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영 Oct 26. 2020

트레이너도 먹토를 해봐야 알지.

겪어야 가능한 것들.

트레이너라는 직업은 몸이 기본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래야 회원들에게 운동을 가르쳐줄 수 있다. 남자는 어깨가 넓어야 하고 물론 근육의 선명도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여자는 날씬하지만 볼륨감 있고 탄탄한 몸이어야 회원들이 운동을 배우려고 한다.


솔직히 회원들은 뚱뚱하게 보이는데 본인 입으로 근육 돼지라고  말하는 트레이너와
누가 봐도 어깨는 넓고 운동을 가르치는데 근육이 보이는 트레이너 중에 누구에게 배우고 싶은가?

당연 후자 쪽일 것이다.


몸만 좋으면 트레이너 하겠네?


라는 의문을 가지겠지만 몸이 좋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식단과 운동으로 몸을 만들어봤다는 뜻이기도 하고 현재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대학 때 매주 체지방 측정을 해서 수치를 표로 작성해야 했다. 학교 관례처럼 졸업한 선배들부터 해왔던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도 피할 수 없었다.

나름 운동을 꾸준히 빡세게 하게 하려는 스승님의 큰 그림이었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운동한 결과를 금요일 아침마다 체크를 했고 그날은 모두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누가 얼마만큼 근육이 오르고 또 얼마큼 체지방은 빠졌는지 체크를 하는 날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숨이 막히는 분위기가 되었다.

체지방이 많이 오르거나 하면 그냥 운동으로 끝났지만 근육이 빠지는 날에는 지옥훈련을 해야 했다.


혼자 여자였던 나는 남자 선배들에게 운동을 배워 근육을 올리는 거는 쉬웠지만 체지방 빼는 거는 쉽게 하지를 못했다. 하지만 여자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래서  평일에는 식단 외에는 먹질 않고 운동을 죽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이를 악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체지방 측정을 한 후 결과에 따라 지옥훈련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러닝머신 경사도 최고로 해두고 빠른 속도로 걷거나 죽음의 계단이라고 부르는(경사도가  장가계 저리 가라 할 정도임) 계단을 오리걸음으로 1시간을 한다거나 아님 스승님에게 잡혀서 운동을 한다거나 여러 가지 지옥훈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옥 훈련을 하는 날에는 그냥 집에 기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매주 하다 보니 금요일 아침에 체지방을 재고 저녁에는 긴장이 풀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광란의 폭식을 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절제를 못하고 빵을 만 오천 원 치를 먹거나 피자 한판을 혼자 다 먹거나 그냥  입이 터지기 시작하면 주말 저녁까지 주체를 못 했다. (모두가 아는 그런 입 터지면 생기는 증상)

 이게 졸업할 때가 되다 보니 식탐이 생기고 식욕까지 생겨 몸이 말이 안 될 정도까지 엉망으로 변해 버렸다.


말 그대로 근육 돼지. 남자들이 말하는 벌크업이 되었다.


그리고 취업한 첫 직장에서는 체지방 측정도 안 하고 대회도 안 나가고 하니 마음이 더 해이해졌고 그 습관들이 유지되다 보니 근육 돼지 상태로 일을 시작하였다.


일반 회원님들이 봤을 때는 몸이 탄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트레이너들이 봤을 때는 그냥 건장한 돼지였을 것이다. 당연히 열심히 운동을 해도 그만큼 더 먹으니 건장보다는 건강한 돼지가 될 뿐이었고 어떤 트레이너는

그런 몸으로 누구를 가르칠 수는 있겠나?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나는 꿋꿋이 회원들을 가르쳤었다.  


하지만 저 소리가 맞는 말이었다. 그 트레이너가 이야기한 것은 팩트였기 때문에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그런 내 몸을 보는 것도 그런 몸인걸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듣는 것까지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말고는 생각을 못했다.


 스트레스를 먹는 거에 풀다 보니 그렇게 바뀌어버린 식습관에 나중에는 살이 찔까 봐 걱정이 들면서도 먹고 있으니깐
음식을 먹은 후 토하고 또 먹고 또 토할 정도로 섭식 장애까지 되었다.  


그렇게 내 몸은 내팽개쳐두고 내 몸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트레이너라는 사명감 운운하며 속상해하고 또 그런 거에 스트레스받아가면서 내 몸을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직업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날씬하면서도 근육도 있어야 하고 비율까지 되어야 했던 이미지였는데 키 작고 통통한 내가 트레이너라는 게 아무래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적인 사명감과 외적인 사명감이
 거리가 있었던 나.

지만 그러기엔 내 직업을 너무나 좋아했고 이것만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마음을 잡아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첫 직장 퇴사와 함께  이직하면서 스트레스 해소와 트레이너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외적인 모습까지도 바꾸기 위해 목표를 잡고 운동과 식단을 했었다.  처음부터 다시 맘 잡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진짜 그때는 내 몸의 심각성도 제대로 느끼고 직업과 사명감이라는 이질적인 상황 속에서 살짝 방황해서 마음부터 재정비한

 건강한 몸이 건강한 마음을 가진다

생각으로 식습관도 바꿔 지금은 아이 2명을 낳고도 그때를 기억하며 습관과 운동으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운동을 하고 더 탄력적인 몸이 되면서 회원들도 내가 건넨 조언들이나 이야기들로 운동에 대해 더 신뢰를 했고 그전까지 못 느꼈던 회원들의 반응을 나도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들이 내 몸을 보고 운동을 물어보고 레슨을 받으려고 다.

외적인 것과 내적인 사명감이 같이 맞아떨어질 때 그것에 대한 만족도나 성취감마저도 굉장히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된다.


내가 이렇게 사명감 운운하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일반회원들이 겪는 모든 경험들과 그리고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보다 경험자로써 더 공감적인 부분이 있고 그걸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다들 똑같을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대학 나와서 좋은 곳에 취직을 하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머릿속에 있는 지식보다는 실전에서 쓰이는 스킬이나 정보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심지어 나는 몸으로 증명을 해야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자격증이나 언어 등으로 그걸 증명해야 한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나를 무시해도 딱 하나. 진짜 여기서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습득하고 보여준다면 어떤 사람도 나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면 더 확실히 보여줘야 하고 증명해야 한다.


처음부터 알아서 척척 해놓은 것들은 없다. 나처럼 상처도 받아보고 시도도 해보고 다른 회원들이 겪는 것들을 똑같이 밟아봐야 그때서야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되고 부족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잘못 선택했다고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오늘도 바닥에서부터 흙먼지를 마시며 뚝심 있게 시작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에 행복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 난 저런 트레이너가 안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