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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Jul 02. 2020

실패하고 좌절하기

피트니스 대회여. 이제 안녕.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운동 쪽에 소질이 있어서 유도, 육상 선수 생활을 하다 대학도 체육 전공으로 가게 되었다. 체육과라서 동아리들은 수영, 태권도, 골프 같은 것뿐이었고 그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어 기초 체력 테스트를 하는 헬스 동아리를 선택하였다. 헬스 동아리에서 뽑는 인원은 선착순이었는데  남자 동기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동아리였다. 그 속에서 나는 악바리와 체력 하나는 자신 있는 운동들을 해왔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본적인 체력은 된다고 생각하였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과 악바리로 끝까지 버텨서 힘든 테스트를 통과해 합격하였다. 나 말고도 열댓 명이 더 합격을 하였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 헬스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 주변 주민들도 이용하게끔 되어 있었고 헬스 동아리는 근로 장학생으로 속해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을 하였고 트레이너로써의 실습과 교육을 받아가며 대학생활을 하여야만 했다. 그렇게 대학 들어오자마자 1학년부터 피곤하게 짜여 있는 시간들 안에 운동도 수업도 일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동기들은 하나둘씩 탈퇴 선언을 하고 나갔고 최종적으로 여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나도 남자 선배들 눈치 보랴  출퇴근으로 피곤에 찌들어갔지만 진짜 다른 동아리는 재능이 없었을뿐더러 힘들게 테스트를 통과해 들어왔기에 여기서 살아남지 않으면 지는 느낌이라 쉽게 나갈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게 나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몸으로 머리로 운동을 배우고 악으로 버티며 1학년을 보냈고 1년 동안 배운 운동과 식단을 몸으로 나타내어야만 했다.

그게 바로 나의 첫 피트니스 대회였다.

지금은 피트니스 대회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몸짱이라는 타이틀, 비키니 선수, 웨이트를 하는 여자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만 10년 전만 해도 손바닥만 한 수영복을 걸치고 포즈를 취하는 여자 보디빌딩 선수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을뿐더러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대회 안에서의 체급 규모도 작았다. 주변에 그만큼 여자 보디빌딩을 아는 사람도 없었고 보디빌딩 마니아층에서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운동과 식단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난 선배들에게 배운 닭가슴살과 고구마, 양배추의 단순 무식한 초고 단백질 식단과 기본적인 벌크업의 정석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큰 근육의 힘으로 당기고 밀어붙여가며 몸은 점점 근육질의 다부진 몸이 되었다. 난 웨이트 트레이닝의 정석으로 배워가며 몸을 다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당연히 대회는 자신이 있었다. 주변 선배들에게도 인정을 받았고 스승님도 대회 주체자로서 가망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셔서 난 당당하게 운동을 하며 내 몸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하지만 첫 번째 나간 대회는 좌절 그 자체였다.

대회가 한 달 남았을 때는 헬스장에서 합숙을 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대회 전날 모든 것들이 무너져버렸다. 바로 대회 전날  탄수화물 로딩의 문제였다.( 대회 3일 전부터 물을 서서히 줄이고 대회 전 날 물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저녁에 고탄수화물로 된 음식들로 섭취를 하고 대회 당일날 무대를 오르기 전에  가벼운 운동으로 펌핑을 하게 되면 근육의 선명도나 크기가 일시적으로 좋아진다. )

여자들은 탄수화물 로딩을 할 필요가 없었고 수분 조절만 하면 되었지만 남자 선배들은 여자 선수들을 가르친 적도 없어서 무지 그 자체로 나를 가르쳤다.

하지만 선배들이 빵이나 피자로 탄수화물 로딩을 할 때 열심히 한 내 몸에 미안하기도 하고 나름 생각해서 고른 것이 고구마였다. 당연히 선배들도 괜찮다고 하였고 그거에 대해 믿어 의심치도 않았다. 그러나 수분이 너무 많은 고구마는 선명하게 만들어 둔 근육들을 대회 당일 날 다 덮어 버렸다.

아침에 대회 준비를 위해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거울을 봤을 때 이미 나는 직감을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첫 번째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졸업 전에 이를 갈고 다시 한번 또 도전을 하였다.

졸업할 때쯤에는 어느 정도 여자 보디빌딩의 인지도가 올라와 있었고 그 대회에 새로 생긴 종목인 스포츠 모델(보디빌딩보다는 근육이 적은 체급)이라는 종목으로 대회를 출전하였었다. 그때는 탄수화물 로딩도 하지 않고 조금 더 근육을 조절해서 출전했지만 얼굴이 크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즉 비율이 안 좋다는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피트니스도 미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대회인지라 당연히 비율도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내 몸은 힘들지만 다른 사람의 몸을 아름답게 만드는 트레이너가 되자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졸업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6년 후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은 후에도 난 트레이너를 하고 있었고 몸을 꾸준히 가꾸고 있었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작은 무언가가 나를 계속 쑤셨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또 대회를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꼭 등수 안에 들자는 생각으로 피트니스 여자 선수에게 문의를 했었다. 하지만 너무 감당할 수 없는 레슨 비용을 이야기하였고 큰 마음먹고 하기에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본 돈 천만 원은 예상해야 하는 금액이라  너무 부담스러워 또 혼자 힘으로 대회 준비를 하기로 했다.

 돌이 된 아기를 데리고 헬스장에 와서 수업도 하고 일 중간중간에 운동도 세 타임씩 하였었다. 대학 시절에 나만 신경 쓰고 챙기면서 여유롭게 준비하던 그때와는 달리 같은 시간을 더 많이 쪼개서 더 많이 움직이고 집안 일과 육아까지 하면서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와 실패를 다시 맛보지 않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다. 주말에는 각종 세미나를 다니면서 포즈도 다시 배우고 새로운 운동들을 배워 나의 몸에 맞게끔 운동하였고 그 대회를 위해 내 몸에 맞는 의상과 액세서리까지 손수 맞추었다.


마침내 대회 당일날  화려한 의상들과 메이크업으로 피트니스 대회장에 당당하게 들어섰다.

세 번째 나간 대회에서는 2가지 종목을 동시에 나갈 수 있어서 스포츠 모델과 비키니 모델 두 가지를 선택해서 나가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아줌마라는 타이틀 없이 젊은 여자 선수들과 당당하게 한 무대에 섰었다. 그때는 자신 있게 준비한 만큼 아쉽지 않게 무대에서 열심히 만든 몸으로 내 에너지를 다 표현하고 내려왔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대회도 나에게는 욕심이었었다. 피나는 노력은 나의 눈물이 되었고 옆에서 응원해주던 신랑도 이해할 수 없는 순위에 심사 위원을 만나러 갔었다. 돌아오는 심사평은 비키니 모델이라기에 비율이 너무 안 좋고 스포츠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근육이 너무 많았다는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타고난 비율이 아닌 나의 노력만으로 만든 몸이 실패가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세 번째 실패는 트레이너로써의 자질도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실패를 하면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피트니스에 종사하고 있고 트레이너라는 직업은 몸을 가지고 증명을 하여야 했다. 다른 사람의 몸을 만들어주지만 내 몸을 만들지 않고는 트레이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트레이너들이 피트니스 대회를 참가하고 나처럼 시간이 흐른 다음에도 다시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로 나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무대에서의 선수가 아닌 본업으로 돌아와 운동을 즐겨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난 대회가 아닌 헬스장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로써는 성공했다고 본다.  목표는 같았지만 다양하게 한 실패들이 있었기에 회원들에게 더 많은 조언과 질적으로 더 높은 운동을 가르쳐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실패를 겪고 좌절을 느꼈다고 그 자리에서 후회하고 있는 것보다 내가 했던 것처럼 그냥 좌절을 하면 된다.

왜냐면 그 좌절감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에너지와 깨달음까지 알게 되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건 동물 중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래서 동물이라는 사람은 단순한 것 같다. 지금 당장 실수를 했다고 해서, 실패를 했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 걸 알기에  지나간 실패와 실수들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또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실패와 실수가 주는 힘이고 좌절이 다시 희망의 불씨를 일으키는 불쏘시개 같은 존재이다.


 사람이 단순하면 인생도 단순하다. 내 이야기들을 보면 그렇게 실패하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하는데도 또다시 일어서서 또 도전하거나 그걸 밑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희망을 걸고 다시 걸어 나가지 않던가. 나도 너도 우리의 단순한 인생을 실패와 좌절감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것들이 당근과 채찍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니 지금 당장 힘들면 앉았다가 실패하면 좌절했다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힘으로  모두 일어서길 바란다. 언젠가는 성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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