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다.
착한 며느리병은 오지랖일 뿐.
처음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했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성격이 문제였던 건지 신랑은 내가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 건지.
아님 내가 신랑을 모르게 했던 건지 신랑은 아는데 모르는 척했던 건지.
결혼을 하게 되면 예물, 예단이 어떤 건지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이였다. 첫째 시누이가 처음 이야기를 꺼냈고 서로 주고받는 거 없이 그냥 시누들에게 용돈을 조금씩 주고 끝내라는 이야기에 나는 유명한 횟집에 예약을 하였다. 그것마저도 첫째 시누이 의견으로 정해졌다.
사회 초년생이 벌 수 있었던 건 한계가 있었고 대학에서 근로 장학생을 하면서 벌었던 건 학비로 쓰일 뿐이었는데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고작 있는 돈이라곤 돈백만 원. 어쩔 수 없이 대출을 했던 500만 원.
난 그 돈으로 시누이들만 데리고 비싼 횟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옷 한 벌씩 해서 입으라고 30만 원씩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얼마 안 되는 돈이었겠지만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그렇게 난 결혼식을 위해 하나하나씩 마음을 다해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다들 결혼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였고 놀 때처럼 모여서 청첩장을 주며 축하를 받았다. 그때는 결혼 이야기를 담기에는 어렸고 어려웠다.
그 자리에도 신랑은 오질 않았고 난 그런 것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뭐든지 내가 나서서 해야 속이 편한 성격인지라 결혼식 준비는 혼자 알아보고 물어보고 결정해서 신랑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혼자 바쁜 결혼식 준비 중에 시어머님 생신이었고 결혼도 하지 않은 나는 새벽부터 시댁에 가서 진수성찬을 차리고 이런 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시어머님 말씀을 듣고 속상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었다.
마냥 잘하려고 했던 나는 모든 것에 무지 그 자체였던 그때부터 이미 착한 며느리병을 가지고 시작했는 것 같다.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가족을 얻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결혼을 만류하는 지인들 잔소리를 이겨가며 수많은 상처들 속에서 그래도 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들 덕에 결혼식은 성대하게 이루어졌고 말 그대로 잔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가족, 친지들이 없어도 결혼식장은 꽉 찰 정도로 지인들이 많이 왔고 나는 누구보다도 잘 살았다고 생각했었다. 상처 하나 없이 자란 것처럼 행복한 얼굴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항상 내뿜고 일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 나를 칭찬하듯이 많은 지인들이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그때까지는 행복하였다. 착한 며느리병을 가지고 결혼식을 할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