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공간에 남아 있는 기억
작은 집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설이다.
시골에 오면 언제나 이곳에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어릴 때의 나처럼 행동하곤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게 많이 변했다. 사람들과의 관계, 나 자신, 이곳을 대할 때의 자세. 모두가.
어릴 때 이 공간에 오면 하루 종일 숨바꼭질을 했다. 경운기 뒤, 옥상, 옥상으로 가는 계단 밑, 쪽문 뒤... 모든 곳이 숨을 곳이었고, 뛰어다닐 곳이었다. 다소 정적으로 느릿느릿 걸으며 이 공간을 다시 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
지금 이 공간은 더 이상 숨바꼭질 할 공간은 아니다. 경운기가 서 있는 작은집, 친척들이 모이는 공간. 더 이상 쓰지 않은 간이 화장실과 올라갈 일 조차 없는 옥상. 같은 장소지만 더 이상 같은 곳일 수는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미 변한 공간도 그곳에 방문하면 추억을 더욱 생생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마당 한 켠에 있는 이제 쓰지 않는 간이 화장실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마치 어릴 적 그때에 와 있는 것처럼 웃음이 났다.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할 때 남동생이 이곳에 숨은 적이 있었다. 너무 숨바꼭질에 심취하여, 술래에게 들킬까 안쪽으로 발을 계속 내딛던 동생은 그만 변기통에 발이 빠지고 말았고, 그 이야기는 몇 년 동안이나 시골에 올 때마다 회자되던 일화가 되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 장소에 오니 다시금 생각이 났다. 신발이 지저분해진 채 울던 남동생도, 그걸 보며 우스워 뒤로 넘어가려고 하던 나와 가족들도. 신나게 친척들과 이야기를 공유하던 그때의 모두가.
같은 공간이 언제까지나 같은 의미의 장소로 유지될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안의 추억들은 몇 년이 지나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설을 보냈던 2월에 썼던 글이다.
공간과, 현재의 나와, 과거의 시간 속 단편이 된 일화들.
공간은 그 안에 누가 어떤 관계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존재했는지에 따라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