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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시 Dec 06. 2017

창 밖이 바뀌는 순간

같은 곳을 향하는 시선, 그 너머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창밖이 캄캄한 어둠이 아닌 파란 하늘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열차는 지상철로 바뀌고, 창밖의 풍경은 지금까지와 달라진다.

서울에 올라온 첫 해였을까? 지하철을 타고 가다 친구가 바깥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열차가 지상으로 나와, 창문 너머에는 파란 하늘과 그 밑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다리 위를 달리는 열차 안으로 스며드는 햇빛, 넓게 펼쳐진 한강.


"와, 예쁘다."


내 감상은 그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었다. 예쁘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걸, 바깥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이 장면을 이곳에서 보고 있다는 걸 실감케 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고개를 돌려 친구를 보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 친구와 나는 알게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꽤나 가깝고 친했다. 그 친구와 이 아름답고 설레는 풍경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매일 이 풍경을 봤었는데."


친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온전히 이해하려면 어떤 기억을 공유해야 할 것 같은 미소였다. 친구는 여전히 창밖을 보며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고 울면서 엄마한테 말했어. 나 재수시켜 줄 수 있냐고. 그렇게 재수를 시작하고, 일 년 동안 학원에 다녔어. 그때 매일 아침 지하철 창밖 너머로 한강을 봤어. 그때마다 저 물의 온도는 어떨까 하고 수도 없이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들려주는 건지, 스스로 기억을 되짚어 보는 건지도 모를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이 친구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그만의 세계, 그만의 기억. 내게 있어 그 풍경은 갓 상경한 설렘이었고, 그 친구에게는 오래된 괴로움의 기억이었다.


지하철의 창 밖, 나와 그는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지만 그 둘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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