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다.
만만한 게 죄.
난 윗사람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하거나 선이 넘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게 무엇이든 참지 못한다.
시댁은 5남매였고 결혼을 함으로 대식구를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중에서 어른 알기를 뭐처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시부모님께는 애지중지 키워 장가를 보내고 아들까지 낳고 잘 살 거라고 믿고 있었던 첫째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먼저 세상을 등지고 떠나버린 첫째 아들.
남아있는 며느리와 손자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해 주셨다. 내가 결혼을 해서도 그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왔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필요할 때만 시댁을 찾는 형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불안함이 결국에는 아주버님(첫째 아들) 제사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매년 기 제사 때나 명절 제사 때 어머님께서 10만 원씩 형님께 쥐어졌었다. 그걸 결혼하고 우리가 드리는 입장이 되었고 장까지 같이 가서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3년 차 되던 해 제사 비용으로 말이 나오게 되었다. 시누이들이 제사 비용을 10만 원씩 주면서 제사장도 같이 본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그때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도 정신없이 바빴고 시누이들도 아주버님 돈 주는 것부터 장보는 것까지 말리고 있었던 터라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그 10만 원이라는 제사 비용으로 형님이 기분이 안 좋았는지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솔직히 그 10만 원이 뭐라고.
남들이 보면 수천만 원 때문에 요란스럽게 싸우는 거 아니냐 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웃길 뿐이다.
하지만 그때는 제사비용을 주고도 욕 얻어먹고 있는 입장이었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님을 이해할 수없었다. 내가 너무 네네~하면서 웃으니 만만했던지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우기기 시작하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가만히 있질 못하고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 싸움은 1시간가량이 이어지면서 마무리되었지만 서로의 본모습을 알게 된 것이다. 시어머님은 원래 그러니 이해하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난 이해도 못할뿐더러 내가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형님에게 이것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점점 난 성격이 이상해졌고 화가 차올랐다.
그 일을 겪은 후 형님에게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사업을 그만두고 둘째 시누네랑도 연락도 안 하고 잠잠하던 어느 날.
길가에서 마주친 형님은 평소에는 나를 모르는 척하다가 꼭 시부모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때면 만만한 나를 보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도 아이들 하원 차량을 기다리다 마주친 형님은 아들의 평발 재활비를 이야기하며 나에게 잔고 없는 통장까지 보여주면서 사정이 어렵다고 시부님께 말씀드리기를 부탁했었다. 형님보다는 조카 생각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시보님께 말씀드렸지만 시부모님도 사정이 안 좋아 돈이 모일 때까지만 조금만 기다리자고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그 잠깐을 못 참고 갑자기 형님에게 전화 한 통이 왔었다. 혹시 시부모님에게 자기 아들 이야기를 해봤냐고. 난 이야기를 했지만 어른들께서 돈이 없으니 생기면 연락하겠다 하셨다 하니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 아니냐며 또 1시간가량을 싸우다 듣다 보도 못한 신랑이 전화를 대신 받아 밖에 나가서 정리를 하고 왔었다.
그 사이에 퇴근하신 아버님에게 나는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님은 서러웠던지 바로 아버님께 전화를 해 나와 신랑 욕을 하려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신랑이 아버님 휴대폰을 스피커 모드로 바꿔서 우리 시댁 식구들은 형님과 아버님 대화를 다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형님은 그냥 내가 만만하였던 것이었다. 형님은 본인 이야기를 안 들어주니 아버님께 당신 손자 그냥 저렇게 죽게 둘 거냐면서 협박 아닌 협박과 가족 연을 끊을 거라는 독한 말을 퍼붓고 끊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도 형님을 차단해버렸다.
누구보다도 첫 친손자를 애지중지하셨고 먼저 보낸 아들 생각하면서 아쉽지 않게 다 누리게 해 줬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모진 소리와 아쉬운 소리뿐이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시부모님도 나도 만만한 게 죄라는 생각뿐이었다. 자식 된 도리를 아무도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나라도 정신 차리자라는 생각이 번쩍이었다.
시댁 식구들은 내가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봤던 건지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예의가 없으면 나도 그냥 손절을 하고 쓴소리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