기간이 끝나고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시험 뒤풀이로 삼삼오오 놀러 나가는 아이들 중, 나와 놀고 싶어 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을 때부터였을까. 어디에도 끼지 못해 점심 먹을 이가 없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밥을 굶어봐서일까. 아니면 그런 고민만 하다가 어른이 되어서일까. 누군가 다가와주기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태도와 먼저 말도 못 거는 어린아이의 서성이는 마음으로 웃자라, 그간 연락하지 못한 이가 많다. 관계의 시소에서 내쪽으로 잔뜩 기울어진 걸 깨달았을 때, 나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가버리고 이미 반대편이 비어있을 때. 그걸 견딜 수 없어서 용기 내어 연락하기보다는 ‘나는 원래 친구가 적어’라고 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들어간 옛날 인스타 계정에서 대학원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봤다.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어디에 살고. 나 혼자 두드리는 관계는 싫지, 하는 마음에 계정을 삭제할까 하다가 여행 다녔던 기록이 아까워서 두었다. 대신 프로필에 ‘나의 소식이 궁금해서 들어왔다면, 나에게 직접 연락해 주세요’하는 말을 남겼다. 아마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을 것이다. 여태 그랬듯이.


왜 나는 늘 어느 무리이든 겉도는 사람일까에 대한 탓을 해본 적도 있다. 친구들이 ‘네가 소식이 제일 느리다. 너만 알면 사람들 다 아는 거다.’라는 말을 늘 들어왔다. 아니 그보다 왜 나만 마지막에 알려줬었니 얘들아. 나이가 드니 이제야 2,3명 정도의 소수집단에서만 내 마음이 편하다는 것과,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높은 사람은 어울리기 힘들어한다는 것 정도는 자연스레 깨쳤다. 사실은 그냥 안 맞는 신발은 자주 안 신게 되는 건데. 어릴 때는 조바심만 났다. 맞지 않는 사람과 건강하게 멀어지는 법만 배우면 될 것 같다.


래서 인간 관계에서 ‘이해’라는 단어에 집착해 왔다. 내가 가진 인간관계에서의 단점을 모조리 상쇄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것들은 나를 불안하게 하니까.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은 날 망설이게 해서. 요즘 거절 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누가 나에게 거절을 못해서 다 사귀는 거 아니냐는 뼈 있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면 불안하니까 그저 방어기제처럼 날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의심할 필요 없는 마음이 좋다. 거절은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거절을 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의심투성이이다. 망설이다 보면 또 거절로부터 나는 도망치고 선택의 책임감에 울며 불며 산다. 모르는 건 견딜 수 없다. 모두 나에게 올 때는 무슨 마음으로 다가오는지 말을 거는지 이마에 크게 써주라.


펴진 손바닥에 이제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움켜쥘 힘이 생긴 것도 같다. 마음이 조금 건강해진 걸까. 무언가를 집어 들어 뜯고 만져야만 직성이 풀리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바보같이 막연한 희망만 가득.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늦깍이 성장통만 욱신욱신 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