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신짜오, 신짜오(쇼코의 미소)> 속 책갈피
어쩌면 나는 그런 장면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아줌마가 우리집으로 올라와서 우리 식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을, 아줌마와 투이가 엄마가 떠준 털모자를 쓰고 그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그 둘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런 극적인 장면은 없었다. 그 흔한 포옹도, 입맞춤도, 구구절절한 이별의 수사도 없었다. 그저 안녕, 그 한마디였을 뿐.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외투에 묻은 눈을 털고 길가로 걸어나갔다. 나는 길을 건넜고, 아줌마와 투이는 건너지 않았다.
(최은영, 신짜오 신짜오)
얼마 전 연인과 헤어졌다. 자주 생각났지만 별로 슬프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걸 너무 오랜만에 겪어봐서, 그게 어떤 건지 잊고 있긴 했다. 가고 싶었던 장소를 보며 '다음에 같이...'하고 생각했다가 공허해지는 일, 음식을 먹으며 '그 사람이 안 좋아하니까 지금 먹어둬야지'했다가 헛웃음이 나는 일. 그런 순간을 겪을 때마다, 아,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이런 거였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항상 누군가를 상실하고 나면, 얼마간은 그 사람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모든 상실 중에서 가장 덜 슬픈 상실이었다. 그게 다행스러운 건지 슬픈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잘 살아"라고 했고, 나는 "안녕"이라고 했다. 그 말들 혹은 다른 말들 중에서 어떤 말이 마지막 말로 가장 좋았을지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게 남은 그 사람의 시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멈췄고, 나는 사진 몇 장 빼고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정말 괜찮은데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