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14
“당신 그러고 보니 누굴 닮았군.
아...그 선수 이름이 뭐였더라..”
침팬지는 한 손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겨드랑이를 긁으며 말했다.
그의 입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그런 소리는 많이 들어요” 내가 말했다.
“아…누구였지...”
그는 아무래도 꽤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한 거죠? 어서 날 죽이시죠”
“음… 아니야 난 이런걸 못 참는다고. 생각해낼 수 있어…
조금만 집중하면 돼. 그래... 곧 생각이 나면 그때 널 죽여주지.”
입냄새 때문에, 그와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나는 의자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고 차에 타서 시동을 걸려고 하는 사이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를 내려쳤다.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낯선 모텔방 안이었다.
딱 봐도 그리 비싸 보이지 않는 그런 낡은 모텔이다.
내 앞에는 말을 하는 침팬지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바나나의 껍질을 소중히 까고 있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죽은 듯이 잘 자는군.” 그가 내게 건낸 첫 말이었다.
“뭐야? 날 왜 여기에 데리고 온 거죠?”
“난 킬러라네. 누군가 당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더군.
그게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야.”
“난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요.”
“낄낄낄. 아니야. 난 실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성실하다고 말했나? 그래.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은 안 해봤나?
누군가에게는 그 성실함이 정말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제발 날 살려주세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신 누구를 닮은 것 같군.”
그렇게 침팬지는 심각하게 나를 보며
닮은 누군가를 생각해내고 있다.
나는 내심 그가 생각해내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 !아! 생각났군! 그래! 축구선수 박지성을 닮았군.”
“네? 34년 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맨체스터에서 지독하게 열심히 뛰던 사나이.
내가 정말 좋아했었지. 새벽에 일어나 그의 경기를 보는 게 낙이었지.
그래 정말 닮았군.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는 기분은 어떨까.
행복했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박지성이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떠올랐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다만 끝이 가까운 것 같았다.
그때 나의 머리를 그가 또 세게 내리쳤다.
나의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내가 울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깊은 어둠이 나를 덮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차 안이었다.
머리에 통증이 있어 손을 대어보았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미세한 두통이 있을 뿐이었다.
내 상태를 보려 차에 햇빛 가리개의 거울을 내렸다.
거기에는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바나나 껍질처럼 노란 메모지.
나는 그 메모지에 적힌 글자를 소리 내 읽었다.
“박지성을 좋아해서 이번에는 살려주겠네.
하지만 너무 성실하게는 살지 말게나.”
메모지를 떼어내서 구겨서 바닥에 버렸다.
작은 거울에 내 모습이 보였다.
박지성보다는 초라한 침팬지에 가까운 얼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낄낄낄”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