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19

by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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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었다.

나의 집은 아직도 차가웠다.

인터넷으로 식물을 사서 놓기로 했다.


수염 식물과 박쥐란을 주문하고 다음날 택배로 받았다.

근데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내가 시키지 않은 꽃 화분이 하나가 더 들어있었다.


노란색의 꽃이 작게 피어있다.

갈색의 일회용 화분에 담겨있었다.

화분에는 작은 메모가 적혀있다.


“부디 잘 키워주세요.”


나는 그 화분을 분갈이를 해준 뒤

침실방 햇빛이 잘 드는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

새로 갈아준 하얀 화분 위로 노란 꽃은 기분이 한결 좋아 보였다.


“여기가 어디인가?”


낯선 목소리가 들여온 건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을 때였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 자동적으로 켜졌는지를 확인했지만

휴대전화는 검은 화면에 잠들어있었다.


“이봐. 젊은이. 나야 나. 꽃이라네”

나는 그제야 꽃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어서서 화분 쪽으로 다가가니 작은 노란 꽃이 작게 움직였다.

그에게는 입은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누구시죠?”

“난 그냥 꽃이라네.”

“어떻게 말을 하죠?”


“그거야 나도 모르는 일이네.”

“아... 소름이 돋는군요.”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꽃이 바로 말을 걸어왔다.


“물 한 잔 줄 수 있겠나?”

“아…네.”


나는 거실로 가서 컵에 물을 따라서 돌아왔다.

그리고 화분에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주었다.


“음… 좋군. 좋아. 잠에서 깨어나니 심한 갈증이 나더군.”

“왜 낮에는 말을 하지 않았죠?”


“난 낮에는 잠을 잔다네. 죽은 듯이 잠을 자게 되네.

정신을 차려보면 늘 달이 뜨는 밤에 되어있지.”

“그럼 낮에 이곳에 온 기억이 없으신 거군요.”

“응. 없어. 눈을 떠보니 여기였네.”

“신기하군요”


“나도 당신이 신기하군. 날 태어나게 해 준 그 여자는 참 목소리가 좋았는데…

자네 목소리는 왠지 듣기 거북해.”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다들 귀가 이상하가 보군. 귀가 없는 내가 들어도 그리 좋은 목소리가 아니네.”


노란 꽃은 그렇게 밤새도록 내 옆에서 말을 해댔다.

내가 읽는 책 제목을 물어보기도 하고

소리 내어서 읽어달라고 까지 했다.


나는 신기한 마음은 사라지고 귀찮아졌다.

내가 불을 끄고 자려고 해도

그는 어둠 속에서 계속 종알종알 떠들다

해가 뜨자 조용해졌다.


나는 겨우 새벽 5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낮 1시에 눈을 떠서 화분을 보니

조용하게 잠들어있었다.


꽃은 어젯밤보다 조금 말라 보였다.

나는 옆에 놓인 물을 조금 화분에 부어주었다.


그날 밤 12시가 되자 꽃은 또 말을 해댔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받아주다가

귀찮아져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잤다.


다음날 밤 이상하게 그는 말이 없었다.

자세히 다가가 꽃을 바라보니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낮에 분명 물도 주었다.


다음날 밤을 기다렸지만

다시는 꽃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꽃은 시들어 죽었다.


특별한 꽃이지만,

나는 특별하게 식물을 키우지 못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떨어진 꽃잎들을 모아 집 앞 화단에 나가서 땅을 파서

그곳에 꽃잎을 떨어트렸다.

힘없이 꽃잎들이 땅속에 떨어졌다.


나는 그곳에 꽃을 다시 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평범한 꽃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도하고 흙을 덮었다.

화분 속 흙과 뿌리도 그 위에 부었다.


빈 화분만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침실 안 책장 위에 놓았다.

하얀 빈 화분에는 흙이 아직도 수염이 난 듯 묻어 있었다.

화분은 햇빛을 받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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