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붓글씨로 가훈을 쓰는 수업이 있었다.
수업 전날, 엄마에게 가훈을 묻자 엄마는 말했다.
“항상 만족하라”
2000년 후반쯤부터 베스트셀러 ‘시크릿’을 시작으로 자기계발서 붐이 일었다. 자기계발서는 모든 사람이 현실에는 안주해서는 안 되고 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했다. ‘아침형 인간’, ‘미라클 모닝’ 등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살 것을 권했다. 모두가 열심히, 그리고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책들은 열변을 토했다. 군 복무 중에 유행에 편승해 자기계발서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제대 후 어머니에게 우리 집 가훈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물었다. 어머니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였고, 나는 가훈이 너무 현실에 안주하라는 느낌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조금 더 파이팅 넘치는 문구였다면 어렸을 때부터 더 열심히 살고, 지금보다는 더 훌륭한 인간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라는 말도 덧붙였다.
몇 년이 흘렀다. 시중에 너무 오랫동안 자기계발서가 유행했던 탓일까, 많은 사람이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힐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TV에는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SNS에는 ‘욜로’, ‘힐링하러 왔어요.’라는 말들이 해시태그로 도배되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도 이 정도면 충분해, 너무 열심히 살 필요 없어, 이제 휴식이 필요한 때야 라고 말하는 책들이 모두 차지했다.
유행에 편승하여 이번에도 몇 권의 힐링 서적을 읽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힐링 서적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도 먹기 힘든 세상에 속 편한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힐링이 대세였던 시절에도 나는 여전히 치열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아직도 자기계발서의 채찍 아래 있었고, 가끔 어머니에게 가훈이 파이팅 넘치지 않는다며 여전히 농담하곤 하였다.
또 몇 년이 흘렀다. 사람들이 겪는 번아웃 증후군은 없었지만, 인간관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었다.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럼에도 극복하기 힘들었다. 고통스러웠다. 집에 돌아다니던 힐링 서적 몇 권을 다시 읽었다. 몇 년 전과는 글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달랐다. 오늘의 행복을 추구하고, 관계에서는 힘을 빼며,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수많은 문장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큰 위안을 주었다.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가훈에 대한 철없는 농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고통이 스승이 되어 약간의 겸손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