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시 Aug 24. 2018

현명하게 조언하기 위해 필요한 것

발화자와 수용자, 누구를 위한 말인지 기억하자

어떤 일화

구 D를 몇 년 만에 만났다. 비교적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지만 딱히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대학시절 잠시 방황을 겪었던 D는 이제 진로를 확정한 뒤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일을 받아두고 다음 취직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D와 카페에 갔고, 얘기를 하다보니 진로와 미래, 그에 대해 현재 내가 느끼는 조급함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내가 느끼는 조급함은 이런 것이었다.


"일을 한 번 해보니, 나는 정말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던 분야에서 일을 해야겠더라. 그런데 진작에 그와 관련된 경험을 쌓아서 스스로 경쟁력을 높였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어."


그런데 D가 듣기에는 그 말이 내 지난 경험은 다 쓸모가 없었다고 한탄하는 것으로 들렸었나 보다. 그래서 D는 그를 전제하고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려고 하지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의 기준을 세워. 조금 늦어도 괜찮아. 넌 충분히 많은 경험을 해왔고, 그건 다 쓸모가 있어."


"...고마워. 그런데 내가 남과 나를 그렇게 비교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사실은 은연중에 계속 남이 만든 기준과 너를 비교하고 있었을 거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너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봐. 너를 제대로 마주하, 너 스스로의 목표를 세워봐. 남들이 보기에 그 목표가 조금 낮아보여도 신경쓰지 마. 남과 비교하지 않고, 네가 할 수 있는 너만의 기준을 만드는 거야."


"...응. 그렇게 해볼게, 고마워."


"넌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 고마워."


사실 D가 해 준 말은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짝의 당황감을 느꼈고, 고마우면서도 찜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말의 발화자와 수용자

모든 말에는 그것을 말한 사람, 즉 발화자와 그 말을 듣는 대상이 되는 사람, 즉 수용자가 있.


보통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조언이나 격려 등은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다. 그 말들은 표면상 발화자보다는 '수용자(청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종종, 조언과 격려의 말은 수용자보다는 발화자 자신에게 더 큰 의미가 되곤 한다. 자신이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해주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 자신이 변화의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에서 오는 효능감.


그렇다고 해서 발화자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조언이 나쁜 의도로 쓰인 말이라는 건 아니다. 단지 본래의 존재의의에서 벗어나, 대상에게 닿지 못하고 힘을 잃은 말, 때로는 이질적이고 배려없이 들려 불편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등의 많은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분명히 좋은 의도로 쓰인, 좋은 말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책들은 곧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는 반발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그 이유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수용자에게 공감되고 수용되어 의미를 갖기보다는, 발화자가 자신이 청춘들에게 '좋은 말'을 했고, 그것이 영향력을 가짐에서 오는 뿌듯함의 의미가 더 컸던 것이다.



수용자를 위한 말의 조건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조언은 말 중에서도 타겟이 명확한 말이며, 그는 불특정다수가 아니라 특정 타겟의 상황을 헤아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용자, 즉 청자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말의 베이스에 까는 것도 가능하며, 이것이 조언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


이는 물론 화자와 청자의 상황에 대해 전에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깔린 상태라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 대화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태가 많은데, 이때 필요한 기술이 바로 '질문'이다.


예시를 보자.


"나 그 친구랑 싸우고 나서 진짜 고민돼. 화해를 하는 게 좋을지, 그냥 두는 게 좋을지..."

"너 마음 가는대로 해. 뭐든 마음 가는대로 해야 후회가 안 남더라. 답이 정해진 게 아니야, 결국 네가 원하는 게 진짜 답이 되는 거야."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어딘가 이질적이고 어딘가 찜찜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공감되지도 않은 느낌이다. 그 이유는 이 조언이 특정대상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에 맞춘 말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도 쓰일 수 있는 격언일 뿐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활용한 대화의 예시를 보자.


"나 그 친구랑 싸우고 나서 진짜 고민돼. 화해를 하는 게 좋을지, 그냥 두는 게 좋을지..."

"그렇구나. 화해를 하지 않고 그냥 둔다면, 너한테 있어서 걸리는 건 어떤 거야?"

"같이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 멤버가 있는데 그 친구랑 화해하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 보기도 힘들어지거든."

"그러게, 다같이 어울리는 사이였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만날 때까지 불편해질 수도 있긴 하겠다. 정말 마음이 더 복잡할 것 같네. 그럼 그 친구와 화해를 하는 건 왜 망설여지는 거야?"

"걔가 나한테 그런 심한 말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해서 그때마다 화해했는데 항상 안 고쳐져. 이번에 화해를 하더라도 분명 똑같은 포인트에서 그럴 거고, 그럼 난 또 화나고 상처받을텐데 그게 싫어."

"그랬구나, 계속 반복되는 거면 더 화나고 싫지. 그럼 그 친구는 예전에 그랬을 때랑 이번이랑 태도가 똑같은 것 같아? 화해를 했을 때 이번엔 다를 것 같다거나 한 건 혹시 없었어?"

"응, 전혀 없었어."

"그렇구나, 음, 물론 결정은 네가 내리는 거겠지만, 내 생각엔......"


뒤에는 질문을 바탕으로 얻은 이해와 공감을 기반으로 한 조언이 이어진다. 의미 좋고 멋진 말을 함으로써 얻는 발화자의 기쁨보다, 수용자의 상황에 맞추어진 최선의 말이 중심이 되는 조언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조언'이나 '격려'의 발화자가 된다면, 내가 하는 말이 정말 나 스스로보다는 '듣는 이에게 도움이 될 말인지' 생각하자. (바꿔 말하면, 정말 듣는 이의 상황에 적용이 될 말인지 생각하자.)


그냥 허울 뿐인 감성문집 혹은 자기계발서에 있는 말은 아닌지 생각하자. 수용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혹은 수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잘 구분하자. 이것이 현명한 조언의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기본조건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소시민'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