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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시 Apr 10. 2017

명왕성, 혹은 소행성 134340

또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2006년 8월 25일,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날의 기분을 기억한다. 나는 놀랐고, 슬펐고, 쓸쓸했다. 교내 연극 공연 때 명왕성 역을 맡았던 탓에 내 별명은 한동안 명왕성이었고, 운세 책에서 말해주는 나의 탄생성도 명왕성이었다. 태양계의 다른 식구들보다 작지만 그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명왕성은 마치 나의 상징물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제외되었다니. 내가 받았던 충격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은 일기도 특히 길었고, 명왕성에게 편지 같은 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결국 대학생이 되었다. 십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명왕성은, 명왕성으로서의 나 자신은 점점 잊혀졌다. 현재 우주에는 소행성 134340이 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곧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시끌벅적하고 바쁜 일상 속에 하루가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게 흘러가던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이 지나갔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생회 활동이 끝나자 내 하루를 채우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처음에 느꼈던 여유는 점점 무료함이 되어갔다. 다른 전공에 진입하면서 함께 수업을 듣는 동기의 수는 줄어갔고, 만나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갔다. 나는 종종 쓸쓸했고, 자주 외로웠다.

어느 날, 내가 명왕성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초등학생 때, 작지만 태양계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던 그 명왕성이 아니었다. 내가 동질감을 느낀 건 태양계에서 제외된 소행성 134340이었다. 그때의 내게는 모든 것이었던 대학 생활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고, 내가 생각하던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명왕성이 더 이상 명왕성이 아니듯이, 나도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태양계에서 퇴출되어 소외된 소행성이었다. 나를 반짝이게 만들던 시간은 다 지나버렸고,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는 스치기만 하는 사람들은 내가 없는 그들만의 추억을 쌓아갔고, 나는 어디에도 낄 용기를 얻지 못했다. 단체로 묶여 있기에 주어졌던 즐거움의 껍데기가 사라지고, 시끌벅적한 일상이 사라지자 나는 스스로가 점점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쓸쓸함을 들키기 싫어 스스로를 더 혼자로 만들어 옥죄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명왕성에게 쓴 편지 형식의 시를 다시 찾았다. 소행성 134340에게, 라는 제목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시는 말하고 있었다. 소행성 134340이라는 이름은 누가 붙여준 걸까. 명왕성이라는 이름도 누가 붙여준 걸까. 너는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있었을 뿐인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명왕성이 쓸쓸할 거라고 생각했지? 명왕성은 궤도에서 이탈한 적도 없이 그 자리를 돌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 별을 어떤 이름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을 뿐, 그 별이 변하지는 않은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자신이 변한 게 아니라, 단지 내 주변의 상황이 잠시 변한 것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연락이 늘어가자 꽉 막혀 있던 관계가 탁 트이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니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나 자신의 쓸쓸함에 파묻혀 있느라 그것들을 보지 못한 것뿐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 또한,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날들이 지나갔다. 나는 아직도 가끔 쓸쓸하지만 어떤 시기에도 담담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깨닫게 된 것, 그리고 나를 바뀌게 한 것은 단 한 가지의 사실이었다. 명왕성의 중심은 그 별이 가지고 있던 이름이 아니라, 그 별 자체다. 나도, 그리고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나는 언제나 나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다.


#명왕성 #소행성134340 #외로움 #쓸쓸함 #글쓰기 #율시 #바글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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