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르 브르통 <느리게 걷는 즐거움> 속 책갈피
밤에 걷는 일은 시간을 기막히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세계, 어슴푸레한 달빛은 태초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보행자에게는 어린 시절의 밤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3년 전 여름, 보행제를 기획한 적이 있다.
보행제는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 속 학교 졸업 행사로, 다 같이 밤을 새워 걷는 일이다. 소설 속에서 걷기는 주인공들에게 생각과 대화와 공감, 그리고 추억을 선물한다. 보행제 속 걷기는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걷기가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걷기다. 걷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감, 대화, 추억을 우리는 선망했었다.
당시 활동하던 문학회에서는 그런 사소하고 자잘한 행사 계획을 아주 많이 세웠었다. 보행제도 그 중 하나였다.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까지 갈 것인지, 중간의 쉼터는 어디인지, 막차를 타려는 친구들은 어느 역으로 가야 할 것인지, 나름대로 아주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하나하나를 구상하면서 머리가 지끈대던 순간도 있었고 설렘에 미소짓던 순간도 있었다. 계획을 짜다 추억팔이가 시작되면 이 또한 새로운 추억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보행제는 결국 무산되었다. 시기가 맞지 않았다. 학교의 연례 행사와 조율하자니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었다. 언젠가 소수라도 모아서 하자, 고 말한지 3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 밤을 새워 걸은 적이 없다.
걷기와 관련한 글을 볼 때마다 나는 보행제를 생각하던 그 여름이 떠오른다. 3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상상하던 그때의 감성, 기억, 추억은 남아있다. 우리는 아직도 오래 걸을 일이 생기면 보행제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이 보행제가 뭐야, 하고 물으면 <밤의 피크닉>에 대해 소개해 준다. 사실 그 후로 보행제를 기획하던 친구들과 많이 걸어다니긴 했으니, 이미 보행제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듯 밤의 창문가에 앉아 거리와 골목을 바라볼 때마다, '밤'의 피크닉을 즐겨보고 싶다. 뺨으로 밤 바람을 맞으며, 밤 달빛을 맞으며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