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원이라는 단어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영원에 대해 누구나 소망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영원을 소망해 본 적이 없다. 내 첫 영원을 떠올린다. 그때의 어린 나는 지독히도 깨달아버렸다. 영원 따위 영원히 없을 거란걸. 그래서 영원을 말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이, 그 짧은 단어 하나가,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알지도- 못할 그것이 너무 무거웠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그냥 웃었던가.
나에겐 영영이란 단어가 더 알 것 같다. 사실 알 것 같다기보다는 영영이 어울리는 말들을 사랑한다. 영영은 사전에 찾아보면 그 예시가 부정과 함께 쓰일 때가 많다. 길다, 오래도록, 영원히를 말하는 길 영자를 두 번이나 쓰는데,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는 그 뜻이 '영원히 언제까지나'라고 쓰여있으면서. 예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 '영영 잊히지 않는다', '영영 헤어졌다'고 적혀있다. 영원함을 뜻에 담았지만 결국 영영은 알고 있다, 모든 게 영원하지 못할걸. 그래서 영영이 좋았다. 길게 늘어뜨려 여엉여엉하고 말하다 보면 길고 긴 미래에 닿을 것 같다가 꼭 울음같이 끝나는 게.
이제는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을 이해하려 하고, 영영 사랑하지 못할 것을 사랑하려 하고, 영영 부르지 못할 것을 부르고, 영원히 언제까지나 닿지 않을 무언가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인생일까. 영영. 그러나 그 노력은 인생을 길게, 아주 길게 늘여보면 다 0에 수렴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영영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모두 다 영영 옆에 있어줬으면. 영영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