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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May 14. 2020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낭만에 대하여 <롱샷>리뷰

[어땠어요?] 롱샷 리뷰



<매드맥스>와<아토믹 블론드> 등 다양한 장르 영화로 관객을 찾고 있는샤를리즈 테론의 신작이 국내 극장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로맨틱 코메디입니다.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준 <몬스터> 이후로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온 테론의 신작인 만큼 서둘러 다녀왔습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직을 수행 중인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론 분)은 샤워를 하면서도 전화를 받아야 하는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몇몇 언론에선 저열한 농담으로 그녀의 외모를 평가하고 무능한 대통령 밑에서 일에 치이지만 꽤나 잘 버티고 있습니다. 거친 어조로 대형 미디어를 비판하는 프레드(세스 로건 분)은 위험이 도사리는 취재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 넘치는 기자지만 결국 대형 미디어에 회사가 먹히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때려치웁니다. 그의 단짝 친구 랜스(오셔 잭슨 주니어 분)는 풀이 죽은 프레드에게 보이즈투맨(진짜 그 보이즈 투맨)을 보여주겠다며 자선행사로 데려갑니다. 부자와 정치인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프레드는 자신의 흑역사이자 첫사랑인 샬롯을 만나고 자리를 피하지만 오히려 샬롯이 프레드를 불러 대화를 나누죠. 묘한 끌림을 느낀 샬롯은 프레드를 자신의 연설 비서관으로 채용하면서 둘은 함께 일인 듯 썸인 듯 함께 지내기 시작합니다.


<롱샷>은 관객들을 만나자마자 자신의 첫 번째 카드로 인물 간 대화를 꺼내 듭니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미국 특유의 유머가 한시도 쉬지 않고 관객의 귀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슬아슬 불쾌함과 유쾌함의 경계를 걷는 특유의 코메디는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후보이자 국무장관답게 적확한 말과 기술을 구사하는 샬롯의 대사와 거칠다 못해 더러운 입담과 재치,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재야언론인 프레드의 대화는 마치 테니스나 탁구 경기를 보는 느낌을 줍니다. 거친 스윙과 완벽에 가까운 호수비, 관객의 방심을 노려 찌르는 대사들은 테론과 로건이란 걸출한 배우들과 완벽한 화학작용을 일으킵니다. <어벤져스>에서 쉬지 않고 전투씬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감정과 정치, 관계와 편견을 오가는 이런 풍부한 대사들은 <롱샷>이 선택한 소재와 구조에서 더 힘을 받아 뻗어갑니다. 보통 멜로나 로맨스를 중심으로 다루는 영화에서 정치는 다분히 주인공의 멋짐을 포장해주는 그것의 역할을 수행하곤 합니다. 본부장님이나 회장 딸 같은 설정을 떠올리신다면 그것이 맞습니다. <롱샷>이 물론 아주 깊이 미국의 정치를 다룬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소재를 대하고 있습니다. 여성 정치인의 자립과 인종차별, 적당히 보여주는 쇼 형식의 환경문제 등 짧은 대사와 농담 속에 압축된 소재는 인상적이지만 불편하지 않게, 가볍지만 날아가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무겁거나 차분해지기 직전까지 정치란 소재를 둘 사이의 문제와 섞어내고 필요한 부분에서 빼내는 기술은 관객을 편안하게 <롱샷>의 이야기로 끌어들입니다. 대중영화로 너무나도 잘 다듬어져 있어 평가하기 힘든 각본이 아닐까 합니다.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는 확실히 대세가 지난 장르에 가깝습니다. 많은 변주들이 이미 존재하고 잘 만들어야 제2의 <노팅힐> 소리 듣기 십상이니까요.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가 가진 공통의 메세지를 <롱샷>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잘 풀어내어 관객에게 한입한입 곱씹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너무나도 거대한 자신의 임무를 사랑하기도, 대부분의 사랑이 그러하듯 놓고 도망치고 싶기도 한 샬롯의 고민과, 평생을 자신이 원하는 정의와 믿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온 프레드의 고민은 사랑이란 관계 앞에 또 다른 고민을 만들어 버립니다. 너무나 이질적인 서로가 물과 기름처럼 층을 나뉘어 존재하면서도 서로의 고민까지 자신의 마음으로 안아버리는, <롱샷>의 이야기는 뻔하지만 여전히 강력하죠. 미국식 농담으로 꽉 들어차 나풀나풀 산뜻한 움직임을 보여주면서도 날아가지 않는 안착된 코메디로 완성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 시작한 연인들에게도 오래 같은 밥솥의 밥을 먹은 부부에게도 좋은 데이트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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