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다.
시댁살이는 억척스러움.
내가 결혼을 하기 전 시댁에서는 큰 아픔을 겪었었다. 시부모님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태였고 시누들은 그런 시부모님이 혹여나 어떻게 될까 전전긍긍한 상태였다.
누군가는 시부모님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혼한 첫째 시누는 자기 몸 건사하기도 바빴다.
신랑이 시부모님과 함께 살길 바랬고 그렇게 하자라는 신랑의 말을 나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랬다. 난 시부모님과 이혼한 첫째 시누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시부모님과 당뇨합병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첫째 시누.
그들을 안고 챙겨야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다. 아니 내 몫이었다. 그러니 주변에서 이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긍심이 있었기에 결혼해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 시부모님 식사와 집안일, 시누의 비위까지 다 맞혀가면서 나는 그렇게 시댁 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힘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이 성격은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했고 내 얼굴에 침 뱉기 싫어서 어디 가서 시댁 이야기도 하지 않고 웃으면서 하루하루 지냈다.
힘들지 않았던 날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냥 직업 특성상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서비스업이라서 몸에 베인 습관이 있어서 인지 마음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였던 나였다. 그래서인지 시댁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모든 일들을 내가 나서서 했다. 잘하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둘째 아주버님이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결혼했으면 처남댁이랑 동갑인 딸이 있었을 거라고.
그것도 농담이라고 하는 아주버님 말도 웃으면서 넘어가는 나였다.
조카들도 나보다 9살, 10살밖에 차이가 안 났으니...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그렇게 나를 어리게만 봤지만 모든 일들은 내가 하고 있었다. 성격상 느긋한 시댁과 성격 급한 내가 살고 있으니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시댁에서 살다 보니 시누들은 자주 왕래하였고 시댁 모임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있었다. 시댁 모임부터 추석명절까지 어느새 내가 차리고 있었고 심지어 시누 병원까지 내가 데리고 다녔다. 이렇게 나는 시댁에서 억척스러움과 오지랖 퍼가 되어 가고 있었다.