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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Oct 16. 2020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사명감 가지기까지.

무엇이든 고생은 따르는 법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운동뿐이었다.

배운 것도 공부보다는 운동 속에서 더 많이 배웠다.

운동을 하면서 인성을 배웠고 예의를 배웠고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체육과를 가기로 결정을 했다.

우리는 안정적인 직장과 고액의 월급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다.

나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고액의 월급을 받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지만 할 줄 아는 거라곤 운동뿐이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대회에, 예체능반이라 실기를 배우러 간 시간이 더 많은 나였다. 그래서 바라볼 수 있는 대학은 체육과였고 체육 쪽도 머리가 좋아야 선생님 정도였기에 바로 취업에 뛰어들 수 있는 2년제를 선택했다.

선택의 폭이 좁았고 체육과를 통해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도 있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더 알아보고 조금 공부할 거라는 후회는 하지만 이미 12년이 지났는 것에 후회는 의미 없는 것이었다.


대학을 들어간 후

체육과 헬스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런 동아리를 왜?라고 하겠지만 지금 다시 돌아가도 헬스 동아리를 또 들어갈 것이다.  체육과에서 나에게 맞는 동아리는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이유 중 하나가 근로장학금을 준다는 것에 굉장히 혹한 것도 있었다.

수많은 남자 선배들  사이에서도 난 꿋꿋하게 헬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근로장학생을 하였다.

학교 내의 헬스장이지만 학교 주변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된 곳이라 일반 헬스장과 똑같이 영업을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덜 뜬 눈으로 도시락 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 새벽 공기는 차디찰 때도 후덥지근할 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새벽까지 술을 진탕 먹고 맞춰진 수업 시간 전에 일어나서 수업만 듣고 하는 것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나도 저렇게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원했는데...


하지만 대학에서는 근로 장학생이라 하고 학교 내 헬스장에서는 헬스 트레이너로 불리며 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비와 용돈을 보탰고 그것마저도 나에게 감사한 돈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거에 감사하며 다른 헬스장처럼 저녁 11시까지 마감하고 토요일까지 일을 하러 가는 것을 견뎌내었다.


처음 헬스  용어를 몸으로 배우며 강제성을 가지고  운동을 했고 다양성보다는 기본을 배우면서 2년을 보냈다.

헬스 트레이너 양성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주입해서 자격증들을 따고 대회를 통해 경력을 쌓아 졸업 후에는 다른 헬스장에 전문 헬스 트레이너로 취업을 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헬스 쪽에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었고 힘이었다.

기본이  된 트레이너.

알아주는 사부님.

자신감이 있었던 경력들.

헬스 쪽에 한 자리씩 하고 있었던 선배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일을 굉장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

그것 만큼 내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높은 것이 없었다.

그 사명감으로 첫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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