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어요?] <스파이지니어스> 리뷰
<겨울왕국2>이 점령하고 지나간 극장가에 애니메이션 한 편 이 찾아왔습니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로 유명한 폭스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블루스카이가 제작한 <스파이 지니어스>를 보고 왔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별난 행동과 요상한 발명으로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던 월터(톰 홀랜드 분)는 정보국의 무기개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설적인 활약으로 요원들의 영웅으로 불리는 랜스(윌 스미스 분)는 일본으로 잠입해서 전투용 드론을 뺏어오려다가 월터의 별난 무기를 쓰게 되죠. 랜스는 월터의 무기 덕에 죽을 뻔했고 이를 따지러 본부로 향합니다. 그때 정보국 내사과에서 랜스가 무기를 빼돌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다며 랜스를 체포하려 들고, 랜스는 별수 없이 월터에게 도움을 청하러 갑니다. 랜스는 월터가 개발 중이던 유전자 변장 약을 먹고는 비둘기로 변해버리고 둘은 누명을 벗고 범인을 잡으러 첩보 활동을 시작합니다.
<스파이 지니어스>가 가진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독특한 소재와 3D 애니메이션이 가진 표현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생각보다 애니메이션에서 첩보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본 아이덴티티> 이후로 대세가 된 날것 액션을 표현하기도 힘들뿐더러 <007> 전통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서)신기한 무기들과 번쩍이는 차량과 같은 비주얼을 표현하기에도 어중띠기 때문이겠죠. <스파이 지니어스>는 이런 요소를 애니메이션의 장점인 과장으로 돌파해 나갑니다. 야쿠자가 훔쳐 간 무기를 빼앗으러 1대100에 상황에 랜스가 뛰어 들어가는 식이죠. 상영 시간 내내 나오는 월터의 엉뚱한 무기들도 <007>의 무기들보다 황당하리만큼 과장된 식입니다. '어차피 현실감을 줄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면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자!'라는 전략이 선명합니다. 할 수 있는 오버는 하고 싶은 만큼 내지른 느낌이고 이게 나쁘지 않습니다.
이러한 과장의 연장 선상으로 '유전자 변이 변장'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요원이 비둘기가 된다면'이란 상상은 황당한 만큼의 재미를 주고 <스파이 지니어스>는 그 장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알라딘>을 통해 행복을 되찾은 본투비 지니 윌 스미스의 연기는 랜스라는 비둘기(?)를 완성시켰습니다. 과거 <체인지>나 <너의 이름은.>에서 보여지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을 때 나오는 상황들은 <스파이 지니어스>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반복됩니다. 흐름 중간중간 '여기선 웃고 넘어가자'는 얼렁뚱땅 식의 표현이 종종 있지만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가 픽사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은 즐거움에만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제가 꼽고 싶은 <스파이 지니어스>의 마지막 장점은 함부로 표현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희생한 영웅을 잃은 유가족, 매번 생사의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요원, 악의 집단으로 표현되지만 전쟁 중에 모든 걸 잃은 테러리스트와 같은 무거운 요소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첩보의 포장을 하고 있는 영화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죠. 이러한 묵직한 재료들을 <스파이 지니어스>는 향을 풍기며 다루긴 하되 함부로 깊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장면을 묘사하거나 대사에서도 정답을 읊는 식의 실수를 잘 피해 갔습니다. 대신 캐릭터 마다의 빈공간으로 여지만을 남기고 스크린 밖으로 그 향을 흩뿌려 놓는 인상이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이걸 비겁하다거나 다루지 못했다고 하시겠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알면서 자신의 의견을 작품에 욱여넣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어설프게 인터넷 기사 몇 줄 읽어내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는 것도 나름의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적정선을 잘 지킨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확인하시는 게 나쁜 경험은 아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