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서 종교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대화의 주제로는 잘 다루지 않는 소재지만, 독서 모임이라는 틀 안에서 규정된 방식으로 토론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토론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30대 중반 남성분의 이야기다.
그는 20대 후반까지 일주일에 4~5일가량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서 기도도 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종교 활동이 잘 맞고 행복했던 이유로, 그가 좋아하는 무교인 지인들을 선교하기 위해서 애썼다. 믿음을 권유할 때면, 종종 논쟁이 생기거나 다양한 질문들에 부딪혔다. 어떻게 하면 질문에 더 올바른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교회와 성경에 관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주변인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시작했던 공부는 오히려 깊이 하면 할수록 믿음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속에 한 번 싹트기 시작한 의구심은 그를 계속해서 괴롭혔고, 결국 무신론자로 만들었다.
나는 물었다. 믿음이 있던 시절과 믿음이 없는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언제가 더 행복했냐고. 그는 종교가 있었을 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 그때가 행복했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건을 겪고 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인생은 혼자라고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깨달음에는 정답이 있다기보다 관점이 담겨있다. 다만, 한번 정립된 관점은 진위에 관계없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관점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것이 비록 행복의 길이 아닐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