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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Oct 21. 2020

난 저런 트레이너가 안될 거야.

퍼블릭 트레이너가 좋아요.

내가 대학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배울 때 스타킹에서 숀리가 나왔었다.

그때 생활체육협회는 보수적인 성향을 많이 띄고 있었고 정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런가 숀리를 보면서 우리 스승님은 항상 기본도 안 돼있으면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돈을 벌기 위해 인기를 얻고 있는 숀리에게 타박을 주었다. 그게 일이고 직업인 사람에게.


그때는 당연히 스승님 말씀이 다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너무나 많은 운동법들과 운동에 있어 개방적인 생각들로 내가 우물 안에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상업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헬스장을 보면서 내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며 좌절하고 힘들어했던 때가 기억이 난다.




첫 직장으로 헬스장은 대형 헬스 체인점을 했던 경력 많은 트레이너들이 있었고 개인 레슨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헬스장이었다.

보통 헬스장은 오전 1명, 오후 1명 정도 채용하지만 PT 전문 트레이너를 양성하기 위해 이곳은 10명을 뽑았다. 내가 가장 어렸고 나이가 10살까지  차이 나는 동기들이 있었다.   

입사 날짜가 같아서 동기라고 말하지 다들 이쪽  일을 해봤던 선생님들이라서 난 잘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사회생활은 무조건 사람들과 친분이 우선이라 생각하여  항상 웃으려고 노력했고 무엇이든지 잘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친해지기 무섭게 우리는 교육을 받고 시험에 통과해야 PT 전문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서로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처음 교육을 받을 때 깊이 있는 해부학부터 영양학까지 가르쳐 주길래 직장은 진짜 잘 들어왔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후 난 숨이 막힐 정도로 이곳이 싫어졌다.


마지막 교육이 마케팅과 영업이었다.

회원이 오면 개인 레슨을 하도록 유도를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수업을 듣는 순간

아... 이거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생각뿐이었다.

그때는 내가 배운 운동이 이렇게 쓰인다는 것이 너무나 속상했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회원의 이름 말고는 나이, 주소까지 그 회원이 얼마만큼 레슨을 할 수 있고 할 마음이 없어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을 이야기하였다.

운동을 가르치는  걸 떠나 매출에만 포커스를 두고 이야기를 하였고 어린 나이에 너무나 패닉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가 시험 준비 과정에서 이론과 실기는 완벽했지만 영업을 하는 지점에서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나중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하기 싫어서 그만하겠다고 했지만 매니저가 퍼블릭 트레이너로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난 헬스장에서 운동이 필요한 회원들에게 잠깐의 운동을 봐주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주었고 더 깊이 있는 운동을 배우고 싶어 할 때는 레슨을 권했다. 단, 회원들이 원할 때!


그렇게 퍼블릭 트레이너를 하면서 헬스장에서는 나의 인지도도 높아졌고 PT트레이너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가 데려다주는 회원들이 있어 일을 굉장히 잘한다고 칭찬을 해줄 정도였다. 


그렇게  레슨 회원들을 PT트레이너들에게 보내면 하나같이 불만을 토로하며 내게 왔다.  그 불만이 나도 느껴질 정도로 PT트레이너들은 행동하였다.


그렇게 행동 한 PT트레이너들은 너무나 간사하고 재수 없었다. PT를 해야지 살살 웃고 레슨을 연장하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레슨을 연장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처럼 찬바람이 쌩쌩 지나쳐 갔다. 심지어 운동에 관련해서 물으면 대꾸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운동이 궁금한 회원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었고 같은 운동법으로 오직 레슨만 기계처럼 하고 있었다.

(지금은 트레이너들은 아니겠지만 내가 입사할 당시 헬스장은 PT트레이너들은 코가 하늘을 찔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트레이너라는 직업에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그 모습들을 수개월을 보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진짜 저런 트레이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돈만 밝히는 트레이너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마음만 다 잡고 생각만 했지 나보다 높은 직급의 트레이너들에게 그 어떤 말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로 맞장구쳐주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던지 아직도 생각난다.


헬스장에서도 퍼블릭 트레이너를 원하기보다 PT트레이너가 돈이 더 되니 나에게 PT트레이너로 올라가길 계속 권했지만 난 끝까지 하지 않았다. 나의 되지도 않은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랄까? 헬스장에서 운동을 몰라서, 낯설어서, 돈이 없어서 못하는 회원들에게 더 다가가 마음으로 회원들을 헤아려주었고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매니저의 권유가 압박이 되면서 견디다 못해 난 퇴사를 결정하였다.

마지막 나오는 그 순간까지 회원들에게 인사도 못하게 하였다. 혹시나 내가 회원을 빼돌릴 거라는 농담과  내가 나간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동할 거라는 웃음 섞인 혀놀림으로  매니저는 그렇게 돌아섰다.


모든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나 또한 처음에 어떻게든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였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만하지 않은 사람들과 환경들은 수두룩하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나려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 지도 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알게 모르게 경쟁이라는 얇은 막을 형성하게 되고 서로 날 세워 지내면서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착한 사람은 착한 대로 당하고 못된 사람은 못되게 살아나고 그렇게 매번 당하다 보면 다시 못되지고 생활고에 허덕이다 보면 치 떨게 싫어하던 것들도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초년생의 마음가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여기저기 부딪혀도 별 감흥 없는 진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나도 내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졸업했지만 현실에서는 운동 자체가 돈, 회원들이 돈이 되었고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트레이너는 회원에게 건강함을 주고
 회원은 돈을 지급함으로써 건강을 얻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는 직업!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정말 돈이 아닌 마음과 진정성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그 끝은 바닥이 될 것이다. 내가 가진 직업적인 사명감이 오래 지속할수록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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