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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Apr 26. 2020

[어땠어요?] 맑음보다 아름다운 흐림에 대하여

<날씨의 아이> 리뷰


영화를 좋아한 지 꽤 시간이 지나고 주변 사람들과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지 않다 보니 다양한 경험이나 반성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에게 신카이 마코토라는 감독은 그 경험의 대상 중 하나입니다. 과거 신카이 마코토가 1인제작과 감성적인 배경의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 저는 가혹하리만큼 그를 저평가 하곤 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저는 신카이 마코토를 '개인적인 감정에만 빠져있는 작품'으로 정의 했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에 이어서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고향 섬을 떠나 가출한 소년 호다카(다이고 코타로)는 배를 타고 비가 그치지 않는 도쿄에 도착합니다. 기록적인 폭우가 지속되는 도쿄에서 호다카는 알바를 찾으러 고군분투하지만 16세 소년에게 도쿄는 만만치 않았죠. 배에서 우연히 만난 미스터리 잡지 편집장 스가(오구리 숀 분)의 사무실에 알바로 취직한 호다카는 기도를 하면 잠깐 맑은 날씨를 만들어준다는 '맑음 소녀' 히나(모리 나나 분)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합니다. 가까스로 히나를 찾은 호다카는 엉뚱하게도 그런 히나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자는 비즈니스(?) 제안을 하고 히나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날씨의 아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상은 음악과 배경입니다. 배경은 신카이 마코토 작품들에서 중요한 이미지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10대의 사랑을 다룬 많은 작품들에서 학교나 주인공들이 만나는 장소, 집, 거리 등 반짝이는 배경 자체를 하나의 매력 포인트로 잘 활용해왔죠. 이런 감독의 재능은 이번 작품에도 낭비 없이 활용됩니다. 이에 더해서 끝없이 내리는 '비'와 주인공 히나가 펼치는 눈부신 '맑음'으로 배경 위에 고명을 얹습니다. 이전 작품에도 날씨를 배경에서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데코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이쁜 포장지였던 과거의 배경과 달리 <날씨의 아이>는 작품의 핵심 주제와 연결되어 더 깊은 맛을 머금었습니다. 소고기와 달걀지단을 곁들인 떡국이 그렇지 않은 떡국과 다르듯 말이죠.


신카이 작품이 많은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겝니다. 아마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겠죠. 초기 작품부터 음악과 짧은 클립으로 조합된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엔딩을 보듯이 작품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날씨의 아이>의 음악은 분명 정석적인 영화연출이 아님에도 효과적입니다. <너의 이름은.>부터 함께 작업한 밴드 래드웜프스의 음악은 자체로도 튼실한 힘으로 내딛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배경들과 만났을 때 날개를 달고, 영화의 몇몇 장면들에선 폭발적인 전달력을 얻어 관객들에게로 쏟아집니다. 논란이 없는 밴드가 아니고, <날씨의 아이> 자체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버릇을 그대로 노출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존재합니다.


꽤나 많은 분량을 <날씨의 아이>의 미려한 외모를 칭찬하는 데에 쏟아 냈지만, 이 리뷰를 쓰게 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소녀와 그를 사랑하는 소년'은 자기 복제라는 비판을 들을만큼 익숙한 신카이의 '도구'였습니다. 구태여 여기서 '도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정말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걸 다룬다는 판단이 저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에서 시작된 이유 모를 감독의 변화는 단순히 한번 얻어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독은 <날씨의 아이>에서 그 익숙한 구도에 도시와 가난, 아이와 어른, 개인과 사회 같은 신카이 답지 않은 무언가를 섞어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단순한 10대의 첫사랑을 다뤄내는 것에 그치거나 가장 일본다운 독백, 가장 일본다운 서정성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던진 재난과 희생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개인과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끝없는 비'라는 재난을 만난 도시가 아무렇지 않게 '배려'와 '원칙'을 핑계로 아이들을 벼랑으로 모는 몇몇 표현들은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릴 만큼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존재를 평가하는 시각은 다양하고 저는 그 다양한 시각 모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일본 사회를 그대로 비추듯 끊없는 여성의 대상화나 도무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는 성적표현들, 단순화된 캐릭터나 듬성듬성 비어있는 개연성과 같은 비판 점들 말입니다. '기계적 중립'이 아니냐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저는 동시에 신카이 마코토가 꾸준히 구축해온 세계, 그리고 최근 두 작품에서 보여준 반걸음 또한 동의하려 합니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10대의 첫사랑이란 지긋지긋한 양념에 아동 문제와 재난, 기후와 같은 이질적인 재료를 꽤나 잘 섞어 냈고 애니메이션 팬층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만한 메세지를 준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아직 정말 좋은 작품이라 딱 잘라 말하긴 힘들겠으나 그저 모든 걸 살아남기 위한 돈벌이로 보던 호다카가 차츰 변화했듯이 그도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기대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신카이에 대해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충분히 극장에 가실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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